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강행하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교학사 교과서'의 쓰라린 경험이 크게 한몫했다. 유시민 작가는 지난 2015년 11월 13일 '국정화 블랙홀에 빠진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JTBC '밤샘토론'의 말미에 이 문제를 아주 쉽고 명료하게 설명한 바 있다. 유 작가는 당시 교과서 경쟁에서 실패한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국가 권력을 동원해 국정화를 시도하며 사상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냥 한판 붙자고요. 죽이는 것도 아닌데. 투쟁 아니잖아요. 그냥 대화하는 거잖아요. 사상 투쟁, 가치 투쟁 아니고요. 가치 경쟁, 사상 경쟁하는 거예요. 공존하면서. 그래서 때로 내가 인기가 없으면 내가 부족한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노력하면 되지. 아무리 교학사 교과서의 시장으로의 진입 실패로 인한 좌절감이 크다고 하더라도, 그 좌절감을 국가 권력을 동원해서 다른 교과서를 다 없애버리고 교학사 교과서 하나를 국정교과서로 만드는 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저는 되게 전체주의적인 북한을 흉내내는 졸렬한 짓이다. 저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강조하고 싶어요."유 작가의 지적 그대로다. 국정교과서의 배후에 뉴라이트가 존재하고 있고, 그들의 주도 하에 교학사 교과서가 집필됐다. 덧붙이자면 국정교과서의 전신이 바로 교학사 교과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이유로 국정교과서를 이해하려면 뉴라이트와 그들이 주동이 돼 진행된 이명박 정부의 교과서 개정 움직임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영삼 정부 들어 국정 체제가 검정 체제로 바뀌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며 '과거사 바로 세우기'가 진행되자 보수우익세력은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이에 만들어진 단체가 바로 뉴라이트다. 뉴라이트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보수우경화의 바람에 편승해 당시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에 교과서 수정을 요청하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뉴라이트는 '자학사관 반대', '이승만·박정희의 복권', '과거사 청산 반대' 등을 주장하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추진된 교육 정책 전반을 문제 삼았다. 그들은 당시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며 교과부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이에 교과부는 금성출판사 및 다른 출판사의 근현대사 6종 총 55곳의 내용을 수정하라고 명령하기에 이른다.
이를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는 대대적인 교과서 수정 작업에 나선다.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고쳐졌고, '이승만 독재', '5·16 군사정변', '5·18 민주화운동' 등의 단어가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서 사라졌다. 80%가량이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비중이 50%로 대폭 축소되는가 하면, 2011년 10월에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을사늑약'을 '을사조약'으로, 일본 국왕을 '천황'으로 바꾸라고 권고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사편찬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부분에서 김구 선생에 대한 설명을 빼도록 요구하기도 했고, 2011년 확정된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안에는 제주 '4·3 사건'을 삭제하고 정부 수립 이후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으로 기술하도록 했다.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정통성과 업적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뉴라이트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더욱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다. 교학사 교과서야말로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검정 단계에서부터 수많은 오류가 발견되며 논란을 낳았다. 교육부의 수정·보완 권고와 교학사의 자체 수정 내용만도 무려 700여건이 넘는다. 거의 책 한권을 다시 쓸 정도의 오류가 있을만큼 부실하게 기술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2013년 교육부는 각계각층에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검정을 승인해버렸다 .
그러나 정부의 비호 속에 출시된 교학사 교과서는 교육 현장에서 철저히 버림을 받는다. 채택률이 0%대에 머물며 자존심을 구긴 것이다. 그런데 이 굴욕이 오히려 국정교과서 강행의 기회로 작동한다. 당시 교육부의 수장이었던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 등이 교과서 국정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더니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국정교과서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학계와 교육계, 시민사회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인 박근혜 정부는 마침내 지난 2015년 11월3일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을 확정 고시하기에 이른다. 이명박 정부 이후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진행된 보수우익 세력의 역사 왜곡과 친일독재 미화가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국정교과서에 미련 버리지 못하는 교육부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국정교과서의 운명을 뒤바꿀 극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 대통령이 탄핵심판을 받게 되면서 졸속·퇴행적으로 추진된 국정교과서가 퇴출될 위기에 처해지게 된 것이다. 국정화 반대 의견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탄핵 인용은 국정교과서에 대한 사망선고나 마찬가지다. 야 3당역시 국정교과서 폐기를 박근혜 정부의 적폐 청산 1순위로 삼고 철회 운동에 돌입한 상태다. 국정교과서의 운명이 졸지에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된 셈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여전히 국정교과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새다. 교육부는 지난달 27일 역사교과서 현장 적용 시기를 1년 늦추고, 2018년부터 국정·검정교과서를 혼용하는 내용의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적용 유예 및 국정·검정 혼용 방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숨가쁘게 국정화에 매달려온 교육부가 국정·검정 혼용 방안을 발표한 것 자체가 국정교과서의 실패를 자인하는 꼴임에도 국정교과서 폐기 대신 이도 저도 아닌 꼼수를 들고나온 것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국정·검정 혼용 방안의 요체는 연구학교에 있다. 국정교과서를 희망하는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해 최대 1000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복안이다. 지난 10일 교육부는 2015년 역사과 학교교육과정 편성·운영 방안 도출을 위한 '역사교육 연구학교'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을 통해 오는 2월10일까지 연구학교 지정을 희망하는 학교의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계획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정교과서의 앞날에 시커먼 먹구름이 끼어있기 때문이다. 이미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13개 교육청이 교육부의 연구학교 지정 요청을 거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교육부가 이에 대해 시정명령 등 법리검토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지만 13개 시도교육청의 입장은 아주 단호하다.
일선 학교가 얼마나 호응할지도 불투명하다. 연구학교 지정 신청은 교사들이 참여하는 학교운영위원회의 논의와 동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극심한 진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절대다수의 역사교사들이 국정교과서에 반대하고 있는 현실에 미루어 교육부의 연구학교 지정 시도는 교학사 교과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현재 새누리당의 반대로 안건조정위원회에 상정돼 있는 '역사교과용도서의 다양성 보장에 관한 특별법안'의 안건조정 절차가 오는 2월23일 풀리게 되면 국정교과서는 일선 학교에 배포되지도 못한 채 폐기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요지부동이다. 가치중립적인 역사 문제에 정치가 개입하면서 탄생한 괴물인 '국정교과서'를 지키겠다며 분투하고 있다. 머지않아 사라질 국정교과서의 운명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다. 그러나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구하기 작전은 실패로 끝날 확률이 대단히 높다. 역사학계와 교육계, 시민사회가 압도적으로 반대하고 있고, 야 3당 역시 폐기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정교과서를 강행시킨 당사자인 박 대통령의 정치생명 역시 지극히 위태롭다. 한마디로 첩첩산중인 것이다. 환경의 변화에 둔감한 생명체의 운명은 결국 하나다. 도태되거나 사라지거나.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을 오직 교육부만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