"국내 1호 노동자이사라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직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경영진과의 갈등을 원만하게 조정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노동자가 이사회에 참가하는 '노동자이사(근로자이사)'가 국내 최초로 탄생했다.
주인공은 5일 서울연구원 노동자이사로 임명된 서울연구원 배준식 도시경영연구실 연구위원. 배 이사는 이날 오전 서울시장 집무실에서 박원순 시장에게서 임명장을 받았다.
배 이사는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과 영국 대학에서 석박사를 거친 뒤 지난 2007년부터 서울연구원 도시경영연구실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배 이사의 임기는 오는 2019년 12월까지 3년간이다.
배 이사는 지난달 12일 실시된 직원 투표 결과 53.4%(125명)의 지지를 받아 1위를 차지했고, 30일 이사회 의결을 거쳐 최종적으로 노동자이사로 결정됐다.
노동자이사제는 노동자 대표 1-2인이 이사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노동자 경영참여제도이다. 관련 조례에 따라 정원 100명 이상인 13개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은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서울연구원에는 노조가 없고 직장협의회가 있지만 한 번도 직장협의회 일을 맡아본 적 없다는 배 이사는 "전공이 재정, 예산, 회계인데다 민간회사 경력도 있고 해서 주위에서 추천을 받아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 이사는 "직원들의 기대가 크다"며 "경영진이 아무리 소통을 강조해도 일방통행적 행정에서 벗어나기 힘든 만큼,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협치 커버넌스가 자리잡길 바라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또 경영계 일부에서 제기하는 '경영권 침해와 노사분쟁 증가' 우려에 대해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면 오히려 노사분쟁이 감소하고, 기업가치가 상승하며, 원활한 기업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나머지 서울시 투자·출연기관도 이달중 노동자이사 임명 완료
서울시의 노동자이사제 의무도입기관은 ▲서울메트로 ▲서울도시철도공사 ▲서울시설관리공단 ▲농수산식품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 ▲서울의료원 ▲서울연구원 ▲서울산업진흥원 ▲서울신용보증재단 ▲세종문화회관 ▲서울문화재단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디자인재단 등 13곳. 이중 서울연구원이 가장 먼저 도입된 것이다.
서울연구원과 양 공사 통합을 앞둔 서울메트로·도시철도공사를 제외한 나머지 10곳도 이달 중 노동자이사 임명을 완료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5월 노동자이사제의 도입계획을 발표하고, 뒤어어 시의회도 조례를 제정했다.
노동자이사제는 그간 경영계의 전횡을 막고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등 우리나라 노사관계 정립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제도로 꼽혀 왔으나 '경영권 침해'를 우려하는 경영계의 반대로 도입이 미뤄져왔다. OECD 28개국 중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18개국에서는 이미 도입, 운영중이다.
노동자이사는 향후 법률과 정관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사업계획, 예산, 정관개정, 재산처분 등 주요 사항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 참여하며, 타 이사들과 차별화된 근로자 특유의 지식과 경험,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서울시는 도입 이유를 설명했다.
노동자이사는 뇌물을 수수했을 때 공기업의 임원과 동일하게 공무원에 준하는 형법의 적용을 받는 등 법령, 조례, 정관 등에서 정하는 제반사항을 준수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또 이사가 되면 노동조합을 탈퇴해야 하며, 무보수이되 이사회 회의참석수당 등 실비를 받는다.
박원순 시장은 "노동이사제 도입은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대립과 갈등에서 협력과 상생으로 바꾸고, 소통의 단절과 갈등에서 오는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새로운 노사간 협치시스템의 실현으로 더 편리한 대시민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여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