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바람이 불어오고 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가고 시간은 아무런 말 없이 지금도 쏜살같이 가네 거짓말처럼 온 만큼을 더 가면 음 난 거의 예순 살 음 하지만 난 좋아 알 것 같아 난 말해주고 싶어 나에게 다음 달에 여행 가자고- 3호선 버터플라이, '스물아홉, 문득'
소박하게 만든 도시락, 살인적인 덴마크 물가에서 나를 감싸다3호선 버터플라이의 노래 '스물아홉, 문득'을 들은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호기롭던 대학생 시절 술에 잔뜩 취한 채 남상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스물아홉이 되면 여행을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스물아홉이 되면 나에게 해외여행 정도는 가볍게 선물해 줄 수 있는 삶이 마냥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스물아홉은 낙오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던 해였다.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스물아홉에 깨달았다.
남들보다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기도 하다. 몇 해가 또 흐르고 가끔 흥얼거리는 내 노래를 들은 우리반 아이들이 온 만큼을 더 가면 칠순이 넘는다고 일러줬다. 이러다가 온 만큼 더 가면 곧 인간의 평균 수명을 넘길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덴마크 코펜하겐에 와 있다.
아무리 자주 입으로 소리내어 읽어봐도 생경하기만 한 도시들이 있다. 나에게는 코펜하겐, 스톡홀름 같은 북유럽 도시들이 그랬다. 설렘으로 가득한 여행객들이 만들어내는 아침의 부산한 소음 때문에 예상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 캠핑카 천장을 바라보며 '코펜하겐이라...' 그렇게 중얼거렸다.
코펜하겐에 관한 것이라고는 양자 역학과 관련한 '코펜하겐 해석'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 물론 코펜하겐 해석을 이해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저 코펜하겐을 잘 아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을 뿐이다. 결과는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벌써 몇 달째 여행을 하고 있지만, 아침은 언제나 나를 달뜨게 했다.
캠핑카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차려 먹고 점심 도시락을 챙겼다. 샌드위치와 구운 소시지 몇 개가 전부지만 덴마크의 살인적인 물가로부터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 줄 소중한 도시락이었다.
덴마크행 페리에서 충동구매로 스물네 개나 사 놓은 콜라도 몇 개 챙겨 넣었다. 여행 가이드북이나 앞서 다녀간 여행자들 모두 북유럽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비를 아끼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부터 북유럽 여행 내내 대도시 일정이 있을 때는 도시락을 싸서 다녔는데, 나중에는 고추장 불고기 덮밥으로 발전했다. 요리 실력이 나날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자전거 전용칸이 있는 덴마크 기차, 역시 자전거 이용률이 높다더니...캠핑장에서 코펜하겐 시내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캠핑장에서 기차역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였다. 코펜하겐뿐만 아니라 북유럽에서 도시 근교 캠핑장은 대부분 대중교통이 잘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시내로 들어가는 기차 1회권이 24크로네(4100원)였다. 너무하다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덴마크를 상징하는 듯 날쌔게 생긴 빨간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사흘 동안 운전만 했는데 이제 남이 운전해주는 차를 탄다고 생각하니 돈 생각은 벌써 잊어버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별생각 없이 타고 보니 자전거 전용칸이었다. 덴마크는 전 세계에서 자전거 이용률이 가장 높은 나라고 하더니 자전거 전용칸만 봐도 자전거의 위상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자전거 전용칸에는 접이식 의자를 접어 올리면 자전거를 편하게 세울 수 있도록 시설이 잘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전용칸이 두 칸이나 이어져 있었다. 자전거에 대한 대우가 우리나라와는 전혀 달랐다.
나도 한국에서 자전거를 즐겨 탔었다. 주로 집 앞 수영천을 따라 달렸지만 가끔은 멀리 나가기도 했다. 한번은 일명 '환상의 자전거길'로 불리는 제주도 해안도로를 일주하기 위해 김해공항으로 자전거를 가져가려고 했었다.
지하철에 자전거를 싣기 위한 제약이 많은 것은 어떻게든 감수하고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가려고 했는데, 부산 사상역에서 김해공항으로 가는 경전철은 요일과 시간에 관계없이 아예 자전거를 가지고 탈 수가 없었다.
큰 차에 싣고 가든지 아니면 김해공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야만 했다. 자전거를 이용하자고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가장 동쪽에 있는 인어공주 동상, 여행 시작점으로 삼기에 좋았다코펜하겐 시내에 내려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카스텔레(Kastellet) 요새 옆에 있는 인어공주 동상(Der Lille Havfrue)이었다. 인어공주 동상은 코펜하겐의 랜드마크이기도 하지만 코펜하겐의 가장 동쪽 끝에 있어서 여행의 시작점으로 삼기에 좋았다.
카스텔러 요새 앞 외스터포트(Østerport) 역에 내려 처음 맡아보는 코펜하겐의 공기는 상쾌했다. 대도시지만 자동차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자전거가 너무 많아서 자동차가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코펜하겐이란 단어만으로 공기가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카스텔레 요새는 17세기에 지어져 2차 대전까지 방어용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시민들을 위한 공원이 된 곳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요새가 별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성벽을 따라 방어를 위한 해자(垓子)가 있었다.
전쟁을 위해 해자를 가득 채웠던 물가에서 아이들이 모여 낚시를 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니 평화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이 요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저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요새 옆에는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의 흉상이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지나가는 시민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작고 초라한 인어공주, 실망했지만 애처로웠다드디어 저 멀리 인어공주 동상이 보였다. 정확하게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원래 어류(?)다 보니 물가에 있어서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들뜬 마음으로 인어공주 동상을 향해 달려갔다.
인어공주를 떠올리며 내가 기대했던 장면은 우아한 여인이 늘씬한 꼬리를 늘어뜨린 채 철썩이는 파도를 뒤로하고 가만히 앉아 슬픔이 가득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인어공주는 작고 초라한 몸집으로 그저 바닥만 보고 있었다.
동상이 너무 보잘것없어서 실망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애처롭기도 했다. 안데르센 동화의 주인공 중에서 유일하게 동상까지 만들어진 인어공주는 코펜하겐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연간 수십만 명이 찾는 명소다.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그만큼 시샘도 많아서 인어공주 동상이 훼손되는 일도 많았다고 했다. 페인트를 뒤집어쓰는 것은 흔한 일이고, 한번은 팔과 목이 잘린 적도 있다고 했다. 범인은 왜 그랬을까. 동화 속 인어공주를 지독하게 사랑했거나, 죽도록 질투했거나 그러지 않았을까.
어느 나라나 왕실 가족이 살고 있는 궁전은 관광 명소다른 관광객들이 그러듯이 나도 인어공주와 어정쩡한 자세로 기념사진을 찍고, 길을 돌아 나와서 덴마크 왕실이 거주하고 있는 아말리엔보르크 궁전(Amalienborg)으로 향했다. 넓은 광장 한가운데에 아말리엔보르크 왕가의 프레드릭 5세가 말을 타고 서 있었다.
흐린 날씨였지만 이른 아침부터 광장에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코펜하겐답게 자전거 가이드 투어팀도 볼 수 있었다.
어느 나라나 왕실 가족이 살고 있는 궁전이 있는 곳은 관광 명소였다. 나 역시 그래서 찾은 것이다. 이후로도 유럽 대륙 전역에 있는 어지간한 궁전은 모두 가 본 것 같다. 그런데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현대 사회에서 '왕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서구식 역사관으로 본다면 왕족 같은 특권 계층을 인정하는 사회는 중세의 정치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개한 사회 아닌가? 물론 상징적인 의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지만, 21세기에 '왕족'이라니. 우습다.
이곳도 한 나라의 왕실답게 늠름한 근위병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물론 내 눈에는 조금 우스꽝스러운 복장이었지만, 그들의 문화에서는 가장 근엄하고 권위적인 복장일 것이다.
아말리엔보리 궁전도 버킹엄 궁전처럼 일주일에 세 번 정오에 맞춰서 근위병 교대식이 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날짜가 맞지 않아서 볼 수가 없었다. 그저 근위병들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은 걸로 만족해야 했다.
색색 예쁜 집들이 물길 따라 서 있는 뉘하운 운하다음 목적지는 그 유명한 뉘하운(Nyhavn) 운하였다. '새로운 항구'라는 의미의 뉘하운 운하를 들어본 적은 없어도 코펜하겐하면 떠오르는 운하를 따라 색색의 예쁜 집들이 서 있는 장면은 한 번쯤 봤을 것이다.
이 예쁜 운하 지역은 과거에는 서민들이 주로 모이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여행객들이 주로 모이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동화 같은 이 멋진 풍경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것은 무료이니 얼마나 다행인지. 북유럽 느낌이 물씬 풍기는 뉘하운에서 흔히 말하는 인생샷을 남겨 보겠다며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운하를 따라 과거 해상 왕국의 영광을 기억하듯 많은 배가 정박해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고급스러운 식당과 카페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배는 18세기에 실제로 운항을 했던 세 척의 범선이었다.
실물 그대로 전시가 되어 있었는데 현재에도 운항이 가능하다고 했다. 인공 동력 없이 바람의 힘으로만 가는 거대한 범선의 실물은 한 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직접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훨씬 커서 놀랐다.
여기서부터 일반적인 코펜하겐 여행은 뉘하운 운하를 구경한 다음 운하를 따라 북쪽으로 걸으며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발걸음을 남쪽으로 향했다. 코펜하겐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지역이 코펜하겐 남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 군사지역이었다가 지금은 히피, 예술가, 사회적 약자층이 일명 'free town'을 이루어 살고 있는 크리스티안하운(Christianshavn) 지구의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가 바로 그곳이다.
예전에는 크리스티아니아로 가기 위해서 먼 길을 돌아갔어야 했는데, 지금은 뉘하운에서 운하 남쪽 지역을 바로 연결하는 인데르하운스브로엔 다리(Inderhavnsbroen)가 새로 생겼다.
내가 가지고 있던 가이드북의 지도에는 없던 다리였는데 막상 가보니 멋진 다리가 놓여 있었다. 구글 위성지도를 보니 다리를 한참 건설 중인 사진이 나와 있었다. 나를 위해 이렇게 멋진 다리를 놓아주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새로 생긴 다리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차량은 통행할 수 없는 보행자 전용 다리인데도 불구하고 중앙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구획이 나뉘어 있었다. 알고 보니 좌측은 자전거 전용도로이고 우측은 보행자 전용도로였다. 코펜하겐 시가 자전거를 위한 인프라를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만약 새로운 다리를 짓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자동차를 위한 다리일 것이다. 자동차는 다닐 수 없고, 오직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다리라니.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었지만, 자동차 천국 대한민국에서 온 나는 그 다리에 매료되었다.
다리의 남쪽 끝에는 마치 천문대처럼 생긴 독특한 구조물이 있었다. 마침 그곳에 벤치가 있어서 아침에 챙겨온 도시락을 꺼내서 먹었다. 대형마트에서 단지 저렴하기 때문에 샀던 소시지인데 맛이 기가 막혔다.
샌드위치와 소시지를 폭풍 흡입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뒤편에 있는 구조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서 나도 허리를 숙이고 기어들어 갔는데, 그곳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크리스티안하운 지역에 국립예술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길가에 멋진 예술품들이 많았다. 알고 보니 그 구조물도 역시 공공 설치 예술품이었다. 축구공처럼 생긴 작은 공간에 거울을 설치하고 다채로운 조명을 비춘 공간에 섰더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았다.
그 안에서 넋 놓고 멍하니 거울만 들여다보며 온갖 장난을 치다가 나와서 크리스티아나로 갔다. 크리스티아나는 마을 입구부터 범상치 않았다.
이 지역을 방문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낮시간에, 동행과 함께 방문하라는 조언을 들어서 그런지 낡은 건물 벽에 가득한 그라피티가 괜히 무섭게 느껴졌다. 조언대로 낮시간에 동행과 함께 방문했던 크리스티아나는 거울 속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이상한 나라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타박타박 아홉걸음(http://ninesteps.tistory.com)'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