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새하얀 겨울, 하얀 떡국을 끓인다. 얼마 전 시어머니가 보내주신 바로 그 가래떡으로. 떡국 끓일 준비 시작!
먼저 가래떡. 나무 도마에서 썰어야 제맛이지. 놀러 왔던 시누이가 선물인 듯 아닌 듯 살짝 두고 간 도마를 꺼낸다. 눈에 확 들어오는 다섯 글자, '생활의 달인.' 흐음~ 달인까진 아니어도 잘 썰어 보고픈 마음이 확 일어난다. 마지막 주자는 친정 큰언니가 준 칼. 김장 때 멋모르고 길들지 않은 채로 쓰려다 바로 깊게 베였던 추억이 묻어 있다. 한동안 겁나서 못 들었는데 조금씩 만져 주었더니 이젠 손에 얼추 익었다.
시댁과 친정 식구들 사랑이 두루 담긴 도구와 재료, 준비 완료! 한석봉 어머니처럼 불 끄고는 못 해도, 밝은 대낮에 얇고 예쁘게 썰어 보리라.
얼었다 녹아서 살짝 휜 가래떡. 그래서인지 썰어 놓은 모양새가 별로 예쁘지는 않다. (설마, 휜 것 때문에 덜 예쁠까?) 그래도 손 안 베이고 썬 게 어디야. 손끝도 덜렁대서 칼질할 때마다 베이지 않으려고 늘 조심하는데, 가래떡이 꽤 단단해서 오늘도 초긴장하며 칼을 들었단 말씀.
그렇게 달랑 가래떡 두 가닥, 딱 두 사람 먹을 만큼만 썰고 나니 힘이 든다. 다음에 먹기 좋게 꺼낸 가래떡을 다 썰어두려 했건만, 바로 접는다. 이 정도도 큰일 한 거야!
고기 지나간 국물도 못 먹는 셋째 딸
떡은 준비됐고, 다음은 국물. 다른 집들은 흰 곰국이나 소고기 우린 물로 끓이지만, 우리 집은 멸치, 다시마, 파뿌리를 팔팔 끓여서 준비한다. 고기가 없기도 했지만, 내가 고기 못 먹는 체질을 타고나서 더 그렇다. 고기를 못 먹는데 고기가 지나간 국물 못 먹는 건, 당연하지.
맑은 다시 국물에 떡을 넣으니 국물이 뽀얗다. 누가 보면 고기 국물인 줄 알겠다. 맑고 시원한 떡국 국물 떠먹으며, 고기 못 먹는 딸 때문에 마음고생 많았을 친정엄마 생각이 뭉글뭉글 일어난다.
식구가 여덟이나 되니 큰 냄비에 한가득 끓여야 했던 떡국. 주로 하얀 곰국으로 만드셨다. 그것만으로도 힘드셨을 걸, 작은 냄비에 나 먹을 거 따로 만들어 주셨던 엄마. 돼지고기 김치찌개도 못 먹어서 돼지가 김치에 빠진 날은, 또 내 것을 따로 끓여 주셨던 엄마. (육 남매 가운데 나만 고기를 못 먹는다. 주워 온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어릴 때 당연히 해 봤다, 고기 때문에라도!)
어느 하루는 "곰국 몸에 좋은데 못 먹어서 어떡하느냐"며 "식힌 거 줄 테니 코 막고 마셔 봐라"하셔서 진짜 코 막고 억지로 넘겼다가 거의 토할 뻔했다. 그 뒤로 다시는 권하지 않으셨던 엄마다. 제아무리 소고기여도 거들떠보지 않는 나, 아니 내 체질 때문에 셋째 딸 생일에 소고기 미역국 한번 끓여 주지 못했던 엄마다.
엄마 덕분에 하늘이 내린 채식주의자가 되었어요 이제야 생각해 보니, 없어서 못 먹는 그 귀한 고기 한 입 못 넘기는 딸을 보며 엄마 마음이 많이 애달프셨을 것 같다. 그런 엄마한테 이제라도 한마디 꼭 드리고 싶다.
"엄마가 나를 잘 낳아 주셔서 고기도 못 먹는 입맛 싼 딸내미, 이젠 하늘이 내려준 채식주의자로 등극했나이다~ (아마 고기 잘 먹었어도 지금쯤은 채식주의 해보려고 애는 썼을 것 같거든요.) 여태껏 고기는 먹지 못했지만 엄마가 차려 준 밥만으로도, 정성만으로도 어릴 때부터 통통했고 지금도 통통하고 앞으로도 통통하게 살 거 같아요. 고기 못 먹는 딸로 낳아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엄마!" 어라? 이 정도 엄마 생각에 빠져들었으면 눈물 쏙 나올 때가 됐는데, 눈가가 그대로다. 신기하네. 설도 안 지났는데 떡국 한 그릇에 벌써 나이 한 살 더 먹기라도 했나? 맥없이 엄마 하늘로 보내고 뻥 뚫린 이 마음에, 살집이 조금 붙기라도 한 걸까? 눈물이 나오지 않는 까닭, 직접 확인해 봐야만 하겠다. 다 방법이 있나니!
평생 못 부를 것 같던 그 노래 '하얀 찔레꽃~' 참 철없던 이십 대 후반, 엄마가 갑자기 하늘로 가셨다.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소스라치게 놀라 갑자기 엄마를 떠나보내고는 시린 가슴 달랠 길 없어 하염없이 밤하늘만 쳐다보던 날들이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마당가에 앉아 엄마 생각을 하는데, 문득 <찔레꽃> 노래가 떠올랐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첫 소절에서 그만 딱 막혔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더 부를 수 없었다. 노래 끝 소절에 나오는 것처럼,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세는 것으로 애써 눈물을 닦아야 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부를 때마다 가슴이 조이는 듯 시린데도 이 노래를 놓지 못했다. 끝까지 부를 수만 있다면, 엄마가 빠져버린 텅 빈 가슴이 조금은 채워질 것만 같은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어느 날은 두 소절, 또 어떤 날은 1절까지 간신히, 그러다가는 다시 또 '엄마 일 가는 길에~' 읊조리다 목 놓아 울어 버리기.
이 노래 두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되풀이한 지 십 년 하고도 철이 네 번 더 바뀌었다. 그리고 떡국 한 그릇 먹은 이 날, 오랜만에 다시 도전했다. 엄마 돌아가신 뒤로, 단 한 번도 끝까지 불러 보지 못한, 그 노래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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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엄마 살아생전 노래 한 번 불러드리지 못했던 못난 딸내미가, 이 노래를 바친다. 십사 년 만에 울지 않고 부를 수 있게 된, 평생 부르지 못할 것만 같았던 마의 그 노래,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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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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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해냈다! 무려 14년 만에, 3절까지, 울지 않고 끝까지 불렀다. 내 마음에도 살집이, 맷집이 드디어 생겼도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던가. 나도 이젠 청춘을 넘고 또 넘어 국어사전에서 마흔 안팎을 이른다고 또렷이 말하는, 그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청춘이 아로새긴 아픔쯤 스스로 넘어서야 하는 '중년 어른'이 된 것이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영화 속 어린 주인공보다 더 나약하게 굴었던 지난 십몇 년. 설날 앞두고 미리 먹은 떡국 한 그릇에 뛰어넘을 자신이 조금 생겼다. 아, 아니지. '시어머니, 시누이, 친정언니' 마음까지 가득 담겨 있는 '사랑 떡국' 덕분이라고 해야 맞겠지?
이번엔 엄마 사진 바라보기, 도전!
'찔레꽃' 부를 때보다 더 가슴이 미어져서 아직도 잘 바라보지 못하는 엄마 사진, 찬찬히 들여다볼 용기도 슬슬 내볼까? 남들이 지갑 속, 핸드폰 안에서 한 번씩 사진 꺼내 들여다보는 모습, 많이 부러웠는데……. 이제부턴 그런 사람들 축에 들어 볼 수 있으려나.
생활의 달인, 떡 썰기 달인은 못 되었지만 떡국 만들고 먹으면서 하늘에 있는 엄마도 생각하고, 그러면서 '처음으로!' 눈물 찔끔거리지 않았던 이 시간.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던 옛 어른들 말씀이 왜 나왔을지 이제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나저나 울 엄마, 자기 생각하면서 울지 않는다고 혹시 서운해하시려나? 아니야, 엄마라면 분명 좋아하실 거야. 허망하게 목숨 내려놓은 자기 때문에 까맣게 타버린 셋째 딸내미 마음, 이제야 살도 붙고 맷집도 생겨서 참 다행이노라고……. 이제라도 마음 놓으실 것 같은 엄마한테, 살아생전 노래 한 번 불러드리지 못했던 못난 딸내미가, 이 노래를 바친다. 십사 년 만에 울지 않고 부를 수 있게 된, 평생 부르지 못할 것만 같았던 마의 그 노래, <찔레꽃>.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고운 입은 맛도 좋지.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 산길 어두워질 때.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