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혼란이 일어나는 시대를 흔히 춘추전국시대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는 중국의 고대시대인데, 주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질서가 붕괴하고 각 지방에 할거하는 봉건 세력들이 저마다 왕을 참칭하는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수많은 나라가 존재하면서 전쟁을 벌였지만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7개의 나라만 남게 된다.
다른 6개의 나라를 모두 멸망시키고, 통일 제국을 세운 것이 바로 진시황이다. 그는 진나라를 통일 국가로 만들었고, 황제라는 호칭을 썼으며, 도량형을 통일하고 새로운 지방 관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그가 세운 통일 제국은 3대만에, 한 세기도 못가고 멸망하고 말았다.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 법률을 엄히 집행했는데도 망하고 만 것이다. 힘들게 만든 나라는 허망하게 무너지고, 이후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맞서 싸우는 초한지 시대가 시작된다.
<춘추전국 이야기 10 천하통일>은 진시황의 생애와 성패를 다룬 책이다. 전국시대 말엽, 전국 7웅의 국가가 무너지고 진나라로 통일되는 과정과 그 결과를 그린다. 이 책은 중국사 작가인 공원국씨가 써온 <춘추전국 이야기> 시리즈의 열 번째 책이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지나서 진나라가 마침내 모든 국가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진시황이 정복자다운 야망을 성취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의 진시황에 대한 시선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진시황은 남긴 업적도 많지만, 오만함으로 결국 자신의 나라를 파멸시킨 사람이었다.
진시황이 즉위하던 시기, 진나라는 권신 여불위와 노애의 권력이 강해 진시황과 맞먹을 정도였다. 진시황은 그들을 처단하고 권력의 집중을 꾀했다. 그는 단순한 살인자나 몽상가가 아니었다. 진나라는 혹독한 법치로 국가를 다스리고, 외교는 협박과 매수를 병행했다. 결국 다른 6국을 모두 멸망시키고 진 이외의 모든 나라를 없애면서 전쟁을 종결했다.
진나라는 통일 이후 도량형을 통일하고, 수레를 규격화 했으며 행정 체제를 개혁했다. 행정 구역을 기존 제후들이 다스리는 봉건제가 아닌 군현제로 바꾸었다. 이로써 봉건제 시절보다 훨씬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구축되었다. 또한 지방 행정구역을 여러개의 군으로 나누었다. 각 군에는 행정, 사법, 감찰의 기능을 한 지방 관리가 파견되었다. 이는 행정과 사법을 분할하고, 감찰을 맡은 이로 하여금 부패를 줄이고 반란을 방지하도록 한 혁신적인 시스템이었다. 이후 진나라의 체제는 많은 중국 국가에 영향을 주어 모범이 되었다.
그러나 진나라의 법은 지나치게 혹독했고, 진시황은 오만한 사람이었다. 이것이 멸망의 씨앗이었다. 우선 진나라는 백성들을 위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랜 전쟁으로 6국의 백성들은 진나라를 증오해온 상황이었다. 진나라와 싸우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수도가 점령당하고 왕이 항복하기 전까지는 무너지지 않았다. 진나라도 무서웠지만 그들의 공격에 이미 많은 가족들이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진나라에 대한 증오심이 결코 얕지 않았지만 진나라는 이들을 위무하기는커녕, 혹독한 법으로 다스렸다.
진나라가 남긴 체제나 법률 중 상당수가 한나라에도 이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나라의 군주들은 법을 간략히 하고 혹독한 법 집행을 막았다. 또한 한나라 초기 이후에는 아예 법제를 건드려서 혹독한 부분을 잘라냈다.
반면, 진나라는 다른 학파의 도덕이나 인의에 관한 것을 모두 배척했다. 법을 통해서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에 전쟁 시에는 효율적인 통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말도 영원히 달리지는 못하는 법이다. 진나라는 전쟁이 아닌 평시에도 혹독하게 백성을 다스렸다. 저자는 이런 다스림은 통일 제국을 다스리는 도리가 아니라 단순한 방편이나 기술에 불과하다고 본다.
진정한 제왕의 술이란 사실 언제, 어디서나 신하들과 연결되는 것이다. 한비가 주장하는 음험한 법술은 전국시대의 자그마한 나라를 일시적으로 다스리는 방편에 불과하다. 마치 단기간에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항상 교실의 맨 뒤에 앉아 학생들을 감독하면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공부할 동기를 만들지 못하니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277P 또한, 진나라는 과중한 인력 동원을 멈추지 않았다. 전쟁이 끝났다는 의미로 무기를 녹이는 퍼포먼스도 보여줬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흉노 정벌을 위해 많은 백성들을 동원했고, 수십만에 달하는 죄수들을 부려서 건축에 동원했다. 통일 전쟁이 벌어진 직후에 수십만의 노역을 감당하는 일은 백성들에게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아방궁과 황릉의 건설은 이런 백성 혹사의 정점이었다.
그리고 제국의 핵심인 진시황 본인 역시 문제가 있었다. 그는 허황된 말을 믿고 불로장생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돈을 써서 도사를 보내 불로장생의 비법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진시황은 자신의 명을 받은 방사들이 몰래 도망가자, 오히려 상관없는 유생들을 파묻어 죽였다.
승상 이사는 이런 진시황을 말리기는커녕 혹독한 정치를 도왔다. 그는 법을 제외한 다른 경전은 읽지 못하게 하고, 오직 법서와 실용 서적만을 남겨서 사상을 말살하는 분서를 제안했다. 이렇게 발생한 분서갱유로 어떤 사람도 말을 하지 못하게 입을 막았다. 혹독한 법으로 백성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비판도 못하게 책을 못보도록 하여 무식한 사람으로 길러냈다.
이리하여 진은 <시>, <서>와 제자백가의 서적들을 거둬서 백성들을 우매하게 하고 천하 사람들의 옛 일을 들어 현재를 비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얼마나 우매한 우두머리와 우매한 부하들의 우매한 행동인가?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들어 통치한다는 것은 평민까지 가르쳐 통치한다는 공자의 사상을 정면 부정하는 행동이며, 지식과 문명을 부정하는 패악질이다. -266P 진시황과 승상 이사는 권력을 손에 넣고 많은 권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숨막히는 통치를 추구했다. 반발하는 이들의 입은 틀어막고, 더 나아가면 확 묻어버린다. 사상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불로장생을 위해서 도사와 방사를 부리고 아방궁과 능의 건설은 마다하지 않는다. 지친 백성은 더욱 몰아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은 색출하여 처벌한다.
진나라는 오로지 법가 사상에만 기반하여 인간의 욕망을 틀어막았다. 저자는 이러한 통치는 백성을 사료를 먹이고 기르는 개나 돼지로 여긴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사같은 법가 관료가 황제의 욕망에만 영합할 뿐 피지배층 전체의 욕망을 틀어막았다고 비판한다. 결국 진나라는 통일 국가의 제도를 뒤로 하고 멸망하고 만다.
책은 나라를 얻는 일도 어렵지만, 어렵게 얻어낸 제국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나라는 바로 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법률과 처벌이 만능이라는 생각, 남을 포용하지 않는 오만함, 개인적 영달을 위한 백성 혹사는 파멸로 이어진다. 결론 부분에서 나오는 '나와 다르다 하여 의견을 틀어막으면 동맥이 막히고, 동맥이 막히면 동물은 죽고 식물은 썩는다'는 작가의 말은 과거가 들려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