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경제 아카데미는 중간지원조직들이 추진하는 사업 중 어려운 편에 속한다. 수강생을 모집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미 교육을 다 들었으니 사회적경제를 전혀 모르는 주민들을 찾아 나서야 되는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여기 예외가 있다. 몇 번을 들었음에도 또 찾아오는 분들이 계시다. 아무리 어렵고 낯선 사회적경제라고 하더라도 묵묵히 수업을 들으신다. 바로 6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노인들이 교육을 받으러 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삶이 곤궁하기 때문이다.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 1위를 지키는 대한민국에서 노인들이 믿고 기댈 곳은 거의 없다. 오랫동안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왔던 가족은 파편화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더 이상 넉넉하지 않다. 이에 국가가 나서서 최소한의 삶에 필요한 비용을 준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림도 없는 수준이다.
결국 노인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용돈벌이의 수준이 아니다.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함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는 청년들의 일자리마저 부족한 상태이지 않은가.
상황이 이러다보니 노인들이 사회적경제 아카데미를 찾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사회적경제에 속해 있는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은 약자들이 연대하여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며, 또한 노인들은 사회적경제가 눈여겨보고 있는 취약계층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의 노인 문제는 현재 얼마나 심각할까? 나는 그 처참한 현실을 일본 NHK 스페셜 제작팀이 쓴 <장수의 악몽 노후파산>이라는 책을 보고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20년 후 일본
사실 우리 사회에서 노인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은 아주 오래 전부터 회자되고 있고, 가끔 언론에서 조명하는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모습은 요즘도 많은 이들의 눈물을 자아낸다. 정치인들도 선거 때만 되면 노인들과 관련된 복지공약을 쏟아내곤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문제는 우리 사회의 중심 이슈가 아니다. 아직 사회가 본격적으로 고령사회로 들어서지 않은 만큼 그 심각성이 간과되고 있으며, 또한 많은 이들이 노인문제를 사회문제가 아닌 가족의 문제로 치환시키기 때문이다. 당장 2020년이면 노인 인구가 천만 명을 넘는다는데 우리의 노인문제는 사회적으로 거의 무방비에 가깝다.
이런 맥락에서 <장수의 악몽 노후파산>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책에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선 일본이 노인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심각한 상황을 겪고 있는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결국 우리의 20년, 아니 10년도 안 되는 미래 모습이기도 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일본보다 더 급속도로 노령화되고 있지 않은가.
"젊었을 때는 자신의 노후 같은 건 생각을 안 하지 않습니까? 매일이 바쁘고 매일이 즐겁지요. 그래도 열심히 일해 왔는데 설마 이런 노후를 맞이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오랫동안 정말 열심히 일해 왔는데 이렇게 살고 있다니, 지금까지 내 인생은 뭐였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허무해집니다."젊었을 때 열심히 돈을 벌어 집을 사고, 연금을 붓고, 저축을 하면 늙어서 어느 정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평범한 믿음. 저자는 우리 사회에도 널리 퍼져있는 그 믿음이 우리를 어떻게 배신하는지, 그리고 그 신화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여실히 보여준다. 평균적으로 20~30대에 취업하고 50~60대 정년퇴직하여 70~80까지 노후를 보내야 하는 보통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아무 대책 없이 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음을 충고하고 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가 다름 아닌 일본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 우리보다 훨씬 더 고도화된 자본주의 국가로서 종신고용제 등의 사회 시스템을 도입하여 사회를 안정화시켰으며, 보험 등의 금융시스템도 월등히 앞서가는 곳 아니던가. 게다가 일본 국민들은 전 세계에서 저축을 가장 많이 하는 이들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런 일본마저도 노후파산이라는 현상 앞에 백약이 무효라고 하니 놀랄 수밖에. 2014년 현재 일본의 독거노인 수는 600여 만 정도고, 그 중 약 200만 명이 노후파산에 이르러 고독사 하거나 아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65세 이상 인구의 70%가 노후파산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어떨까. 일본의 노인빈곤률이 19%임을 감안한다면 노인빈곤률이 50%에 다다른 대한민국의 노후파산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2016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노인 중 53.1%가 '노후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답하면서 그 이유로 '노후준비능력이 없다'(56.3%)를 제일 큰 원인으로 꼽았다. 아직 본격적으로 이슈만 되지 않았을 뿐, 노후파산은 우리들의 현실인 것이다.
노후파산의 비극은 그것이 노인들의 삶의 의지를 빼앗는다는 데에 있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는 삶의 경험을 이야기했던 만큼 공경의 대상이었던 노인이 이제는 잉여의 존재가 되어 각자도생을 고민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빨리 죽고 싶습니다. 죽어버리면 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누굴 위해서 살고 있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제 정말 지쳤습니다."노후파산을 해결하는 방법노후파산이라는 멀지 않은 미래에 닥쳐올 으스스한 현실. 과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보험회사에서 늘 이야기하듯 보험만 들어 놓으면 만사가 해결될까? 물가는 오르고 화폐가치는 계속해서 떨어질 텐데 과연 그 연금이나 보험 등이 우리의 노후를 보장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할 것은 노후파산이 많은 부분 배우자를 잃은 노인들에게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기존에 받던 연금 수입이 절반에 가깝게 줄어들면서 노인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진다는 것인데, 이는 반대로 홀로 된 노인들을 모을 수만 있다면 노후파산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연금이나 저축 등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입만으로 살아가기 힘든 독거노인들을 모아서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들이 서로 의지해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게 되면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다. 자산을 모아 일정 규모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시너지를 낼 수 있고, 함께 생활하면서 고정비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인들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면 책에서도 지적한, 노후파산에 처한 노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외로움도 극복할 수 있다. 결국 많은 노인들이 자살까지 결심하게 되는 것은 노후파산과 함께 친구와 지인을 잃고 사회와 연결돼 있던 끈이 끊어졌기 때문인데, 공동체가 노인들을 품고, 노인들이 직접 공동체를 만들게 된다면 이 역시 해결할 수 있다.
노인문제와 관련하여 지역의 의료생협이나 커뮤니티들이 주목을 받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경제적 지원을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공동체로 묶어내어야 하는데 사회적경제와 마을공동체가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마을이라는 네트워크 속에서 사회적경제의 틀로 지속가능성을 담보한 채 노인들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노후파산에 대한 최선의 대비책이 아닐까?
사회적경제는 단순히 사회적기업이나 마을기업, 협동조합의 총 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관계의 경제이며,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경제를 뜻한다. 또한 마을공동체 사업은 단순히 마을을 복원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초고령사회와 같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닥쳐올 재앙에 대한 준비이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혼자가 아닌 함께여야 한다는 철학, 그것이 곧 사회적경제와 마을공동체의 출발이다.
얼마 남지 않은 초고령사회. 장수가 악몽이 아니라 축복이 되기 위해서 우리의 중지를 모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