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인턴을 확대, 해외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든지. 구체적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계속 포기하는 (청년) 세대 문제, 저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자원봉사라도 나가서 어려운 일도 해보고... 스피릿(정신)이 중요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일전에) 어려운 나라에 간 적이 있었는데, 자원봉사를 나간 한국 청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나보고 하라면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활하는 모습을 봤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8일 광주 조선대 강연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던진 말이다. 지난 14일 또 다른 청년들과의 대화 자리에서도 인턴 확대를 강조해 동 세대에게 '현실을 모른다'는 거센 비판을 받은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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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장 입구에서도 비슷한 항의가 이어졌다. 일부 조선대 재학생과 고등학생들은 반 전 총장이 등장하자 "청년인턴 확대? 아직도 노오력이 부족해 죄송합니다" 등의 손 팻말을 들고 시위를 펼쳤다. 한 학생은 "청년 문제도 모르면서, 인턴을 늘리면 된다고? 공부나 더하고 오시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한국 청년문제에 마크 주커버그 제시, 정치 질문은 "여기선 안해" 회피
비판 목소리에도 메시지는 한결 같았다. 그는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은 아니다, 우리보다 더 높은 나라가 꽤 있다"고 진단하면서 "여러 기회가 많다, 정치 지도자들이 (청년문제에 대해서) 정책적 우선순위를 (달리)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의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도전, 창업,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더라. 우리나라도 패자부활전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한다. 미국 10억 불대 갑부들은 다 창업한 사람들이다. 부모 상속 받은 사람들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한다."삼포세대로 대변되는 한국 청년의 현실에 미국의 사례를 대입해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구체적 해결방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유엔사무총장 시절 28세 청년을 청년 문제 담당 유엔사무총장 특사로 임명한 것을 강조하며 "정부도 이런 문제에 중점을 둬야한다"는 발언에 그쳤다. 패널로 나온 한 학생이 "현실적인 정책 방안"을 묻자 "아까 설명 드렸으니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생략하겠다"고 일축했다.
반 전 총장의 청년 인턴 확대론은 '기회를 준다'는 명분 아래 청년이 당장 직면한 현실 문제를 도외시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반 전 총장이 사무총장 재임시절 직면했던 유엔 무급인턴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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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위에 참가한 황인용 조선대 문예창작과 학생(28)은 "청년인턴제를 확대해야한다는 반 총장의 발언을 듣고 분노했다"면서 "그런 처방은 청년 착취의 또 다른 말이다, 대통령이 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대권 주자로서 정치적 성향을 묻는 질문에는 "정치 문제를 이야기하려고 온 것은 아니다, (학교라는) 장소가 어색해서 정치 문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그렇다"며 말을 돌렸다. '정당 선택 여부'에 대한 질문도 "기회가 되면 말하겠다"며 "보좌관이나 정치하는 분들과 이야기한 뒤 진로를 정할 테니 양해를 구한다"고 답했다.
청년 실업 문제와 달리 반 전 총장은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 만큼은 명확한 입장을 전했다. 그는 "안보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지금 한반도 상황은 준전시 상태"라면서 "사드는 순수한 방어용으로, 공격용이 아니다. 중국 등 주변의 문제들은 얼마든지 외교로 해결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어려울 때일수록 힘 합치면..."
"저는 6살 때 6.25 나고 땅바닥에서 공부했다. 나무 그늘 밑에서, 교실도 없고.""이제는 소위 부자나라 클럽에 들어가서, 우리 입장을 세계 발전과 같이 토의하는 나라가 됐다. 자랑스럽지 않나?"반 전 총장은 특히 특강 자리에서 한국의 세계적 위상을 강조했다. 그는 "값비싼 희생을 치러 고귀한 생명을 바침으로써 민주주의 싹이 정착됐다"면서 "세계에서도 자랑할 수 있는 민주대국, 경제대국, 인권을 지키는 나라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반 전 총장은 "원조 받던 나라가 이제 못 사는 나라에 원조를 주는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이 자부심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강조하면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반 전 총장의 발언은 보수 성향의 정치인이 자주 구사하는 정치 수사와 맞닿아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4년 12월 핵심국정과제 점검회의 모두발언에서 "구성원인 국민이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할 때 나라가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자국에 대한 자부심을 당부한 바 있다.
반 전 총장은 특히 "어떤 위기든 같이 하면 못 이룰 게 없다"며 국민의 단합된 힘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14일 귀국길에서 주요 메시지로 제시했던 '국민 대통합'의 일환이었다.
반 전 총장은 조선대 강연 전 방문한 광주 5.18민주묘역에서도 "(한국이) 정치, 경제에서 어려운 면이 없잖아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가 힘을 합치면 못 할 일이 없다, 모두 이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또한 박 대통령의 메시지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5년 식목일 식수 행사에서 "(국민 노력으로) 벌거숭이 산이 푸르게 덮였다"면서 "모든 일도 다 그렇게 마음을 합해야 하고 어려운 일일수록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광주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질문에 "다음에"
광폭 행보를 연일 이어가는 대권주자임에도, 사드 문제 이외의 메시지는 '공허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5.18민주 묘역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문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에 하겠다"며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묘역을 둘러보는 동안 최정길 묘역관리소장으로부터 "(5.18 희생자와 민주 열사를 기리기 위해) 추모곡을 부르고 있는데, 정부 기념식 당일에는 못 부르게 하는 현실이다. 광주시민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야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을 들었음에도, 반 전 총장은 별다른 답을 꺼내지 않았다.
반 전 총장은 대신 이 자리에서 호남 지역의 정치적·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5.18 민주묘역에서 분향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호남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시발점이 되는 곳으로, 민주주의 원산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귀국한 뒤 부산·경남을 시작으로 18일 호남 지역까지 연일 '대권'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보여주기 식 행보라는 지적과 함께 따라오는 소소한 실수도 계속됐다. 조선대 강연에서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기 전 다른 참석자와 달리 목례를 했다가 실수를 알아차리고 급히 가슴에 손을 얹어 경례 법을 혼동했다는 지적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