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일 서울 서초구 농협하나로클럽 양재점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2.0% 올랐다. 이는 2012년 10월(2.1%) 이후 4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2일 서울 서초구 농협하나로클럽 양재점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달보다 2.0% 올랐다. 이는 2012년 10월(2.1%) 이후 4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 연합뉴스

"두 개에 천 원이에요. 계란값이 올라 어쩔 수 없네요."

퇴근길. 재래시장 어귀 오래된 빵집에서 몇 개 고른 빵 가격이 맞지 않는다고 하자, 주인은 사뭇 미안해하며 설 전에 가격을 올렸다고 말한다. 체인점에서 보통 500원, 700원 하는 소보로빵. 크림빵이 여기서는 세 개에 천 원이었는데 이제 두 개에 천 원, 그러고 보니 옥수수식빵도 500원 올렸다. 서로가 등 떠밀듯이 올라가는 물가. 어디 빵값 뿐이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설 명절이 지나면 제자리를 잡는다던 물가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국제 유가가 오름세로 돌아서고 식료 원자재 인상은 캔류, 가공 식품의 가격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계란, 무, 당근 등 농수산물 가격도 계절적 요인과 정부의 잘못된 수요예측 인해 어느 때보다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 저물가를 걱정하던 언론들은 저성장에 고물가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물가 폭등, 착시현상 때문이라고?... 내놓는 대책도 한심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폭등하는 물가를 잡을 단기적인 대책의 전무함은 물론, 장기적으로 국민들이 체감물가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어떠한 정책도 꺼내 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일 유일호 부총리 주재로 경제현안점검회의가 열렸지만 물가상승은 기저효과 탓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진단만 내놓았다. 지금까지 저물가가 이어지다보니 물가상승폭이 더 두드러지게 보이는 착시효과일 뿐이며 시간이 지나면 1%대의 안정적인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진단이 이러니 대책이라고 내놓는 정책들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실제 이날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매주 차관회의 통한 물가안정대책 점검' '농축산물 수급 불안정 확대 방지를 위한 집중 관리' 정도 밖에 없다. 물가가 들썩일 때마다 매번 나오는 대책회의고 별 효과도 보지 못한 집중 관리 방안이다. 뒷날인 3일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열린 대책회의도 알뜰주유소 확대, 민생물가의 철저한 관리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 또한 재탕, 삼탕의 대책일 뿐이다. 또 알뜰주유소 확대는 주유소 간의 과도한 경쟁을 유발해 영세한 주유소 대량의 폐업만 만들어 낼 뿐, 유가 인하 효과는 적다는 것이 이명박 정권하에서 수차 확인된 실패한 정책이다.

물가 폭등은 무능한 정책의 결과다. 계란값 파동만 해도 그렇다. AI를 초기대응하지 못해 수천만 산란용 닭을 매몰 처분시켰기 때문에 계란 부족 사태로 이어졌고 가격 상승을 불러왔다. 그러나 정부의 무능은 일언반구도 없이 도소매업자의 사재기 탓으로 화살을 돌렸고, 미국산 계란 수입에 운송비를 보조하면서 대형마트 계란 판매가 물가안정 대책인 양 홍보했다. 정부의 무능으로 빚어진 계란 파동. 수입업자와 대형마트만 배를 불렸고 재래상인. 도소매업자는 매점매석 비양심으로 매도되었다. 국민들은 혈세로 수입운송비를 부담하면서 계란 한판에 8900원을 주고 사야했다.

저물가가 성장의 걸림돌이라던 정부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한 계란값 상승에 이어 다른 가공식품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버터는 다음 달부터 최고 15%가량 오르고, 마요네즈의 경우 업소용 제품을 중심으로 가격 인상이 검토인 것으로 알려져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늘고 있다. 지난 1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이 버터를 살펴보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한 계란값 상승에 이어 다른 가공식품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버터는 다음 달부터 최고 15%가량 오르고, 마요네즈의 경우 업소용 제품을 중심으로 가격 인상이 검토인 것으로 알려져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늘고 있다. 지난 1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이 버터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물가 폭등에 따른 대책은 매번 이런 식이다. 물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질 때마다 정부는 유통단계의 복잡함이나 사재기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수입을 늘리고, 유통단계가 단순한 대형마트나 직거래가 현명한 소비라고 강변한다. 정부가 수요 예측을 잘못해서 빚어진 일에 대해서는 사과나 반성도 없다. 또, 대형마트가 도소매업자, 재래시장 상인들보다 몇 배의 폭리를 취하는 것도 매번 외면한다. 그래서 물가는 항상 오르고 재래시장은 황폐화되고 대형마트, 온라인 시장만 번창하는 거다. 그래놓고 선거 때만 되면 매번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는 공약은 빼놓지 않는다.

물가가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수출과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 때문이다. 금리를 낮추고 환율을 수출에 맞추다보니, 수입 물가가 뛰는 것이다. 정부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물가 탈출을 주문했다. 한국은행도 저물가가 성장의 걸림돌이라며 공공요금을 올려서라도 물가 인상을 유도해야 된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국민들의 체감물가는 아랑곳없이 2% 정도의 물가상승률을 유지해야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정부와 한국은행. 무능과 판단의 오류가 성장도 담보하지 못하며 물가만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 직전으로 국가경제, 국민경제를 몰아넣은 것이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1월 2% 물가상승은 걱정할 것도 못된다. 2% 물가인상률 유지가 성장을 위한 조건이라면 이제야 저물가를 벗어난 셈이다. 그러나 같은 한파라도 얇은 옷을 걸친 사람이 더 춥기 마련이다. 체감 물가도 마찬가지다. 설 명절 전에 최소 천만 원 이상 성과급을 받는 대기업 직원들이야 계란 한 판이 만 원을 훌쩍 넘는다고 걱정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최저임금도 겨우 받는 비정규직, 자영업자, 알바로 연명하는 청년들에게는 인상을 위해 꿈틀거리는 물가는 공포이고 생존의 직접적 위협인 셈이다. 

물가의 변동 요인은 복잡하다. 정권의 정책이 물가를 좌우하는 큰 요소이기는 하지만, 날씨의 변화나 계절적 요인. 대내외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기름값은 국제 유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산업 원자재나 국제 곡물가도 마찬가지다. 계절적 요인. 국외적 요인으로 물가가 들썩일 때마다 대다수 국민이 독감을 앓듯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물가 대책의 장기적 과제. 물가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가계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다. 

황교안-유일호의 물가대책 미덥지 못하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가정 살림. 일해도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것은 반은 거짓이다. 통계로 잡힌 물가상승률이 2%라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물가고에 아우성친다면 임금과 가계 수입이 소비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서 물가의 장기적 대책은 저임금, 질 낮은 일자리를 해소해서 국민의 호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수출과 성장을 위해 저물가 탈출의 환상을 버리지 않고,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채워 물가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가계 면역력 증진에도 아무런 관심도 없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로 물가 대응의 한계를 거론하는 여론이 있다. 동의하기 어렵다. 물가 대책이 약발을 받지 않는 이유는 대통령 권한 대행 때문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의 잘못된 정책을 그대로 답습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과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 저임금과 손쉬운 해고의 노동정책을 그대로 두고 물가를 잡겠다는 다짐, 박근혜 대통령이나 황교안 권한 대행이나 똑같다. 

'뛰는 물가, 기는 대책'이라는 조롱이 난무한다. 유일호 경제팀이나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의 분주한 물가 안정 대책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 점점 더 얼어붙는 내수시장. 수출시장이 살아난다고 하지만 대기업 몇몇의 이야기일 뿐이다. 청년 실업이 급증하고 국민들의 물가고, 생활고는 점점 더 큰 파열음을 내고 있다. 잘못된 첫 단추는 박근혜 정권 정경유착의 파행적 경제정책에서부터 끼워졌다. 황교안 총리나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물가 대책이 미덥지 못한 이유는,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거짓공약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다.


#물가대책#물가#물가상승률#경제#민생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