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글쓰기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차라리 이 둘은 별개다. 내가 매일마다 하는 경험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이러이러한 글을 쓰고 싶다' 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문장 한 줄 쓰지 못하고 보내는 날이 많다. '마음'이 생긴다 하여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야 허다하다. 하지만, 글에서처럼 끈질기게 죄책감으로 남는 일은 드물다.
글을 쓰지 않아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 글을 쓰지 않는다고 누구 한 명 나무라지 않는데. 글 좀 안 쓴다고 내 인생이 지금보다 더 못해질 것도 없는데. 글을 쓸 시간에 스트레칭이라도 하면 몸은 더 가뿐해질 텐데. 이놈의 죄책감이 다른 일에서의 열정도 빼앗는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고개를 내민 죄책감에 이유를 묻는다고 답을 내어주지 않는다. 한번 때려 맞춰 본다. 혹, 글은 존재와 관련 있는 건 아닐까. 글을 통해서만 내 존재는 잠시 바깥 구경을 나오는 건 아닐까. 작고 편협한 몸뚱이 안에 갇혀 내내 답답했던 존재에게 글은 '열린 문'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몸뚱이의 주인인 내가 게으른 태도로 문을 꼭 닫아 걸고 있으니 죄책감을 벌로 내린 건 아닐까.
여기까지만 생각해 보련다. 아직 내게 존재라는 단어는 너무 크다. 그보다는 우울, 고민, 슬픔, 기쁨 같은 단어가 더 가깝다. 글을 쓰지 않는 날은 우울하다. 어떻게 하면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 슬프다. 그러다 어쩌다 한 번 글을 쓰게 되면 기쁘기 한량없다.
그렇다면 기쁘기 한량없는 일을 나는 왜 자꾸 미루는 것일까. <최고의 나를 꺼내라>에서 스티븐 프레스필드는 이렇게 말한다. "글 쓰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니라, 진짜 힘든 것은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 이유를 내적 저항에서 찾는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 글을 못 쓰는 사람이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이나, 글을 이제 막 쓰기 시작한 사람이나 삼십 년 넘게 글을 쓴 사람이나 - 내적 저항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내적 저항은 다양한 핑계를 상상해 낸다. 글을 쓰지 않을 핑계를 만들기는 얼마나 쉬운지. 갑자기 장을 보러 가고 싶고, 청소가 하고 싶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와 약속을 잡아야 할 것 같고, 오늘따라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싶고, 피곤하고, 졸리고, 바쁘다. 결국, 글은 이 모든 핑계를 이겨내고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배반하지 않은 사람만이 쓸 수 있다. 은유의 <쓰기의 말들>은 글쓰기의 내적 저항에 시달리는 우리들을 위한 책이다.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를 부제로 삼은 이 책에서는 문장들이 향연을 펼친다. 스스로를 문장 수집가로 자처한 작가 은유는 본인을 글쓰기로 이끌었던 매혹적인 문장들을 낚시찌로 이용한다. 찌에 단단히 걸린 우리는 뭍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대신 의자에 앉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 글을 쓰고 싶어진다. 이런 문장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힘을 얻는 곳은 언제나 글 쓰는 행위 자체에 있다." - 나탈리 골드버그 "매일 작업하지 않고 피아노나 노래를 배울 수 있습니까. 어쩌다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 레프 톨스토이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나는 씁니다." - 롤랑 바르트 "'쓰다'라는 동사는 작가들이 따라야 할 궁극적인 도다." - 장석주 책에는 104개의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들과 짝을 이뤄 저자의 글이 있다. 모든 글이 글쓰기와 관련 있다. 자유 기고가로 시작해 글쓰기 강사로 일을 하다가 시집을 내고 글쓰기 책을 낸 저자의 글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저자 은유의 글은 간결하고 탄력적이었다. A4용지 1페이지가 채 안 되는 글 속에 매번 단단한 이야기를 풀었다.
삶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도 좋았다. 저자는 우리의 보잘것없는 삶이 남에 의해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지, 또 남에 의해 얼마나 쉽게 힘을 얻을 수 있는지 아는 것 같았다. 글 앞에서 삶을 고민하는 사람인 게 분명했다. 저자는 말한다.
"읽고 쓰며 묻는다. 몸으로 실감한 진실한 표현인지,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만사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앎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덧붙이는 글 | <쓰기의 말들>(은유/유유/2016년 08월 04일/1마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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