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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방영된 <백종원의 3대 천왕> 한 장면.
최근 방영된 <백종원의 3대 천왕> 한 장면. ⓒ <3대 천왕> 캡처

야심한 시간이면 어김없이 헛헛해지는 배를 달래기 위해 이불 속에서 <수요 미식회>나 <토요일이 좋다-백종원의 3대 천왕>(아래 '백종원의 3대 천왕')을 종종 본다. 물론 방송에 소개되는 맛집이 TV 광고와 그리 다를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3분짜리 썸네일 영상을 통해 야식 한 그릇을 비운 것 같은 거짓 포만감이 들어야만 비로소 잠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급 씁쓸해지는 기분이 들지만, 어쨌든 애청자 입장에서 두 개의 예능 프로그램은 정통한 '먹방'(먹는 방송)이라기 보단 간접적 '식당 광고'에 가까운 방송이라 여겨진다.

이는 인터넷 검색창에 두 프로그램을 검색하면 '예능 ○○ 맛집 리스트'가 가장 많은 검색어로 나온다는 점에서 확인 가능하다. 나 역시 방송에서 친절하게 음식의 품평과 조리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 그 식당을 검색해보기 일쑤인데 이것은 시청자로서 너무나 당연한 반응인 것이다.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유명한 셰프들이 나와 음식을 하는 쿡방은 그들의 음식을 먹어 보기 위해 유명셰프 식당을 시청자가 알아서 찾아가는 거라면, 앞에 나온 두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훨씬 적극적으로 광고를 하는 셈이다. 즉, 수백 개의 (전문 셰프가 있는)식당 위치와 주 메뉴는 물론, 식당 주인의 스토리까지 더해진 방송은 최고의 광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방송 PD와 식당 주인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나 할까. 그런 측면에서 두 프로그램의 미세한 차이는 <수요 미식회>가 "수요 서울미식회"로 불릴 만큼 주로 서울지역 식당 광고 채널인 반면, <백종원의 3대 천왕>은 좀 더 전국 단위의 채널이라는 정도다. 또한 광고 방송을 통한 수익 창출은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와 SNS 해시태그 빈도로 입증할 수 있으니 그 어떤 광고보다도 월등한 광고가 바로 예능 프로그램이라 하겠다. 

우리 동네 설렁탕집은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 동네에 아주 맛있는 설렁탕집이 있다. 방송에서 소개된 설렁탕집을 몇 군데 가봤지만 이곳보다 맛있지 않았다. 5년차 단골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변함없는 국물 맛에 지인이 동네 근처에 놀러오면 가장 먼저 소개하는 곳이다.

호기로운 마음으로 유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시청자 제보를 해볼까 잠시 생각도 들었지만, 했어도 안 됐을 게 뻔하고 됐어도 아마 사장님이 거절하셨을 거다. 후자의 경우, 만약 사장님이 식당 홍보를 위해 방송을 이용했다면 이미 식당은 방송에 나온 현수막으로 도배가 되고도 남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 아무리 강력 추천하는 글로 식당을 제보하더라도 결코 나오지 않았을 거라 예상하는 이유는 우리 동네가 소위 '핫(hot)'하거나 '힙(hip)'한 동네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날 TV에서 <테이스티로드>(지난해 종영)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잠깐이었지만 굉장히 세련된 식당과 거기에 어울리는 주변 거리를 비춰준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 회만 그럴 수도 있으므로 다음 회, 그 다음 다음 회도 시청했는데 콘셉트가 크게 다르지 않은 걸 보고 프로그램 자체가 핫한 식당과 거리를 함께 보여준다는 걸 알게 됐다.

몇 번 본 적 없는 그 프로그램이 나름 인상 깊었던 이유는 먹방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먹어 보고 싶다'보다 '가보고 싶다'는 욕구를 더 자극했기 때문이다. 기존에 비슷한 장르의 예능과 달리 <테이스티로드>는 유행하는 음식 뿐만 아니라 핫한 장소를 같이 보여줌으로써 도시나 동네의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맛집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 비(非)서울이자 핫한 거리 하나 없는 우리 동네 설렁탕집은 방송에 나올 리 만무하다.

경리단길의 빛과 그림자

 이태원 해방촌을 조명한 '수요미식회' 91화
이태원 해방촌을 조명한 '수요미식회' 91화 ⓒ 수요미식회 캡처

경리단길의 존재를 '처음' 안 건 2014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힙스터라면 경리단길 정돈 걸어줘야지"라는 말에 순간 "햄스터가 격리된 길 정돈 걸으라고?"라고 들어 친구들에게 웃음을 준 기억이 있다. 이후 검색을 통해 <무한도전>의 노홍철과 하하가 당시 힙한 경리단길을 걸은 장면이 나왔단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아마 정확하진 않더라도 그때 즈음을 기준으로 경리단길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졌고 그에 맞물려서 가파른 임대료가 상승했음을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관련기사: "핫 플레이스라고요?" 한숨 짓는 상인들)

지난해 따뜻한 봄날, 해방촌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녹사평역에 갔었다. 드디어 그 힙한 경리단길을 가본다는 생각에 촌스러울까봐 티는 안냈지만 내심 기대감이 부풀었다. 초입 길에 도착하자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건 요새 유행하는 카스텔라, 츄러스, 주스 등 달콤한 음식냄새였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니 분위기 있는 식당과 술집이 즐비했고 입구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며 기다리고 있었다. 미디어에서 보는 것처럼 확실히 경리단길은 활기 넘쳐 보였고 화려했다.

 이태원 '해방촌'을 조명한 <수요미식회> 91화.
이태원 '해방촌'을 조명한 <수요미식회> 91화. ⓒ 수요미식회 캡처

하지만 세련된 식당과 유행하는 프랜차이즈 가게가 한 곳에 몰려 있는, 그래서 힙해 보이지만 그냥 세련된 세계음식거리 같은 느낌을 받은 건 내가 힙하지 못해서일까. 혹은 상수 카페거리와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고 말하면 나는 촌스러운 사람일까. 그러나 확실한 건 두 곳 모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활발한 동네란 점이다. 임대료가 급작스럽게 두세 배가 뛰어도, 원주민들의 생활터전이 붕괴돼도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그렇게 경리단길은 화려한 빛과 휑한 그림자가 공존하는 동네였다.

친구로부터 연예인 노홍철씨가 자기 동네에 책방을 냈다는 얘기를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해방촌을 갔을 때 벌써 하나 둘씩 못 보던 식당들이 들어서 있었다. 과일가게랑 동네 구멍가게가 없어진 대신에 말이다. 다행히 좋아하는 분식집은 아직 있었지만 다음에 왔을 때 다시 떡볶이를 먹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얼마 전 <수요미식회>에서까지 해방촌을 소개해 줬으니 더욱 '힙'해지는 건 시간문제일 듯하다.


#젠트리피케이션#예능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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