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누드그림이 국회에 전시된 것은 대단히 민망하고 유감스런 일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자신의 SNS에 표창원 의원이 대통령 누드 풍자 그림이 포함된 '곧, 바이전' 전시회를 열어 논란이 된 것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예술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은 다르다"며 "정치에서는 품격과 절제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논란의 시작은 이렇다. 표창원 의원 주최로 국회에서 열리게 된 '곧, 바이전' 전시회에 전시된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이 원인이었다. 해당 작품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해서 만든 것으로 이구영 작가의 작품이다.
작품 속에는 세월호가 침몰되는 모습이 나타나 있고 그 앞에 박근혜 대통령이 나체로 누워있다. 옆에는 주사기 다발을 든 최순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주사를 맞았다는 논란을 풍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나체화, 표현의 자유인가새누리당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이에 대해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에서 풍자를 가장한 인격모독과 질 낮은 성희롱이 난무하고 있다"며 "분노를 부추기는 선동이고,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인격살인 행위와 다를 바 없다"라고 덧붙였다.
표창원 의원의 반응은 어떨까. 그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시사 풍자회를 열겠다고 작가들이 요청해 도와준 것 뿐"이라며 "사전에 작품 내용은 몰랐다. 풍자를 하다 보니 자극적으로 보이는 면도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블랙리스트 파동으로 이 같은 전시회가 열린 것인데 표현의 자유 영역에 대해 정치권력이 또다시 공격을 한다는 것은 예술에 대한 적절한 태도가 아니다"라며 표현의 자유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후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표 의원은 "탄핵 심판 및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논란을 야기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킨 점에 대해 지적해 주시는 분들도 많다. 존중한다"면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지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나체가 있는 풍자화로 인해 발생한 논쟁. 이것은 예술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로만 이야기 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점에 집중하고 그것을 부각하여 풍자화 했다는 점이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이에 대해 SNS를 이용하여 "최근 노인 폄하에 이어 이번엔 대통령 소재로 여성 비하까지 연타석 홈런을 치시네요. 아니 이건 성폭력 수준이죠"라고 언급했다.
하태경 의원의 말처럼 이번 표창원 의원이 주도한 전시회에 올라온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은 '여성혐오'와 성폭력에 관한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여성'에 관한 문제는 아닐까?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매주 진행되는 촛불에는 어김없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이름이 등장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여성이라는 점에 집중한 발언들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 "앞으로 100년 내에는 여성 대통령 꿈도 꾸지 마라"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으며, 일부는 "여자가 대통령을 하니 나라가 이렇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닭년', '강남 아줌마', '무당년'. 박근혜와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붙은 수식어다. 이는 평소 '김여사', '김치녀', 'XX녀' 등 논란이 된 사람이 여성일 경우에 붙이던 수식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대상이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단어들이다.
되물어 보자. 운전을 못하는 남자에게 '김기사'라고 칭해 본 경험이 있는가? 명품 시계를 차고 커피를 마시는 남자에게 '김치남'이라고 불러본 기억이 있는가?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남자 대통령에게 "남자가 대통령을 하니 나라가 이렇다"라고 말해본 적이 있는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발생한 이유는 두 사람이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여성인 것에 비추어 비난하는 것은 정치권에도 퍼지고 있는 '여성혐오'와 관련이 있다. 여성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식의 논리. 사회적 지위가 남성이 우월하다는 식의 생각이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고, 평등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풍토다. 아직도 우리 곁에는 '술은 여자가 따라줘야 맛있다' 식의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도 있으며, 아무에게나 '아가씨'라는 호칭을 남발하는 사람들도 여전하다. 회사에서도 커피 타는 업무를 여직원의 임무처럼 여기는 곳도 많다.
내가 있는 단체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성들에게는 '돌봄' 노동이 따라왔고 때로는 술자리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주는 존재처럼 이야기되기도 했다. 협상 등이 필요한 자리에서는 여성들의 애교가 함께 해야 유리하다는 식의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도 여성들은 남성들의 활동이 원활하도록 돕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리우에 뜬 국민 여동생들', 리우 올림픽 당시 중앙일보에서는 "예쁜 걸그룹을 잊어도 좋다"며 여성 선수들의 외모를 품평하는 기사를 올렸다. '조윤선, 김고은, 김연아, '무쌍'에게 아이라인이란?', 머니투데이에서는 구속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민낯'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우리나라 언론사들의 현실이다. 많은 국민들에게 노출되는 언론이 앞장서서 여성들의 실력이나 잘못된 점에 대해 짚는 것이 아니라 '외모'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마치 '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대상화'는 언론의 앞장섬을 따라 사회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들은 1차적으로 외모로 평가 받고, 2차적으로는 여성성을 의심 받는다. 요리나 가사 등을 잘 하지 못하는 여자는 곧 "여자답지 못하다" 등의 말을 듣는 것이다. 거기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말이 쏟아진다.
여자는 어째서 하고자 하는 일과 관련 없이 외모를 평가 받아야 하나, 여자는 어째서 요리나 바느질 등을 할 줄 알아야 여성스러운 것인가. 개인으로서 발생한 문제를 어째서 여성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처럼 이야기 하나. 이런 물음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점을 부각한 나체화가 풍자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나올 수 있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나체라는 '성적 대상화'와 여성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인식이 결합되 나온 그림이지 않나.
이 사건은 성폭력이나 마찬가지이번, 표창원 의원의 주도로 국회에서 개최한 전시회는 성폭력과도 관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그녀가 국정농단이란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많은 국민들을 분노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해도 엄연히 박근혜 대통령은 기초적인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개인이기도 하다. 비록, 공인(公人)이라고 해도 동의 없이 나체를 표현한 작품이 타인에게 노출되는 것이 용인되어야 할 존재는 아니다.
쉬운 예로, 연예인들의 얼굴과 나체 사진을 합성한 사람들이 어떻게 처벌되고 있는지를 보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 제 70조 제 2항에 따르면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나와 있다. 걸그룹 미쓰에이의 수지의 얼굴이 합성된 나체사진을 유포한 가해자의 경우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봉사시간 80시간의 선고를 받기도 했다.
처벌 수위를 떠나서, 문제는 동의 없이 만들어져 유포된 것들이 당사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는 점이다. 만약, 동의하에 합성사진을 만들거나 나체 사진을 찍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찍거나 만드는 행위에 동의했다고 해도 공공연히 타인에게 보여질 것을 동의한 것도 아니다. 당사자의 의사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채로 악의적으로 유포된 것들은 그 피해가 리벤지 포르노와 다를 바가 없는 심각한 범죄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나체화도 마찬가지다.
블랙리스트로 탄압 받았던 예술인들의 고통도, 국정농단의 사태를 지켜본 표창원 의원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혐오'와 성폭력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명확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여자이기 때문에 이번 국정농단 사태와 블랙리스트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아니며, 타인의 나체화를 유포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심각한 범죄가 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