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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해마다 일정하게 지키어 즐기거나 기념하는 때(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드디어 그날이 왔다! 이 땅에 사는 남자 어른, 여자 어른들을 즐겁게 하기는커녕 아프고 힘들게 만들기 일쑤였던 까치 까치 설날이. 그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수많은 어른들 사이를 끝내 갈라놓기도 서슴지 않던 바로 그 명절이!  

보통 때 식구들끼리 화목한 집도, 원만한 집도, 서로 무심한 집도, 사이가 좋지 않은 집도, 그 모두에게 명절은 만만치 않다. 그리고 대체로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릴 때는 여자만 힘들게 한다고 악착같이 명절을 (마음으로만) 거부했고, 결혼한 뒤에는 여느 집에 견주면 충분히 아름다운 평등 명절을 보내고 있음에도 싫었다, 힘들었다, 피하고만 싶었다. '명절'이라는 실물이 있다면 깨부수러 앞장서 나갔을 것도 같다. 그렇게 나에게 명절은, 식구들 사이를 무의미하게도 쓸데없이도 갉아먹는, 없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은, 그런 장벽이다. 높고도 높은, 넓고도 넓은, 깊고도 깊은…….

어쩌면 '명절'이라는 추상명사보다는 '남자'라는 구체 명사를 더 원망했을 어린 시절. 그때랑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명절엔 여자만 힘든 게 아니라 남자도 힘들다는 것, 때론 여자보다 남자가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것, 남자들에게도 명절 증후군이 있다는 것(가끔은 여자보다 더 심각하고 위험하게), 그걸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는 것.

'음식 준비' 때문에 힘든 명절, 이제 쫑이다!

부모님 다 돌아가신 친정이나 시어머님만 계신 시댁이나 '음식 준비' 때문에 힘든 시대는 이제 지났다, 아니 쫑이다! (1년 안팎 사이에 벌어진 아주 최근 일.)

 부모님 돌아가신 뒤로 형제들끼리만 명절 치르는 친정집. 음식도 간단히, 몇 가지는 사서 차례상을 차린다. 나도 함께 준비했던 10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오롯이 남자 형제들 몫이 되었지만.
부모님 돌아가신 뒤로 형제들끼리만 명절 치르는 친정집. 음식도 간단히, 몇 가지는 사서 차례상을 차린다. 나도 함께 준비했던 10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오롯이 남자 형제들 몫이 되었지만. ⓒ 조혜원

형제끼리만 명절 보내는 친정. 밥 한 끼 같이 먹을 정도만 소박하게 음식을 준비하는데 사서 차리는 것들도 더러 있다. 그마저도 남자 형제들이 알아서 한다. 나는 가서 먹기만 하면 된다. 더구나 시댁은 이제 아예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모든 제사와 차례를 절에서 지내기로 하신 시어머니의 놀랍고도 존경스러운 결단력 덕분에. (그 결단을 내리기까지 혼자 아프고도 아프셨을 그 마음, 제대로 보듬어 드리지 못해서 그게 너무 죄송할 따름이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평등 명절이어도, 음식 노동이 없어도, 나는 왜 여전히 명절이 불편하고 싫은가. '몸의 노동'에서는 해방되었지만 '마음 노동'에서는 해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여자아이로 명절을 치르면서 (이때는 몸 노동도 적잖이, 가끔은 몸살날 만큼도 겪었다.) 왠지 모를 분노와 절망으로 켜켜이 쌓아 온 '마음노동'이 있었다. 결혼하고는 사 남매의 셋째 며느리로, 부모 없는 친정 육 남매의 '여동생', '누나', '언니'로 명절을 치르면서 어릴 때와 또 다르게 겹겹이 쌓인 '마음노동'이 있다. 그 두 가지 마음노동이 얽히고설킨 채 두껍게 쌓여 있다. 내 마음 깊숙한 저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돌덩이 같은 마음노동, 평등명절은 쉬운 게 아니다

복잡한 마음에, 10년 전 마을 인터넷 신문에 남겼던 기사를 읽어 본다. '평등명절은 쉬운 게 아니다.' 참 겁도 없이 제목을 달았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과 여전히 비슷한 문장을 만난다. 읽는 것만으로도 다시금 숨이 차다.

평등명절은 쉬운 게 아니다 10년 전에 마을 인터넷신문에 남긴 글을 오랜만에 들여다본다. 그때와 내 처지도 많이 달라졌지만 마음에 아프게 와 닿는 글귀만은 여전하다.
평등명절은 쉬운 게 아니다10년 전에 마을 인터넷신문에 남긴 글을 오랜만에 들여다본다. 그때와 내 처지도 많이 달라졌지만 마음에 아프게 와 닿는 글귀만은 여전하다. ⓒ 조혜원

'적어 내려가는 것만 해도 숨이 차다. 평등 명절이 어려운 이치가 바로 이 '숨참'에 있다. 시댁과 친정 양쪽 사이에 얽히고설킨 가족들도 함께 바뀌어야 가능하다는 것. 나 혼자 아무리 평등명절 치르겠다고 애써봤자 주변 가족들과 함께하지 않는 한 도루묵만 될 뿐이다. 게다가 '나쁜 년' 되기 딱 좋다!

그게 너무 힘들기 때문에 아직 많은 사람들이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이 엄청난 구조를 무너뜨려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냥 앓는 여성들 그리고 그 곁에서 덩달아 앓게 되는 남성들이 넘쳐나게 된 것이다. 결국 이혼에 이르게까지 되고 말이다.' (관련 기사

저 글 썼을 때와 지금은 처지가 많이 달라졌다. 오빠도, 남동생도, 여동생도 결혼했다. 친정도 시댁도 음식 준비에 따른 노동을 이제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저 문장이 아프게 와 닿는 건, '명절'이라는 동아줄에 기대서라도 우리는 한 식구이노라고, 한 핏줄이노라고, 애써 확인하려는 그 시간이 답답하고 안타깝기 때문이다.

명절이 아니어도, 확인할 수 있다.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지만 꼭 확인하고 싶다면 확인할 수 있는 방법, 만들 수 있다. 찾을 수 있다. 자꾸 '명절'에만 오롯이 기대려 하니 서로가 아프고 힘들기만 하다.

나도 나이가 든 건지, 시골 살면서 자식들 오매불망 기다리는 어르신들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 건지. 이젠 어머니 시대의 어르신들 마음 아픈 게 더 눈에 들어온다. 자꾸 마음에 밟힌다. 그래서 더, 나는, 시어머니가 존경스럽다. 시어머니만 생각하면 아프다. 

명절로 확인하지 않아도 가족... 편하게 지내보는 건 어떨까

손주가 사온 초콜릿이 올라간 차례상  옹기종기 모여 이 음식 저 음식 잔뜩 준비하는 행복, 차례 상 앞에 두고 자식 며느리 손주 우르르 모여 큰절 올리는 모습 바라보는 뿌듯함. 명절에만 느낄 수 있는, 몸에 새겨진 이 시간들을, 시어머니는 내려놓으셨다. 자식들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자.
손주가 사온 초콜릿이 올라간 차례상 옹기종기 모여 이 음식 저 음식 잔뜩 준비하는 행복, 차례 상 앞에 두고 자식 며느리 손주 우르르 모여 큰절 올리는 모습 바라보는 뿌듯함. 명절에만 느낄 수 있는, 몸에 새겨진 이 시간들을, 시어머니는 내려놓으셨다. 자식들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자. ⓒ 조혜원

명절 전날부터 옹기종기 모여 이 음식 저 음식 잔뜩 준비하는 행복, 차례상 앞에 두고 자식 며느리 손주 우르르 모여 큰절 올리는 모습 바라보는 뿌듯함. 마흔 중반 친정오빠도 포기하지 못한, 끈끈하고 애절한 그 무엇을, 칠십 대 후반 시어머니는 스스로 내려놓으셨다. 자식들 마음 편하라고, 자기 마음은 저 멀리 던져 버리셨다. 자식들 마음을 살리려고 자기의 마음을 죽이셨다. 형제들끼리 아등바등 부대끼며 명절 치르는 모습, 오죽 보기에 아프셨으면 이런 결정을 다 하셨을까. 그런 시어머니께 너무 죄송하다. 고맙다는 말씀도 차마 드리지 못하겠다.

자식들 시대의 명절은 자식들이 어떻게든 새롭게도, 즐겁게도 만들어 갈 수 있다. 하지만 살아온 시간 동안 몸에 새겨진 그 '명절 문화'를 놓지 못하겠는, 무엇보다 명절이라도 돼야 자식 손주들 만날 수 있는 수많은 부모님들. 이분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지금은, 아직은, 그런 부모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형제들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으면 더 좋겠고. (이것도 은근히 쉽지 않다.) 여력이 된다면 명절이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 그리고 뵌 적 없는 조상님들 마음까지도…….

치르는 명절? 즐기는 명절!

일 년에 단 두 번, 명절이 찾아올 때면 서로 아프지 않게, 아무 일 없이만 지나가도 '휴우~' 하는 한숨과 함께 뭔지 모를 행복함이 밀려오기는 하더라. 그래서 명절을 '치른다'고 하나 보다. 사전에 나오는 뜻처럼 '즐긴다'고 하지 않고. '지키는' 것까지는 어찌 되었나 모르겠지만.

모두가 축제처럼 즐기는 명절, 언젠가는 오겠지? 나부터 그런 문화를 만들고자 마음도 머리도 열심히 굴려봐야겠다. 모자란 마음과 머리지만. 그러다 보면 켜켜이 겹겹이 쌓인 '마음노동'의 두께가, 조금씩 얇아질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팍 사그라들지도!

명절 미담까지는 아직 어렵겠지만, 서로를 위해 명절을 덜 아프게 보낼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우리네 중년 어른들의 몫인 것 같다. 우리 조카들, 자식들이 우리처럼 '명절'에 짓눌려 살아가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이번 설, 그런 마음을 안고 시어머니, 시댁 식구, 친정 형제들을 처음으로, 즐겁게 만나 보련다.

뭔가 벌써 그 두께가 조금 얇아진 느낌이다. 실은, 음식 준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엄청 편하고 느긋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시댁 식구들이랑 외식하고(자식들 돈 쓰는 게 안타까워 집에서 음식 차리시겠다는 시어머니의 마지막 희망, 못난 자식들 내리사랑의 힘에 기대어 가멸차게 그마저, 또, 꺾는다.), 친정 식구들이랑 편하게 맥주 한잔 걸치고 오면 끝이다(모두 모이지는 못하지만). 일박이일 동안 내가 치러야 할 이번 설 명절은.

이 정도면 충분히 '즐길' 만한 명절이 될 듯도 하다. 그래, 즐기고 오련다. 이번만큼은, 이번부터는! 그런 마음으로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자식새끼들 얼굴 볼 마음에 설레면서도 '집이 얼지는 않을까, 집에 있는 동물들은 괜찮을까' 걱정하는 마음까지 한가득 안고 서울로 가시는 누군가의 부모님들과 함께. 


#평등명절#설날#차례#시댁#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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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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