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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미군기지 장서였다가 한국항공대학교 도서관 장서로 바뀐 책을 헌책방에서 만납니다.<Stuart D.B.Picken-Buddhism, Japan's cultural identity>(kodansha international,1982)인데, 대출표가 그대로 붙었고 대출실적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대출실적이 없는 책이었기에 대학도서관에서 버려졌구나 싶습니다.

헌책방에서 이 같은 책을 만나기에 몇 가지를 새롭게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한국에 있던 미군기지는 군대만 있지 않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둘째, 미군기지는 세계 여러 나라에 군부대만 퍼뜨리지 않고 제 나라 문화를 퍼뜨리려고 이렇게 한국에 있는 대학도서관에까지 그들 책을 보내 주었구나 싶어요. 셋째, 한국에서는 공공도서관도 대학도서관도 대출실적이 없으면 책을 건사하지 않고 버리고 마는 대목을 엿보아요.

 2001년 홍대 앞에 있는 온고당에서.
2001년 홍대 앞에 있는 온고당에서. ⓒ 최종규

 주한미군부대에서 나온 책.
주한미군부대에서 나온 책. ⓒ 최종규

어느 모로 보면 도서관으로서는 어쩔 수 없어요. 왜냐하면 한국에 있는 공공도서관이나 대학도서관이 '더 많은 책'을 '더 알뜰살뜰 건사하려는 뜻'으로 건물을 늘리는 이야기는 거의 못 듣거든요.

그런데 도서관은 책을 꼭 버려야 할까요? 도서관 건물이 좁아서 책을 모두 둘 수 없다면 '도서관을 둘러싼 마을'에 있는 빈집을 얻거나 사들여서 마을 빈집을 '작은 마을도서관'으로 꾸며서 그곳을 새롭고 재미난 '도서관 쉼터'라든지 '도서관 길손집(도서관 게스트하우스)'으로 꾸며 볼 만하지 않을까요?

한국에서 거의 모든 도서관이 책을 버리기 때문에 이 버려진 책을 헌책방이 건사합니다. 헌책방 일꾼은 '버려지는 책에서 틀림없이 되살릴 만한 보물'이 있으리라 여깁니다. 그리고 참말로 헌책방 일꾼이 보물을 캐내지요. 비록 대출실적이 0이었어도 '도서관에서 버려 주었기 때문'에 수많은 작가와 학자와 독자는 '첫 쇄를 찍고 사라진 아름다운 책'이라든지 '주한미군이 고맙게 퍼뜨려 준 알뜰한 책'을 헌책방에서 제법 싼값으로 장만할 수 있기도 합니다.

 2001년 여름. 온고당 앞.
2001년 여름. 온고당 앞. ⓒ 최종규

 2000년. '온고당'에서.
2000년. '온고당'에서. ⓒ 최종규

 2001년, 온고당 지하 매장
2001년, 온고당 지하 매장 ⓒ 최종규

헌책방 '글벗서점'이 있습니다. 이곳은 처음부터 '글벗서점'이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온고당'이라는 이름이었어요. '온고당'이라는 이름은 오늘날 '글벗서점'을 꾸리는 기광서(67) 님 외삼촌이 꾸리던 헌책방 이름입니다. 기광서 님 외삼촌은 일본에서 배우셨고, 서울 청기와예식장 앞에서 '온고당'이라는 이름으로 헌책방을 꾸리셨다고 합니다. 1980년 언저리에 기광서 님이 외삼촌 일을 거들었고, 나이가 많은 외삼촌이 책방 일을 접을 무렵 기광서 님이 책방을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983년에 김현숙(61) 님이 기광서 님하고 혼인을 하면서 함께 헌책방 살림을 이끌었다고 해요. 김현숙 님은 아이를 낳으면서 경성고등학교 옆자락에서 살림을 꾸리며 '온고당' 헌책방을 지킵니다. 기광서 님은 홍대 옆자락에 1988년에 새 헌책방을 열면서 이곳에 '글벗헌책가게'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올려요. 한 집안 두 책방인 셈이에요.

 2002년. 온고당 지하 매장
2002년. 온고당 지하 매장 ⓒ 최종규

 2001년. '헌책방 북까페' 카사.
2001년. '헌책방 북까페' 카사. ⓒ 최종규

 2003년. 2층 북까페 불도 밝다.
2003년. 2층 북까페 불도 밝다. ⓒ 최종규

저는 1994년 2월에 '글벗헌책가게'를 처음으로 찾아갔습니다. 이해에 갓 대학생이 되어 서울을 비로소 드나들었어요. 아직 서울 지하철이 익숙하지 않은 때요, 2호선을 탈 적에 어느 자리에 서야 하는가 늘 헷갈려서 엉뚱한 열차를 타던 무렵입니다. 새 학기가 되기 앞서 동아리 선배 한 분이 '책을 매우 좋아하는 후배'를 눈여겨보고는 그 선배가 즐겨 다니는 '학교 앞 헌책방'으로 '글벗헌책가게'를 알려주었어요. 동아리 선배는 홍대생이었기에 홍대 앞 헌책방을 알려주었지요.

그러나 저는 두 차례나 헛걸음을 합니다. 선배는 '홍대 앞'에 있다 말하고, 더 꼼꼼히 알려주지 않았어요. 홍대라는 곳도 전철역에서 내린 뒤 한 시간 만에 찾았지만, '글벗헌책가게'를 찾기까지는 이틀을 더 헤매야 했고, 사흘째 길을 헤매다가 찾았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막상 찾고 보니 '홍대 앞'은 틀린 말은 아니었어요. 다만 '홍대 옆'이라고 했으면, 홍대 앞문에서 왼쪽을 보며 칠십 미터쯤만 가면 된다고 했으면, 이틀이나 길을 안 헤맸을 텐데 싶더군요.

 2002년. 이때에도 책꽂이는 처음에 낮았다.
2002년. 이때에도 책꽂이는 처음에 낮았다. ⓒ 최종규

 2002년.
2002년. ⓒ 최종규

 2003년
2003년 ⓒ 최종규

지난날 '공씨책방'이라는 헌책방이 '개미소굴'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책으로 가득 차서 개미소굴처럼 좁다는 뜻이요, 개미처럼 바지런히 책을 갖추어 작은 책방이 온통 책나라 같다는 뜻입니다. '글벗헌책가게'에 처음 발을 들일 적에 바로 '개미소굴'이라고 느꼈습니다. 날씬하지 않으면 골마루를 지나갈 수 없어요. 날씬하더라도 겨울에 두꺼운 옷을 입으면 못 지나가요. 날씬하면서 가볍고 얇은 옷을 입어야 비로소 이 헌책방 골마루를 지나갈 수 있어요.

저는 한겨울에도 얇은 겉옷 하나만 걸치고 살았기에 개미소굴 헌책방에서 퍽 홀가분하게 이곳저곳 누볐습니다. 처음 '글벗'에 들던 날 프랑스에서 손바닥책으로 엮은 반 고흐 화집 한 권하고 <연려실기술> 한 권을 장만했어요. <연려실기술>은 열 권이 넘는 판으로 고전국역총서로 나왔는데, 한 권을 다 읽고 나서야 다음 권을 사겠다는 마음으로 하나씩 장만했어요.

 2003년 겨울
2003년 겨울 ⓒ 최종규

 2003년.
2003년. ⓒ 최종규

작은 난로 하나로 추위를 녹이는 헌책방에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작은 난로 하나가 있든 말든 난로하고 멀찌감치 떨어진 데에서 새로운 책을 만나며 읽는 데에 푹 빠졌습니다. 인천에서 서울로 전철을 타고 건너오다 보면 한강이 얼어붙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추위에도 맨손으로 낡은 책을 뒤지고 살피면서 머릿속에 새로운 이야기를 담으려 했습니다.

홍대 앞에 있는 헌책방 '글벗'은 홍대생한테 더없이 알찬 곳간 구실을 했습니다. 그림, 사진, 디자인, 건축, 예술하고 얽힌 나라 안팎 멋진 책들을 바로 이곳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도서관에조차 없는 책이 이 자그마한 개미소굴 헌책방에 가득했어요. 홍대생뿐 아니라 미대생이나 예대생이라면 전국에서 '글벗'을 찾아왔고, 학생뿐 아니라 교수와 작가와 건축가도 이 작은 헌책방을 수없이 드나들거나 '이런 책 찾아 달라'는 쪽글을 잔뜩 남겼습니다.

'글벗헌책가게'는 아마 한국에서 '미술·사진·예술 전문 1호 책방'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1990년대뿐 아니라 2000년대로 들어설 무렵만 해도 '미술·사진·예술' 갈래 책을 전문으로 다루는 책방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런 전문 책방 노릇을 바로 작은 헌책방 한 곳이 했어요.

 2004년
2004년 ⓒ 최종규

 2004년
2004년 ⓒ 최종규

 2004년
2004년 ⓒ 최종규

'글벗헌책가게'는 1995년 무렵 새로운 터를 마련합니다. '글벗' 건너편에 '온고당'이라는 이름으로 너른 가게를 새로 열어요. '글벗'은 그대로 있으면서 건너편 1층에도 가게를 꾸렸는데, 이러다가 '글벗'은 2002년 무렵 문을 닫고, '온고당' 자리 지하에 헌책방 매장을 넓혀요. 2001년에는 '온고당' 자리 2층에 '카사'라는 이름으로 북카페를 열었지요. 이즈음 서울에 있는 대형서점에서도 책방 한쪽에 '차를 마시는 자리'를 작게 열었지요. 마을책방으로서, 또 헌책방으로서 아예 한 층을 '북카페'로 연 일은 이때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헌책방 북까페 카사'는 몇 해 뒤에 문을 닫아요. 요즈음 이런 자리가 생겼다면 많이 달랐을 만한데, 2000년대 첫무렵에 북까페는 아직 일렀는지 모릅니다.

2006년에는 두 가지 일이 있습니다. 먼저 '온고당' 경희대 지점이 문을 엽니다. 그리고 기광서·김현숙 두 분이 홍대 앞 헌책방을 젊은 분한테 물려주기로 하면서, 동교동 큰길가 쪽에 새 헌책방을 열어요. 새로운 헌책방은 '글벗서점' 이름을 씁니다.

 2005년
2005년 ⓒ 최종규

 2005년
2005년 ⓒ 최종규

 2005년. 단골 가운데 한 분인 남재희 님
2005년. 단골 가운데 한 분인 남재희 님 ⓒ 최종규

1994년부터 '글벗헌책가게'를 드나들면서 '두 가지' 온고당을 만났어요. '첫 온고당'에 찾아가던 때에는 아직 이 헌책방집 아이들이 매우 어렸어요. 책방하고 살림집이 맞붙던 예전 경성고등학교 옆 '첫 온고당'에 찾아가면 헌책방집 아이들이 안쪽 방문을 살짝 열고 눈으로만 빼꼼 저를 쳐다보았어요. 책손을 구경한달까요, 아니면 저희(아이)가 볼 책(어린이책)을 저 사람이 사갈는지 모르니 지켜보는 셈이었을까요. '나중 온고당'을 거쳐 2006년부터 '새 글벗'을 드나들 무렵에는 다 큰 헌책방집 아이들을 만납니다. 처음에는 틈틈이 책방 일을 거드는 헌책방집 아이들이요, 이제는 어머니 아버지하고 함께 헌책방을 지키고 돌보는 듬직한 일꾼입니다.

 2005년
2005년 ⓒ 최종규

 2005년
2005년 ⓒ 최종규

 2006년
2006년 ⓒ 최종규

헌책방집 아이가 '헌책방지기'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헌책방지기'라는 일자리를 그리 높게 여기지 않았어요. 1990년대까지 헌책방은 '고물업'에 들어갔어요. 똑같이 책을 다루는 곳이지만 '책방 등록'이 아닌 '고물업 등록'만 되었어요. 헌책방지기가 캐내고 손질하고 가다듬고 추스른 아름다운 헌책을 찾아나서는 분들은 그저 책이 좋고 반가운 마음인데, 사회에서는 이 일을 '새책방하고 물이 다른' 일로 여기곤 했어요.

새책도 책이요 헌책도 책입니다. 모든 책은 그저 책입니다. 또한 모든 책은 헌책이 됩니다. 모든 새책은 우리가 이 책을 장만하는 바로 그때부터 헌책으로 바뀌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새책을 장만하면서 '책'을 읽을 뿐, 새책이나 헌책이라는 경제가치로 따지지 않아요. 책에 깃든 이야기를 아름답게 누리려고 책방마실을 하면서 책을 만나요. 값진 책을 사거나 값나가는 책을 모으려고 책방마실을 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경춘서점' 사장님은 할머니 나이인 헌책방지기인데, 그분 아버님을 이어 헌책방지기가 되셨어요. 이제 '글벗서점' 기광서·김현숙 두 분은 할아버지 할머니 나이로 접어들었습니다. 두 분 아이들은 어엿하게 자라 즐거운 헌책방지기로 뿌리를 내립니다. 어릴 적부터 집안에서 늘 지켜보던 책살림을 새롭게 가꾸는 길을 걷습니다. 앞으로 이 나라에 새로운 책숨을 불어넣고 책노래를 들려줄 책방으로 가꾸는 길을 가지요.

 2006년, 온고당 경희대 지점
2006년, 온고당 경희대 지점 ⓒ 최종규

 2007년
2007년 ⓒ 최종규

그나저나 '글벗서점'은 2016년 11∼12월에 다시금 큰 고빗사위를 지났습니다. 지난 2016년에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 공씨책방은 새 건물임자가 '달삯을 곱으로 올린다'는 으름장에다가 '아무튼 가게를 뻬라'는 말만 남기며 고단한 책살림을 잇습니다. '글벗서점'은 2006년에 터를 잡은 데를 떠나 새로운 터로 옮겼어요. 수십만 권에 이르는 책을 싸서 날랐지요. 책꽂이를 모두 뜯어서 새로 짰고요. 건물을 통째로 손보면서 추운 겨울을 땀범벅으로 지냅니다.

새로운 터에는 새로운 간판을 붙입니다. 책방 이름은 그대로입니다만, "세상의 모든 책은 사람이다"라는 글씨를 커다랗게 붙여서 불을 밝혀요.

참말로 온누리 모든 책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온누리 모든 사람은 책입니다. 사람이 책이요, 책이 사람입니다. 모든 책에 깃든 이야기는 우리 숨결이면서 사랑입니다. 우리가 짓는 삶은 언제나 새로운 책으로 태어납니다.

 이 밝은 불빛을 따라 책 좋아하는 분들 발길이 이어지기를. 2016.12.
이 밝은 불빛을 따라 책 좋아하는 분들 발길이 이어지기를. 2016.12. ⓒ 최종규

새터에서는 1층에 '인문사회·자기계발', 2층에 '외국서적·종교서적', 지하에 '예술서적·각종 교재'로 나누어 책을 갖춥니다. 모두 석 층에 이르는 새롭고 알찬 헌책방이에요. 서울에서 홍대 앞과 신촌이라는 곳이 책마을이 되도록 북돋운 바탕이라면, 이 마을자락에서 오래도록 책으로 삶을 지은 글벗서점·온고당, 공씨책방, 숨어있는 책, 우리동네책방, 연남동으로 옮긴 정은서점, 한때 이 마을자락에 있다가 문을 닫은 원천서점, 신촌헌책방, 동국서적이 시나브로 힘이 되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아주 작은 개미소굴 헌책방이 든든한 석 층짜리 헌책방으로 서기까지 얼추 마흔 해가 지났습니다. 앞으로 마흔 해가 더 지나면 글벗서점 둘레는 어떤 책마을로 달라지는 모습이 될까요?

 2006년 12월. '글벗서점'으로 새로 연 헌책방. 처음이라 책꽂이 높이가 어른 허리만큼이다.
2006년 12월. '글벗서점'으로 새로 연 헌책방. 처음이라 책꽂이 높이가 어른 허리만큼이다. ⓒ 최종규

 새로 글벗서점을 열던 2006년. 한창 바쁘게 일하시던 즈음, 책방 일을 하는 분들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새로 글벗서점을 열던 2006년. 한창 바쁘게 일하시던 즈음, 책방 일을 하는 분들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 최종규

<글벗서점> 책방지기 김현숙(61) 님하고 책방하고 얽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책방을 옮기기 앞서인 2016년 11월 10일, 그리고 책방을 옮기고 나서인 2016년 12월 8일에 나누었습니다.

- 이 자리는 언제까지 비우셔야 하나요?
"20일 남았어요. 11월 30일까지 비워야 해요."

- 얼마 안 남았군요
"네, 20일 남았어요."

- 이 책들을 20일 만에 싸셔야 하네요.
"이 책을 싸서 옮길 생각만 하면 답이 안 나오고 있어요. 그러나 그 날짜에 맞춰서 다 비우기는 해야 합니다."

- 꽤 많은 버리시겠네요
"그동안 버려야 하는 거를, 증말 하나라도 팔려고 못 버린 오래된 잡지, 해가 지나서 못 버린 교과서들을 이번 기회에 솎아서 내놓을 생각이에요."

 2008년. 글벗서점 책꽂이가 차츰 높아진다.
2008년. 글벗서점 책꽂이가 차츰 높아진다. ⓒ 최종규

- 헌책방 하시는 분은 다 알지만, 잡지나 교과서가 20년 지나면 값어치가 다시 생기잖아요.

"그런데 그 책들을 보관할 창고가 없어서요."

- 20년을 지나면 모든 책은 새로운 값어치를 얻지만, 그 20년이 되기까지 5년이나 10년밖에 안 되면 폐지로 대접을 받는구나 싶어요.
"어제 정말로 많이 솎아냈잖아요. 건축잡지라든지. 정말 누구한테는 필요할 텐데 한 권 두 권 놓아 둔 게 산을 이뤘거든요. 여직 기다린 건데요, 어제는 눈물을 머금고 차에 실어서 파짓간에 팔았어요. 남편이 다 하나하나 골라서 사온 책인데, 저 새 가게에서는 다 둘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했어요. 옛날 같으면 어쨌든 안을 텐데. 지금도 저희는 대학교재 많이 지난 거하고, 초·중·고 문제집 많이 나올 거예요. 딱 눈 감고, 생각 안 하고, 당장 내일 찾아올 손님 계시겠지만, 오늘은 다 빼야 합니다."

- 그래도 또 새 곳에 가시면 다시 쌓일까요?
"지금까지 해 온 바로는 또 쌓이지 않겠어요? 그러나 거기는 장소가 좀 협소한 관계로 되도록 덜 쌓으려고 생각합니다."

 2008년. 예전 책방 앞 모습.
2008년. 예전 책방 앞 모습. ⓒ 최종규

 2009년 4월. 버스전용차선 때문에 거님길을 깎고 나무를 베어내기 앞서.
2009년 4월. 버스전용차선 때문에 거님길을 깎고 나무를 베어내기 앞서. ⓒ 최종규

- 사장님도 큰 새책방 가 보신 적이 있지요? 어떤 느낌을 받으시나요?

"사진으로만 보면, 저분들 인테리어라든지 저희가 좀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저희는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거기 알라딘이 잘 해 놓은 거를, 되도록 저희도 본받아서 잘 좀 정리를 하고, 뭣보다 찾으러 오시는 손님들한테 편리성을 드리고자 해 볼까 하는데, 그게 가능할는지 의문이 있어요."

- 예전에 홍대 앞에 있으셨을 때, 처음 그 가게를 넓게 얻으셨을 적에는, 책꽂이가 어른 가슴보다 낮았잖아요. 그런데 한두 해 지나면서 차츰 높아지고, 천장까지 닿았어요.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자꾸 책이 쌓아지니까 공간 활용하려고 책으로 가득가득, 손님도 답답하고 저도 답답한데, 한 권이라도 눈에 보이면 이게 필요하겠지 하며 책을 많이 쌓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지금 다 솎아서 버려야 해요. 저쪽에 가도 문제집 안 할 수 없는데 쪼끔만 하려고요. 이 책들 세일을 할까 했더니 그냥 버려야겠어요. 그리고 세일을 하다가 밑에 다른 서점에 영향을 줄까 봐 안 할려고요.

움직일 생각하면 갑갑하죠. 그래도 많이 치웠어요. 거기는 공사하고, (새로 책방이 들어설) 그 카페 자리가 뜯어낼 것이 많아요. 벽에도. 그래서 책장 하나 더 들어갈 자리가 벽에 많아요. 그거 뜯어내려고 돈 백만 원 들어갔어요. 아래(어제)에도 육십만 원 나갔어요. 오늘도 또 한 차 나갈 거예요. 아저씨하고 마 선생님하고 그곳에서, 책도 묶고 바빠요...... 책장은 기술자가 짜야지. 내 생각하고 아저씨 생각은 다른데, 내 생각은 반영이 안 되어서, 아저씨한테 그냥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2009년 7월 글벗서점. 책꽂이가 꽤 높아졌다.
2009년 7월 글벗서점. 책꽂이가 꽤 높아졌다. ⓒ 최종규

(손님 : 아이가 글벗 사장님 같은 헌책방 사장님이 꿈이야 하고 말해. 책이 좋아서 헌책방 하고 싶다고 말을 하더래.)

"응, 꿈이 있으면 이루어져. 어쨌든 꿈이 있어야 해."

- 다른 헌책방을 봐도요, 책방을 옮기실 때 아까 말씀처럼 눈 딱 감고 안 고르고 그냥 다 버려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안 그러면 일을 못 하니까요.
"근데 저희는 정말 다 안고 다녔어요. 여태까지. 여기서 2층을 옮길 때도 거의 두 차 정도는 폐기를 했는데, 나머지는 다 벤딩하고 일꾼 돈 들이고 가져갔는데 거기 가서도 또 버릴 게 나오지요. 그래도 책을 못 버려요. 책을 처음에 하나씩 선별해 사온 걸 생각하면, 자식 같은 책이라서 못 버리고, 또 누군가 찾을 책 같아서 못 버리고, 그래서 이렇게 포화 상태가 된 거예요."

 2009년 7월. 아직 갓난쟁이인 큰아이하고 마실을 왔다.
2009년 7월. 아직 갓난쟁이인 큰아이하고 마실을 왔다. ⓒ 최종규

 2010년 11월. 책이 차츰 쌓이며 바닥에 상자를 두고 책을 놓는다.
2010년 11월. 책이 차츰 쌓이며 바닥에 상자를 두고 책을 놓는다. ⓒ 최종규

- 어제 공씨책방 사장님이 둘레에 요즘 생긴 독립책방 갔다 온 느낌을 얘기해 주시더라고요. 알라딘 지점도 가 보셨다고. 느낌을 말씀하시는데, 이녁 책방이 책이 훨씬 많다고. 알라딘은 매장은 넓은데 책이 가짓수가 너무 적다고 하셔요.

"저는 이 가게 일 때문에 다른 데 답사를 사실은 못 하는데, 저는 손님들이 알라딘 갔다 오신 손님, 예스24 지점 오픈한 날 다녀오신 손님, 한 달 뒤에 또 다녀오시고 그 상황을 설명해 주세요. 그래서 저희는 안 가 보았아도 가 본 듯이 느끼는데, 인테리어는 저희가 개선할 대목이라고 생각하는데, 손님들이 두 번 가 보니 책이 없더라고, 예스24도 재고는 40퍼센트 할인하고 회원이라고 또 10퍼센트를 할인해 줘서 만 원짜리를 사천 원 해 주고 또 깎아서 3600원 해 주더라고 자랑을 했는데, 다음에 가니 살 책이 없다고 그래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 저희가 많이 힘들다고 생각한 지점이 합정 알라딘 오픈 이후거든요. 3월에 합정점이 열었는데, 그때부터 모든 경제가 힘들어져서 저희가 힘들다고 느끼는지 모르겠는데, 연신내에 알라딘 지점이 오픈할 적에, 그곳에 있던 문화당서점 사장님이, 연신내 알라딘이 오픈 하자마자 (헌책방을) 접었어요, 많은 분들이 애석해 하고 가슴 아파 하셨거든요. 그 소식 들은 지 얼마 안 되어 알라딘이 합정에 오픈한 거지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인지 모르겠는데, 그 뒤로 책을 찾으러 오신 손님이 많이 줄었어요. 틀림없이 영향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런데 거기가 교통이 좋아요. 유야무야 가벼운 책은 합정 알라딘에 가면 사기 때문에, 저희 가게에 안 오시게 되는 거예요. 합정동에 계신 단골들이 합정에 알라딘이 생겨서 걱정된다고 말씀해 주시기도 했어요. 그래도 저희는 최대한 열심히 노력하고 좋은 책을 사서 교체하면 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신촌에 알라딘 지점 생길 적에는 저희한테는 크게 변화가 없었어요, 그냥그냥 해 왔는데, 합정에 오픈을 했다 하니까 바로 저한테 영향을 받아요.

3, 4, 5월 너무 덥고 사회 모든 경제가 힘들어서 그렇구나 하고 위안을 삼았거든요. 그래도 요즘에는 많이 나아지겠지, 앞으로 나아지겠지, 하고 희망을 하고 가게를 움직이게 되었어요. 임대 계약을 재계약해야 하는데, 아마 적게 올리지는 않겠지만, 지금 세가 600인데 또 오르면 700 되잖아요. 그러면 저희가 이 자리에서 장사를 못 하겠어요. 그래서 이 자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은 정말 1퍼센트도 없는데, 저희가 이 자리에서 되지가 않잖아요. 그래서 이 자리를 뜨고 좀 저렴한 데로 가자고 했는데, 건너갔는데 똑같아졌어요. 임대료가 줄지 않고 같아요. 찾아보니까 싼 가게가 없어요.

그래서 지하실이 있으면 어떨까 월 200이 나가는 곳이 없나 하고 찾아보는데, 저희가 들어갈 만한 지하 공간이 또 없고, 또 그런 가게가 없어서 저희가 비닐하우스 빌려서, 저기 일산 논바닥이나 대형비닐하우스에 쟁여서 기다려 보자고 했거든요. 여기는 30일에 비워야 하니까요. 그런데 마침 알음알음 다니다가 길 건너에 자리가 있어서 트라이를 하니까, 잘 협상을 해서 여기하고 똑같이 임대료가 되기로 해서 결정을 했어요. 책방을 해야겠고, 변화를 해 보면, 우리가 그 기본은 팔 수 있지 않을까. 걱정은 하지만 또 희망을 하면서 일을 진행을 하고 있어요."

 2011년 3월. 책방 앞에서
2011년 3월. 책방 앞에서 ⓒ 최종규

- 어느 모로 보면 우리 나라 헌책방에서 글벗서점이 서울에서 아주 씩씩하게 하는 곳이라고 손꼽을 수 있어요. 그만 한 임대료를 책을 팔아서 책방을 한다는 그런 마음이 있으시니까요.

"저희가 2층까지 할 적에는 월 1100을 냈어요. 월 1100을 임대료를 내니까 저희가 정말 부스러기도 안 남아. 정말 모자라는 살림을 살았어요. 되겠지 되겠지 하다가도, 아무리 많이 팔아도 월 1100을 내다 보면 남는 게 없어요. 흑자가 아니고 적자더라고요. 책도 새로 사야 하고, 여태 몇 십 년을 해서 쉽게 접을 수 없고, 아직 저희가 일을 해야 하는 때예요. 결혼 시킬 아이도 없고, 적어도 10년은 죽을 수도 없고, 잘 해야 한다는 각오로, 또 새 가게에서 새로운 각오로 새 손님을 맞이해서 저희 목표를 달성해 봤으면 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움직이고 있어요."

- 저도 합정 알라딘에 두어 번 가 봤어요. 저는 책 내는 일 하면서 출판사 찾아가서 원고 살피고 그러는 일을 하니까요, 출판사가 거의 그 합정역 언저리에 아주 많이 몰렸거든요. 그리고 합정역 둘레가 좀 서민들이 많이 사는 그런 마을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그 자리가 목도 교통도 아주 좋은 자리였던 셈이지요. 알라딘 매장을 보며 느낀 대목은, 아주 넓은 자리를 활용을 못 해요.
"커피 카페랑 문구류를 함께 하니까요, 손님이 문구류 사러 갔다가 책 살 수 있고, 거기를 모이는 장소나 약속 장소로 할 수 있고. 아마 고런 거를, 책만 해서는 안 되겠다 싶더니 커피도 팔고 문구류도 팔고, 헌책도 사고 팔고 그런 식으로 운영을. 새로 오픈한 곳이 전부 그렇잖아요."

 2013년 12월. 버스전용차선이 넓어지면서 책방 앞 거님길이 매우 좁다.
2013년 12월. 버스전용차선이 넓어지면서 책방 앞 거님길이 매우 좁다. ⓒ 최종규

 2014년 3월. 책방집 아이는 이제 '책방 일꾼'으로 거듭났다.
2014년 3월. 책방집 아이는 이제 '책방 일꾼'으로 거듭났다. ⓒ 최종규

- 새 가게에 가실 적에, 그곳에는 책꽂이를 하나 덜 놓더라도 책걸상을 한 군데쯤은 손님들한테 주는 자리가 있어야지 싶어요. 그리고 골마루마다 작은 걸상을 두 개씩 놓고요.

"거기는 앞에 통유리라 거기 막을 수 없기에 거기에는 내 가슴 높이로 쌓고, 그 앞에 낚시의자를 놓아서 손님을 맞을 계획을 세워 놓고 있어요. 저기 2층까지 할 적에 카페를 할까 생각했는데, 도저희 저희가 카페 운영 할 여력은 안 되고, 고민 끝에, 세 부담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을 하다가, 그냥 2층은 원서를 전부 올려다 놓고, 차라리 거기서 커피 마시는 만큼만 책을 팔자고, 그렇게 꾸미는 거예요. 잘 했는지 잘못 했는지 모르겠지만. 휴식 공간이 있으면 더 좋았을 뻔했는데. 책이 많이 안 들어가서 책을 더 꽂아야 할 것 같아."

- 쉴 자리가 다른 카페처럼 널찍하지 않아도 되어요. 책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요, 걸상 하나만 있으면 되거든요. 그리고 그 걸상 하나가 생각보다 다리쉼에 아주 좋고요, 더 느긋하게 책방에 머물 수 있어서, 그냥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데, 낚시걸상보다는 통 원목 있잖아요, 동그란 통나무 낮은 것을 놓으면 더 책방스러우면서 손님들도 좋아할 듯해요.
"휴식공간이 꼭 필요하다, 저번날 부산 우리글방 문옥희 여사님이 그 카페 하는 데를 한번 방문하기로 했는데 결국은 못 갔어요. 사진으로는 봤고, 딸은 갔다 왔어요. 딸은 구경을 하고 왔는데, 그분은 사진을 찍잖아요, 그분은 여기도 사실 계산대 앞 요만큼만 책을 치워서 손님들 앉는 자리로 해도 좋았을 텐데 하고 말씀하시더라고."

 2014년 3월. 책시렁 한켠
2014년 3월. 책시렁 한켠 ⓒ 최종규

(손님한테, 보고 싶은데 되게 오랜만에 오셨네)

(손님 : 저는 여기 말고도 되게 여러 군데를 다녀요)

"또 오셔요. 그 책 말고 새로운 책을 보셔야지. 어제 어느 손님이 오셔서 이 책방 짐 들고 가기 어려운데 한 권이라도 사 줘야지, 이사 가시는데 짐 들어 드려야지 하고 책을 사신다는데, 정말 고마웠어요. 눈물이 찡 나요.

아무리 알라딘이라고 해도 이 창가 쪽에 책을 치우고 걸상을 놓으면 글벗서점은 어디에도 밀리지 않을 거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이곳이 11월에 재계약이니까 그때 어떻게 될는지 모르고, 그때 가서야 인테리어를 다시 하기로 했는데 어쨌든 이전으로 결정이 되었잖아요. 

그래서 새로운 곳에 가면 단골손님도 오시겠지만 새로운 손님도 오실 테고, 사실 마음이 들뜬 분위기야. 책 진열도 어떻게 잘 해서 기쁨을 드릴 수 있을까, 책을 만나러 오는 길도, 책을 만나는 것도 기쁨을 드리지만, 여러 가지 조합을 볼 적에 아름답다, 서점을 잘 꾸며 놨구나 인상을 줄 수 있도록 노력을 하는데, 단, 남편이 고집이 세요. 저희가 의견을 내놓아도 그저 남편한테 묵살을 당하거든요. 

그래도 우리 남편이 우직하고 고집이 있기 때문에, 결혼해서 33년을 책방을 해 왔고, 남편은 그에 앞서 몇 년을 더 했는데, 한길을 걸어오면서 늘 자기 생각대로, 홍대에서도 1층과 지하를 자기 머릿속에서 다 했고, 그 많은 책들을 자기 손으로 바깥에서 사다가 이 거대 서점을 이루어냈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면 당신이 최고야 하고 그 또한 매력이 있을 거야 하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지금은 변해야 해, 요즘 홍대 책거리도 뒤에 있으니까, 약간 문화적인 간판도 거기에 맞춰서 하고, 훨씬 앞으로 좋습니다" 하고 의견을 내놓았는데도, 남편은 묵살을 해요.

그냥 여기 간판을 떼어다 새 곳에 붙여야 한다고, 돈도 돈이지만 여기 간판을 가져갈 거고, 책장도 가져갈 거다, 아무리 여섯 명이 여섯 말을 해도 그렇게 가요, 단 책장을 가져가도 통로도 좀 편한 통로가 되도록 할 것이기 때문에 통의자는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앞도 책이 쌓이는 건, 책을 많이 쌓여도 남편은 이렇게 쌓아 놓으면 분명히 누가 사 갈 거야 하면서 책이 쌓인 거예요."

 2016년 7월. 천장까지 빼곡한 책꽂이. 이때까지만 해도 책방을 옮겨야 하는 줄 아무도 몰랐다.
2016년 7월. 천장까지 빼곡한 책꽂이. 이때까지만 해도 책방을 옮겨야 하는 줄 아무도 몰랐다. ⓒ 최종규

- 아까 33년 말씀하시니까요, 저도 어림해 봤어요. 이 책방을 알고 다닌 지 저는 23년이 되었네요.

"저희가 1983년에 결혼을 했으니까 33년이 된 거 같고, 남편은 거기 앞서 남편의 외삼촌이 원래 온고당 서점을 청기와예식장 앞에서 하셨어요. 그게 모태예요. 외숙이 와세대대학을 나오고 하신 분이라, 그 옛날에 '온고당' 상호를 지으셔서, "따뜻한 우리 집"인가요? 헌책이니까 항상 편안하자고 하는 마음으로 운영을 하다가, 조금 연세가 높으시니까, 마침 남편이 군대 가서 제대를 하고 어영부영 있을 때, 너 나 좀 와서 도와라 할 때 잠깐 도와 드리러 왔는데, 몇 년 외삼촌 책방 일을 돕고 했는데, 그때에 저를 만난 거지요."

- 손님으로 만나셨어요?
"손님은 아니고 중매로 만났어요. 저는 인근에 샵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누가 잘 아는 분이 좋은 사람 있다 해서 소개를 해서 만나 보니까, 어쨌든 결혼해서 지금까지 저는 해 왔고, 남편은 시외숙이 하신 역사를 생각하면, 70년 후반에 하신 걸로, 시외숙이 서점을 운영한 걸로 알거든요. 상당히 오래되었어요. 저희도 지금은 '온고당'이라는 상호가 많이 그립거든요. 우리랑 같이 하던 분들한테 책방을 인계하면서 상호까지, 젊은 아이들이라, 우리한테는 상호가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그거 가지고 하라고 해서 주었는데, 저희가 '글벗'을 하는데 저희는 '글벗'이 마음이 안 들어와요.

아직도 저한테 '온고당' 아줌마라고 하시는 분이 많고, 남편한테도 그런 칭호가 되는데, 저기로 새로 가는데 저기를 '온고당' 상호를 달까 하는데, 우리 막내가 '온고당'을 하니까, 상호가 뭐가 중요하느냐 내용이 중요하지. 그래도 이제 왠지 그 상호를 써도 되는가 생각이 있는데, 똑같은 가게 이름이 많잖아요. 그 오래된 서점으로 인해서, 뭔가 특화가 있다면, 저희가 그 '온고당'을 하면 안 돼요. 걔네들 하라고 넘겨줬으니까, 그런데 내용물이 완전 달라. 거기는 디자인 쪽만 가지고 하잖아. 내용이 다른데 우리가 '온고당'을 붙이면 안 될까 생각하는데, 남편이 반대를 하네요."

 2002년. 김현숙, 기광서 두 분 헌책방지기
2002년. 김현숙, 기광서 두 분 헌책방지기 ⓒ 최종규

- 그러면 새로운 이름을 아예 지어 볼 수도 있어요.

"저는 새로운 이름보다는 그 '온고당'이 제일 나은 거 같은데. 외삼촌이 지으셨고, 그 이름으로 저희가 30년 넘게 해 왔고, 어떤 것들이 있다 보니까, '온고당' 뜻을 살펴보면 참 친근하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그냥 글벗으로 가자고, 그래서 간판쟁이한테도 얘기했는데.

애들은 '읽은 책방' 이런 이름도 말하고, 가족회의를 하면 온갖 이름이 나오겠지요. 그런데 남편이 마지막 결정이기 때문에, 저희는 의견만 줄 뿐이지 반영이 안 되어요."

 2016년 11월. 책방을 옮기기 앞서 바쁜 한때. 버릴 책을 버리려고 솎아낸다.
2016년 11월. 책방을 옮기기 앞서 바쁜 한때. 버릴 책을 버리려고 솎아낸다. ⓒ 최종규

골목골목에 있는 책방을 다니면서 작고 예쁜 오래된 마을가게를 많이 봤어요. 마을에 있는 헌책방을 다니고 거기에서 책을 산다면, 밥을 먹든 뭘 하든 그곳에서 오래된 마을가게에 들르고 그곳 이야기를 같이 곁들이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저쪽 노고산동 헌책방 숨어있는 책 옆에 '김진만제과점'이 있어요. 제가 예전부터 정은서점하고 온고당 사이를 걸어서 오가며 꼭 그 앞을 지나갔어요.

처음에 아주 작은 빵집이었고, 마을에서 아는 분만 가는 곳이었는데, 책방마실을 하다가 그 마을빵집에 들르자고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 빵집 이야기를 글로 쓴 지 스무 해가 넘어요. 마을마다 마을책방이나 마을가게가 살아온 이야기를 돌아볼 적에 우리가 스스로 마을을 살리는 길이 되리라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 옛날이야기를 해 보면, 우리 큰딸아이가 우리 경성중·고등학교 앞에서 헌책방 할 때, 세 살 때, 책을 알기 시작했을 때, 어린이책을 사러 오시는 손님이 있잖아요. 우리 딸이 못 가져가게 해요. 내 책이라고. 손님이 너희 어머니한테 돈을 주고 샀다고 해도 안 줘요. 그래서 아이가 없을 때 책을 가져가시라고 했는데,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적에 헌책방을 부끄러워 했어요.

가겟방을 했잖아요. 문을 열고 가야 하는데 계속 망을 보는 거야. 지가 아는 애가 있는가 없는가 망을 보고, 지가 아는 애가 없으면 총알같이 뛰어나갔어. 하교 때는 아빠가 책을 고르고 와서 옷이 지저분하잖아요. 아빠가 딸을 보면 반가워서 이름을 부르면, 애가 성미산 학교 다녔느데 애가 부끄러워서 뒷산으로 올라가 버렸대. 저는 애를 줄줄이 낳았기 때문에, 지 학교에서 뭔가 일이 있어서 방문할 적에도 애를 안고 업고 잡고 갔거든요.

애가 지딴에는 부끄러웠어요. 다른 엄마들은 젊고 예쁘게 꾸며서 오는데, 우리 엄마는 포대기에 아기 안고 동생 손을 잡고 오는데, 요즘 시대에 안 맞는 부끄러운 거라서 피했어요. 한날은 아빠가 아(아이)가 뒷산으로 도망가는 거를 보고는 다음부터 안 갔어요. 걔가 5학년 때까지도. 연년생이라 그 밑에도 아이가 있고 있고 한데, 아이들도 엄마가 학교에 갈 때 아 업고 동생 잡고 가도 다른 애들은 대수롭지 않았는데, 큰딸만 그래서, 큰딸 반에는 안 갔어요."

 2016년 11월. 예전 자리 유리벽에 붙은 알림글
2016년 11월. 예전 자리 유리벽에 붙은 알림글 ⓒ 최종규

 2016년 12월. 새 자리 유리벽에 붙은 알림글
2016년 12월. 새 자리 유리벽에 붙은 알림글 ⓒ 최종규

- 큰딸은 언제 바뀌었어요?
"그래 가지고, 애가 헌책방 집 딸이 너무 싫은 거예요. 헌책방을 너무 싫어했어요. 이 아이를 설득하려고 아이를 데리고 교보에 가서 책을 샀어요. 제값을 주었어요. 그러고서 그 책을 들고 우리 집에 왔어요. '자, 이것은 헌책이야. 우리 집에 오면 헌책이 돼. 이렇게 모인 책이 있는 곳이 우리 책방이야.' 우리 아이한테, 우리는 자존심을 가지고 헌책방을 한다고, 아이가 학교 아이들한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하려고 무던히 노력을 했죠. 아이가 스스로 커서, 큰 다음에 바뀌었을 거예요. 너무 싫어한 기억이 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 큰아이가 헌책방을 엄청 사랑하고 아껴요."

- 이제 새로운 자리에서 책방을 새로 열었어요.
"저희가 한 달 만에 이루어진 역사가 되었어요. 어느 손님은 전혀 몰랐다가 예전 자리에 갔는데 공사를 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대요. 그래서 아는 형님한테 연락해서 '글벗서점이 없어졌다. 깜짝 놀랐다'고 했더니, 이리로 이전을 했다고 알려주더라고, 그래서 이리로 찾아오셨어요. '아유, 안 없어져서 고맙다. 이렇게 책방을 그대로 해 주셔서 고맙다' 하고 가시더라고요. 그런 말씀들이 참 많이 감사하지요. '또 오겠습니다' 하고 책을 사 가셨어요."

 새로 옮길 자리. 아직 공사를 한창 하던 2016년 11월.
새로 옮길 자리. 아직 공사를 한창 하던 2016년 11월. ⓒ 최종규

 2016년 12월. 새 자리에 바지런히 책을 옮기고 책꽂이를 들이는 나날.
2016년 12월. 새 자리에 바지런히 책을 옮기고 책꽂이를 들이는 나날. ⓒ 최종규

- 추운 날씨에 힘드셨겠어요. 그래도 마음은 홀가분하시지요?

"12월 1일부터 이곳에 있었는데 정말 허허벌판이었어요. 책 박스만 가득 산적해 있는 그런 허허벌판 모습인데, 예전 자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서 12월부터 한다고 알림글을 붙여놓았으니까 손님이 12월 1일부터 오신 거예요. 그런데 손님들이 오시면서 휴지를 사오시고 케이크를 사오시고, 허허, 그래서 참 마음들이 너무 고맙고, 하여튼 너무너무 그분들한테 감동이 일어났어요. 어떤 분은 전화를 걸어서 '내가 뭘 사 가지고 가면 되느냐?' 하고, 그래서 오셔서 책만 사 주시면 되지요 했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우리 문화가 이사를 하면 술술 잘 풀려 나가라고 휴지를 가져다주고, 정이잖아요. 그런데 책방에도 예외 없이 그렇게 사들고 오시는 거예요. 우리 선생님은 맛있는 감을 고흥에서 가지고 와 주시고. 아, 그래서 참 고마워요. 책방을 앞으로 더 잘 해야겠구나, 손님들 마음이 고맙고, 그 손님들이 책을 보러 찾아와 주실 것이기 때문에, 정말 좋은 책을 많이 구비를 해서, 오시는 손님이 그냥 가지 않도록, 좀더 마음이 흡족한 가격으로 가져가실 수 있도록 요렇게 좀 이끌어 가야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으로 들거든요.

그래도 오셨는데 찾는 책이 없어서 그냥 가시는 분한테는 너무 죄송합니다. 사 주시면 너무 감사하고. 다 맞춰 드릴 수는 없는데."

 2016년 12월. 2층에서 본 신촌 거리. 건너편에 <공씨책방>이 보인다.
2016년 12월. 2층에서 본 신촌 거리. 건너편에 <공씨책방>이 보인다. ⓒ 최종규

 책방 일꾼 실장갑
책방 일꾼 실장갑 ⓒ 최종규

- 자리를 옮겨도 마을에 사시는 분들이 유리벽에 붙인 글씨를 잘 안 보시잖아요. 그래서 어느 날 지나가다가 안 보이면 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생각하시고, 그러다 어느 날 이쪽을 지나가다가 책방이 새로 생겼네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손님이 어느 날 이쪽으로 걸어가시다가, 아직 여기 간판을 못 붙였잖아요. 그런데 지나가시면서 '어? 여기 책방이 생겼네?' 하고 들어오셔요. 그런데 그분이 아는 얼굴이다 보니까, 예전에 있던 그곳에서 이쪽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어요. 신촌 쪽에서 무심코 이쪽 길로 걸어오시다가 본 거지요. 그리고 아직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참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어요. 엉망인 가운데에서 참 골라서 책을 사 가시고.

엊그제도 저쪽에서 가져온 책상자를 한참 끌르는데, 그때 오신 손님이 책을 못 사셨는데, 어제 다시 오셔서 책을 사셨어요. 그분이 사신 책이 최남선 영인본인데, 그게 열다섯 권짜리예요. 그런데 그거 1권을 예전에 어느 손님이 한 번 가져가서 살펴보고 괜찮으면 나머지를 다 사겠다 하고 가셨는데, 다시 안 오셨어요. 책도 안 돌려주고. 그래서 그 열네 권이 항상 있었어요. 그래, 어제 오신 손님이 열네 권을 다 사셨어요. 그 영인본을 처음 살 적에 권당 만 원이었는데, 어제 오신 손님한테 고맙다는 뜻으로 선물로 드리려고 그냥 예전에 사들인 값 그대로 권당 만 원으로 드렸어요. 이 와중에도 오셔서 사 주셔서 고마웠지요, 그분께."


- 저희는 손님으로서 반가운 책을 만날 수 있어서 고마워요. 아까 말씀하신 그 손님 이야기처럼, 이렇게 책방을 지켜 주시고, 마을 한 곳에서 책내음이 흐르는 쉼터를 마련해 주시니 고맙고요. 새해에는 이곳을 비롯해서 모든 마을책방이 알차고 아름답게 책살림을 가꾸면서 보람을 거두면 좋겠어요. 바쁜 틈에도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저희는 찾아와 주시는 손님들이 고맙지요."



서울 동교동 <글벗서점>
02.333.1382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48
(서대문구 동교동 183-1)

 책시렁 한켠. 2016.12.
책시렁 한켠. 2016.12. ⓒ 최종규

 책방 앞을 바삐 손질한 저녁 2016.12.
책방 앞을 바삐 손질한 저녁 2016.12. ⓒ 최종규

 2017.1.20. 책방에 새 간판이 붙었습니다.
2017.1.20. 책방에 새 간판이 붙었습니다. ⓒ 글벗서점

 모든 책이 두루 사랑받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년 글벗서점
모든 책이 두루 사랑받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년 글벗서점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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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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