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2013년 1월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각개전투 훈련을 받고 있다.
지난 2013년 1월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각개전투 훈련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열외는 없다." 교관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몇몇 훈련병들은 신체적인 통증, 지병을 호소하며 열외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심각한 수준이 아니면 전부 거부당했죠.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에는 항상 훈련에서 열외 되는 훈련병 1명이 있었습니다.

어눌한 말투, 4차원적인 유별난 행동, 작은 체구. 그는 군대에 어울리지 않는 조건을 전부 갖고 있었죠. 물론 징집병 중에서 군대에 어울릴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특히 그 훈련병은 조금 심각했습니다. 바로 A훈련병입니다.

이 A훈련병은 문제가 많았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눈에 띄게 사고를 쳤죠. 결국, 흔히 부르는 '관심병사'로 지정됐습니다. 분대장들과 조교들이 특별히 감시하고, 소대장마저 진땀을 빼는 수준. 관심병사 여부는 비밀이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는 '관심병사'라고 느꼈죠.

항상 훈련에서 열외 되는 A훈련병

결국, 모든 훈련에서 자동 열외 됐습니다. 실탄을 쏘는 사격훈련은 물론이거니와, 군대의 꽃이라는 '행군'까지. 모든 훈련에 빠진 A훈련병. 훈련 기간 내내 그는 수다만 떨었습니다.

행군을 마치고 돌아오는 훈련병들. 땀에 온몸이 흠뻑 젖거나, 발바닥에 물집이 잡힌 상태였습니다. 막사에서 히히덕 거리는 A훈련병이 그들의 눈에 밟혔죠. "왜 쟤는 늘 훈련에 빠지느냐."라고 다른 훈련병들이 짜증 냈죠. 그러자 익숙하다는 듯, 조교가 말했습니다.

"야, 저런 애들 많아. 그래도 쟤는 얌전한 편이야."

참 여러모로 '골 때리던' A훈련병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중대의 행정과 보급을 책임지는 간부인 행정보급관, 통칭 '행보관'. 그 행보관은 무시무시했습니다. 훈련병에게 폭언이나 구타를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험상궂은 외모, 날카로운 눈매, 걸걸한 목소리. 무엇보다 '상사' 계급장은 어린 나이의 '훈련병'들이 두려워하기에 충분하죠.

그런 행보관이 당직을 서는 날이었습니다. 점호가 시작되자, 훈련병들은 바짝 긴장했죠. 다행스럽게 청소구역이 지적받는 일은 없었습니다. 행보관은 생활관마다 돌아다니며 물었습니다.

"여러분, 아픈 곳은 없죠?"

훈련병들은 우렁차게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죠. 우리 생활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때 행보관은 문제의 '그 훈련병'이 있는 생활관으로 갔습니다. 바로 우리 생활관 옆이죠.

우리는 슬쩍 그 광경을 지켜봤습니다. 행보관은 마찬가지로 아까 같이 질문했습니다. 모두 우렁차게 '없습니다!'라고 외쳤죠. 딱 1명을 제외하면요. 바로 A훈련병입니다.

그러자 행보관은 어디가 아픈지 자상하게 물었죠. A훈련병의 대답은 걸작이었습니다. 순식간에 그 생활관은 키득키득 웃음이 터져 나왔죠. 순식간에 행보관의 표정은 굳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웃지 마!"라고 고함쳤죠.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훈련병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지요. 결국, 사이좋게 얼차려를 받았고요.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똥꼬 빼고 다 아픕니다!"

A훈련병을 보면서, 모병제 도입의 절실함을 느끼다

이렇게 사고를 치던 A훈련병. 결국 대형사고를 치고 맙니다. 중대장과 상담 중에, 중대장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평소에 '자신이 외계인이라던 훈련병'에게도 웃어넘겼다고 자랑하던 중대장. 아무래도 A훈련병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체감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A훈련병은 그린캠프로 보내집니다. 그린캠프는 군대 내의 '정신병원'으로 취급받죠. 그만큼 모든 군인들이 꺼려하는 장소입니다. 그 뒤로 A는 다른 훈련병들이 7주 훈련을 전부 마칠 때도 돌아오지 못했죠. 신교대를 마치고, 자대에 갈 무렵에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불명예 전역을 당했다는 소문만이 돌았죠. 아마도 그랬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이런 A훈련병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A훈련병은 죄가 없죠. 나라의 부름대로 왔을 뿐이니까요. 문제는 징병 기준완화입니다. 겉으로 심각한 장애가 없으면 대부분 현역복무대상입니다. 따라서 A와 같은 사람들이 군대에 오는 원인입니다.

당시 조교는 A훈련병은 얌전한 편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죠. 하지만 나중에 뉴스를 보니 정말 A는 얌전한 편에 속했습니다. 최소한 A훈련병은 자살, 자해, 탈영, 살인은 저지르지 않았으니까요.

어느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 애들은 소수가 아니냐?" 하지만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병사들이 소수라도 파급력은 큽니다. 당시 훈련병들은 A훈련병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빈정댔을 정도니까요.

"야, 전쟁 나면 북한군보다 쟤가 더 걱정되지 않냐?"
"그러게. 뒤에서 누가 총을 쏘면 분명히 A가 쐈을걸."

근본적으로 전우애를 무너뜨리고, 서로 간의 신뢰가 없어집니다. 특히 군인이란 등을 맞대고 싸우는 사람들이죠. 전우애와 신뢰에 문제가 생기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군대 내의 심각한 왕따 문제를 야기합니다. 제22보병사단 총기 난사사건의 원인이기도 하죠.

A훈련병이 그린캠프로 떠나고, 정훈교육 시간의 일입니다. 정훈장교는 6.25 전쟁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죠. '북한군은 다수의 훈련된 군인들이 구성됐지만, 우리는 머릿수만 채우던 상황이었다. 낙동강까지 밀릴 수밖에 없던 상황이다.'라고 말이죠.

저는 그 말을 듣고 A훈련병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군대는 60여 년 전의 일에도 교훈을 얻지 못했구나.'

아마도 A역시 병무청에서는 '머릿수'로 분류가 됐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A훈련병을 보면서 모병제 도입의 절실함을 느낍니다. 정말 싸워 이기려면 그런 군대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머릿수'가 아니라 '강한 군인'입니다.


#고충열#입영부터전역까지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