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생명울배움터는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며 2014년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는 생명의 교육을 일구기 위한 동력을 얻기 위해 '나' 자신부터 교육하고자 '공적 글쓰기'를 주제로 교육문화연구학교를 열었습니다. 이번에는 '한국사'를 공부합니다.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이 땅이 나아갈 길에 대해 다시 한 번 수렴과 응집의 점을 찍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떤 걸음을 걸어왔는지, 지난 과거를 다시 돌아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가늠하려 합니다. <2016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 생명의 교육, 역사 위에 서다> '역사 - 과거 현재 미래'는 2016년 9월 24일부터 2017년 1월 21일까지 총 19회로 진행합니다. - 기자 말 "촛불집회 가지 마."
"그러니까 투표를 제대로 했었어야지!"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 엄마와 딸이 나눈 대화다. 엄마와 통화할 때면 유독 논리는 사라지고 감정만이 남는다. 어쩔 수 없는 한국의 전형적인 엄마와 딸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존재의 한계로, 마음의 빚으로 존재한다.
엄마와 나는 가족, 여성, 기독교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분자는 무척이나 다르다.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정치에 대한 생각, 경제에 대한 생각 전반이 다르다. 엄마는 흔히 말하는 보수고, 나는 흔히 말하는 진보다. 엄마와 나 사이 30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만나기 위한 첫 걸음으로 현재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 공부하고 있는 것들, 행동하고 싶은 것들을 털어놓는다. 어찌보면 이 기사는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아픈 역사에 대한 공부, <한국통사>금요일 저녁이면 엄마로부터 오는 전화를 놓치고는 했다. 친구들과 지난 9월부터 역사를 주제로 금요일 저녁이면 세미나를 하고 있어서다. 어려서부터 정규 교육을 비교적 성실히 받아왔기에 역사에 대해 기본 소양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지난 몇 달에 걸쳐 역사 공부를 하며 우리의 역사를,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보게 된다. 이제껏 몰랐던 한국의 역사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교과서 외에는 한국사 공부를 따로 한 적이 없음을 서른이 한참 넘어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그동안 여러 선생님들을 모시고 강의를 듣고, <조선상고사>와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을 읽기도 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박은식 선생님의 <한국통사>이다. 한국통사(韓國痛史). 한국의 아픈 역사에 대해 쓴 책이다. 1864년 대원군 섭정부터 1911년 105인 사건까지 그 시대를 살았던 박은식 선생님의 한국을 향한, 세계를 향한, 시대를 향한 애통하는 마음이 담긴 역사책이다. 그리고 뿌리 깊은 부패의 원인인 일제 강점기를 살펴보기 좋은 책이다.
<한국통사>를 세 번의 시간에 걸쳐 보고 있다. 지난 1월 6일은 <한국통사> 마지막 시간이었다.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모두가 둘러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제를 준비한 사람들은 뮤지컬 속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직접 연극을 하기도 하면서 <한국통사>의 내용과 자신의 생각을 나눠주었다.
다들 어찌나 재능이 다양한지 문득 문득 놀라게 된다. 그 자유분방함 속에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일본의 수탈과 을사5적의 행위에 대해 책 속의 우국지사와 충신들처럼 다들 비분강개했다. '도둑 일본'과 '무능 조선'을 연기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도둑 일본에 대해 우리는 무능했고, 그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도둑 일본'과 '무능 조선', 반복되는 역사<한국통사>에 나온 우리의 역사는 처참했다. 일본은 우리의 어장, 광산, 산림, 군항 등을 철저히 수탈해 갔다. 경인철도 등 4개 철도 부설권을 가져갔으며, 국보급 유물들이 일본으로 넘어갔다.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토지를 잠식, 일본 소작농들이 한국으로 이주해 오고 한국 소작농들은 만주와 연해주로 쫓겨 갔다.
일본이 들어오는 통로에는 을사5적과 같은 친일파들의 행각이 있었다. 정부 대신들은 국왕을 겁박하여 조약에 서명하게 하고 선비들의 상소를 가로막았다. 일본에 기대어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에는 유능했으나 나라 지키기에는 무능했다. 한국은 힘없이 많은 것들을 빼앗겼고 백성들과 의식 있는 선비들은 통탄했다.
문제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지선(36)씨는 당시 통탄하며 일어났던 민중들, 애국지사들처럼 비분강개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일의정서의 역사에 대해 말했다.
"박정희 시대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지급받기 위해 한일기본조약(1965년)을 체결했고 대신 배일 청구권을 포기했습니다. 2015년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채 반성 없이 합의가 이루어졌고, 2016년에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북한에 대한 일본의 정보가 필요하다는 이유였지만 사실 우리는 북한 미사일 발사 사실을 일본보다 먼저 아는 정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2년 북의 인공위성 발사 때 한국은 발사 사실을 즉시 확인했으나 일본은 20분 뒤에야 확인했지요. 이 협정은 사드처럼 우리의 안보보다 일본을 지켜주기 위한 장치일 뿐입니다." 사람은 학습이 가능하다. 불에 손을 데었으면 다시 불에 손을 데지 않는다. 그런데 100년 전 역사는 왜 지금도 반복되고 있을까.
잊어버리는 습성 때문에 망한 우리박은식 선생님은 우리가 잊어버리는 습성 때문에 망했다고 말했다.
"비록 환란을 겪고 엄청난 치욕을 받았어도 시간이 지나면 곧바로 잊게 되어 분개하지도 못하고 겉으로 나타내지도 못하며, 움직이지도 변화하려고 하지도 않아 끝내는 패망하고 만다... 우리는 잊어버리는 습성 때문에 나라가 망했고 갇힌 몸이 되었으며 임금마저 잃은 것이다."(<한국통사>, p364-366) 박은식 선생님의 말처럼 당시 우리가 임오군란의 환란을 잊지 않고 군신이 매사에 조심하여 정치에 힘썼다면 갑오동학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갑오와 을미의 변을 잊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도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늘은 우리에게 여러 차례 변고를 통해 조심케 하여, 나라를 다시 세울 기회를 주었었지만 결국 우리는 기회를 잃고 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2017년의 우리는 100년 전 수탈의 역사를 잊고 또 그렇게 살고 있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는 무척이나 바쁘게 살고 있다. 일제 강점기와 경제개발 시기를 거쳐 지금 이 시대까지 내 한 몸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목표로 바쁘다. 우리는 무엇을 잊고 있을까. 국권피탈의 역사를 잊고, 나라를 팔은 사람들의 잘못을 잊고 바쁘게만 사는 우리는 다시 또 일본에, 미국에 우리의 주권을 유린당하고 있다. 그들의 유린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국민의 돈을 빼앗아 부정과 부패로 자기 배를 불리고 있다. 그 앞에서 우린 여전히 무지하고 무능하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역사청산'이라는 민족적 반성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반성하고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조선상고사>에서 신채호 선생님은 개인이든 민족이든 변하는 시대 속에 순응하면서도(변성, 變性) 자신을 지켜야 하며(항성, 恒性), 이 둘 모두를 고르게 하여 생명을 이어갈 수 있으려면 민족적 반성이 있어야만 한다고 했다. 자신이 시대의 변화를 잘 읽고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는지, 그러면서도 지켜야 할 가치를 잘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길을 걸을 수 있고 생명력이 지속된다.
다음 걸음을 걷기에 앞서 과거를 돌아보며 우리는 반성할 것을 반성하지 못했다. 우리는 해방 이후 일제강점기 친일파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1948년 특별법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조직했다. 민중의 지지 속에 친일 행각에 대한 제보가 이어졌고 반민특위는 기세등등했다.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를 힘 있게 써내려갈 것 같았다. 하지만 친일파의 세력이 필요했던 이승만 대통령과 연합한 친일파의 적극적 훼방 속에 반민특위는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반민특위는 겨우 1년여 활동했을 뿐으로 이 기간 1000여 명의 친일파만이 취급되었다.
제대로 된 반성이 없으니 과거는 반복됐다. 우리는 그 당시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지 못했고, 세계의 변화에는 아둔했다. 함석헌 선생님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말했듯이, 권력에 따라 '오늘은 이 놈, 내일은 저 놈에게 붙다 결국 망해버렸다.' 정권을 장악한 친일파에 의해 운영된 지난 70년의 국정은 일제강점기의 연속선상이었다. 백성을 저버리고 일본과 미국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정치, 경제, 교육 각 분야를 장악하며 정의가 아닌 기회주의의 나라로 만들고, 사드와 위안부 협정으로 이 땅과 국민을 팔고 있다. 그 역사에 대한 청산, 민족적 반성이 있어야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혼(魂)'을 깨우는 우리일제에게 우리의 모든 것을 수탈당하던 때에도 승리와 희망의 역사는 계속해서 쓰여지고 있었다.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황성신문>은 통탄과 반박의 글을 실었고, 국민들은 분개했으며, 유생들은 반대 글로 규탄했다. 수백 명이 함께 상소하여 매국노 처단을 요구하고, '보안회'를 조직하여 연설과 격문으로 일본의 토지침탈을 알렸다. 각국 공사에게 호소하여 공평한 판결을 요청했고, 일본 병사가 총칼로 위협하고 체포함에도 다시 집회를 열었다. 그렇게 온 국민의 투쟁으로 일본은 황무지 개간권을 끝내 철회하고야 말았다. 이 희망의 역사에서 박한나 씨(30세)는 다음 세대로 이어갈 빛을 보았다.
"수탈의 역사 속에서도 빛나는 선조들의 승리의 역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선조들이 살아온 길을 통해 역사의 아픔이 아픔으로만 끝나지 않음을 배우게 됩니다. 그 아픔 속에서 빛이 잉태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마주한 아픔을 충분히 아파하되 그 속에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승리와 희망을 담은 빛의 역사를 잉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윤미(32)씨는 박은식 선생님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내 눈 앞에서 사건이 벌어지듯 일제 침탈 과정을 상세히 써 내려간 이유는 우리가 '잊지 않는 힘'을 가지도록 함이며 민족의 '혼(魂)'을 일깨우고자 함이라며 깨어 공부하겠다 다짐했다.
"4천년의 역사를 가진 한민족도 자기 잇속만 챙긴 당쟁과 민중의 울분을 해결하지 못해 분열되었고 제국에게 침탈의 기회를 주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백(魄)'은 사라져도 '혼(魂)'을 지키고자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내놓았던 자들의 피와 의(義)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않는 힘'은 오늘날 개인과 국가를 흔드는 무수한 사건을 더 절절히 붙잡도록 합니다. 그 속에 우리의 책임과 소망을 끊임없이 투여하겠습니다."정치권을 향한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서민의 외침은 정당하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국가 지도자들의 반복되는 무책임한 모습은 우리를 통탄하게 한다. 그러니 백성들에게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민중이 깨어나 혼을 가져야 한다는 박은식 선생님의 당부를 기억해야 한다.
깨어 있겠다. 기억하겠다. 그러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하는 참석자들과 같이 이 시대 민중의 깨어남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2016년 광장의 대중은 자신들의 부피와 밀도가 가지는 힘을 인식했고 선거의 '표'로서 스스로가 가지는 힘을 작동시켰다. 권력의 원천인 국민으로서 법 자체에 명령하고 있다. 깨어난 집단지성은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토론함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설계하고 이를 실천하는 시민들은 이 땅의 역사 속에 자신의 몫을 다했던 선조들의 혼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새 해, 새 나라 되어 새로운 역사 써 가기를 2017년 정유년을 맞아 소망해 본다.
*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카페로 오시면 교육문화연구학교를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의 소감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새들생명울배움터 경당 바로가기(http://cafe.daum.net/kyungdang/coIz/380)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도 기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