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가 '일본의 식민 지배는 하나님의 뜻' 발언이 알려져 극심한 여론의 반발로 낙마했던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박 대통령 탄핵 기각 촉구 집회에 모습을 드러내 궤변을 쏟아냈다.
21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차도와 서울광장 등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대회'에 연사로 나선 문 전 주필은 우선 헌법 조항을 들어 박 대통령의 탄핵은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내란·외환 아니면 탄핵 안돼"... 헌법 65조는? 노무현 탄핵은?"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84조를 읊은 문 전 주필은 "대통령은 헌법상 임기가 보장돼 있고 재직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며 "그런데 국회가 대통령을 뇌물죄로 탄핵해 버렸다. 이게 맞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헌법 65조는 대통령 등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는 국회가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 84조가 제한한 것은 형사 혐의에 대한 공소제기다.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할 당할 당시, <중앙일보>에 칼럼을 쓰던 문 전 주필은 '당신은 울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탄핵을 당한 것이 노 전 대통령 탓이며,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반성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노 대통령 탄핵 사유는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이 역시 '내란 또는 외환'에 해당하지 않는다.
문 전 주필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일도 거론했다. 그는 "뇌물을 주었다는 사람의 뇌물죄가 증거가 없다고 재판부가 선언했다"며 "뇌물을 주었다는 뇌물죄가 성립이 안 되면 뇌물을 받았다는 주장 역시 성립 안 된다. 그렇다면 국회 탄핵은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시 강조한다. 탄핵은 원천무효"라며 "사법부의 권위를 지켜 구속영장을 기각한 조의연 판사에게 박수를 보낸다. 여러분 우리 다 함께 조 판사를 박수로 격려합시다"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일제히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이 부회장 영장 기각이 박근혜 탄핵무효로 연결된 순간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 영장 기각은 '구속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일 뿐, 혐의에 대한 판단을 받은 것은 아니다. 기자 생활을 오래 한 문 전 주필이 이같은 상황을 모를 리 없다. 헌법을 인용한 부분도, 이 부회장 영장 기각을 언급한 부분도 그저 '박근혜 탄핵은 원천무효' 주장에 끼워맞추려고 자기 입맛대로 가져다 썼다고 밖에 달리 설명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며느리 박근혜, 뒷방에서 울고 있다"
널리 공감을 얻기 어려운 비유도 등장했다. 문 전 주필은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으로 시집을 와서 식구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던 며느리"라며 "여소야대가 되자 숫자가 많은 야당이 시어머니가 돼 시누이 새누리당과 합세해 지금 며느리를 쫓아내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외로운 그 며느리는 차가운 뒷방에서 울고 있다"며 "그 며느리가 너무 불쌍하여 우리는 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느냐"고 한탄했다.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와 같이 도무지 근거를 알 수 없는 비유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혐의로 현재 구속돼 있다. 조 전 장관은 혐의를 자백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탄핵심판과 법원 재판 과정에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등 사건 관련자들의 증언을 통해 '대한민국 며느리 박근혜' 대통령이 '깨알 같이' 챙기면서 몰두한 일들이 드러나고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더블루K, 코레스포츠 등 자신과 비선 측근 최순실씨가 관련된 곳에 출연금을 걷고 일감을 몰아주기려고 박 대통령은 재벌 총수들과 독대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모처럼 공개 집회에 나타나 이같은 궤변을 쏟아놓은 문 전 주필을 집회 참가자들은 열렬히 환호하며 지지했다.
한편 이날 집회가 시작된 오후 2시경부터 눈이 내렸지만 많은 참가자들이 모여 열띤 분위기에서 집회를 이어갔다. 오후 4시 기준으로 <오마이뉴스> 기자가 추산해 본 결과, 약 3만 여 명이 대한문 앞과 서울광장에 모인 것으로 보인다. 탄핵기각 촉구 집회는 매번 장소를 바꿔 열리기 때문에 인원 증감 상황을 알기가 쉽지 않다.
주최측은 오후 3시 30분경 "150만명이 모였다"고 발표했지만 크게 과장된 수치였다. 대한문 앞 방송차량 앞의 참가자 밀도는 높았지만, 서울시청사 서편과 서울광장 등에선 참가자들 간 간격이 넓고 여유가 컸다.
하지만 주최측은 이날 집회 시작 때부터 경찰에게 추가로 차로를 열어달라고 요구하며 참가자들을 선동했고, "우리 집회 참가자들이 광화문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사실과 다른 말을 했다. 이 집회 대열은 서울시청사 서편으로 쳐진 경찰차벽으로 차단된 상태였고, 차벽 뒤로는 200여명 가량이 서서 구호를 외치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