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공짜 밥을 원하지 않는다."(안희정 충남도지사)
"공짜는 구태보수세력이 쓰는 말이다."(이재명 성남시장)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인 이재명 성남시장과 안희정 충남도지사 사이에 복지정책 논쟁이 뜨겁다. 안희정 지사는 지난달 22일 대선 출마 선언문에 "세금을 누구에게 더 나눠주는 정치는 답이 아니다. 국민은 공짜 밥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시혜적 정치와 포퓰리즘 청산"을 강조했다. 사실상 이재명 시장이 내건 기본소득 공약을 겨냥한 것이다.
이 시장도 바로 다음날(23일)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낸 세금을 국민에게 환원하는 걸 어떻게 공짜라고 하느냐"면서 "공짜는 구태 보수 세력이 쓰는 말"이라고 맞받았다.
무상급식, 노인기초연금 등 복지 정책은 선거 때마다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과연 이번 대선에서 기본소득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를 수 있을까? 이재명 시장과 안희정 지사의 복지 논쟁을 중심으로 기본소득 공약의 실현 가능성과 정책 효과를 짚어봤다.
양극화-인공지능 시대 대안으로 떠오른 기본소득기본소득이란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다. 선별적인 기존 복지정책과 달리 수혜자의 재산, 소득, 노동 여부를 따지지 않는 게 특징이다. 신자본주의 시대 빈부 양극화가 심해지고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으로 사람의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핀란드를 비롯해 유럽 선진국에서 이미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되고 있지만, 국내에선 성남시,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 청년수당(청년배당)을 시도한 게 전부다.
유력 대선주자들 가운데 이재명 시장이 기본소득 도입하는 데 가장 적극적이다. 이 시장은 이미 지난해 1월 성남시에 거주하는 만 24세 청년 1만3000여 명에게 청년배당으로 연간 50만 원짜리 지역상품권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했다. 이 시장은 지난달 16일 이를 국가 차원으로 확대한 기본소득 공약을 따로 발표했다.
[이재명표 기본소득] 2800만 명 연 100만 원+전국민 연 30만 원
이재명 시장은 생애주기별 국민 2800만 명에게 연 100만 원씩 지급하고, 모든 국민에게 연 30만 원씩 토지배당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생애주기별로 0~12세는 아동배당, 13~18세는 청소년배당, 19~29세는 청년배당, 65세 이상은 노인배당을 1인당 매년 100만 원씩 받을 수 있다. 30세~65세 노동 가능 연령대를 제외한 모든 국민이 수혜 대상이다. 또 농어민과 장애인은 나이에 상관없이 각각 농민수당과 장애인수당을 1인당 연간 100만 원씩 중복해서 받을 수 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생애주기별 배당 대상자가 2명이면 토지배당 120만 원을 포함해 연 320만 원을 받을 수 있고, 배당 대상자가 4명이면 연 52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이들 배당은 현금 대신 지역상품권으로 지급해 지역 경제 활성화도 도모할 계획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이 시장은 생애주기별 배당 23조 8천억 원(아동배당 5.8조 원, 청소년배당 3.1조 원, 청년배당 7.6조 원, 노인배당 7.4조 원)에 장애인배당(2.5조 원)과 농민배당(1.7조 원), 토지배당(15.5조 원)까지 포함하면 연 43조 5천억 원이 든다고 예상했다.
이 가운데 토지배당 15조 5천억 원은 기존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대체하는 토지 보유세인 '국토보유세'를 도입해 늘어나는 세수를 모두 사용하고, 나머지 30조 원 정도는 국가 재정 관리와 법인세, 소득세 등 증세로 마련할 계획이다.
우선 이 시장은 성남시 재정 관리로 예산 7~8%인 1200억 원을 확보한 경험을 내세워 국가 예산 400조 원 가운데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중심으로 7% 정도만 줄여도 30조 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 시장은 자신의 대선 공약을 담은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메디치)라는 책에서 "예산을 아껴 쓰는 정도로는 꼭 필요한 복지를 충분하게 해낼 수 없다"면서 재벌 증세와 초고액 소득자 증세, 조세 감면 축소로 20조 원을 추가로 마련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500억 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는 약 440개 대기업 법인세를 22%에서 30%로 8%P 인상하면 연평균 약 15조 원, 과세표준 10억 원 이상 초고액 소득자 6천 명에 대해 10억 원 이상 부분만 최고세율을 50%로 올리면 2조 4천 억 원, 대기업과 고소득자 조세감면 제도 개선으로 5조 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장은 국토보유세 등으로 늘어나는 세금을 감안해도, 전체 가구의 97%가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정치권 평가] 포퓰리즘 비판에 야당도 가세 "기존 복지정책 개선이 더 시급"기본소득은 거의 모든 국민에게 직접 현금으로 지급돼 파급력도 큰 만큼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란 비판도 따라 붙는다. 새누리당, 바른정당 같은 보수정당은 물론, 민주당, 국민의당 등 야당 안에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매년 수십 조 원에 이르는 재원 마련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실현 가능성이 없고,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지출 비중이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우선 기본소득에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현가능성 없는 포퓰리즘일 뿐이라는 비판이 많다. 또 기본소득 때문에 국민들의 노동 의욕이 꺾인다는 비판도 있고, 종부세보다 강력한 국토보유세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심지어 같은 민주당 대선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도 지난달 25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보편 복지, 선별 복지는 '개 발에 편자' 같은 논쟁"이라면서 "(비현실적인 장애 수당, 양육 수당, 실업 급여 수준 등) 단계적인 복지 정책, 제도 정비 과제가 산적했는데 선거 때면 각 계층마다 더 주겠다는 식으로 복지 정책에 접근하는 방법에 동의할 수 없다"고 이 시장이 기본소득 공약을 비판했다.
이재명 시장 싱크탱크인 공정사회정책연구회 토지주택·기본소득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기본소득 공약을 만든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기본소득은 나라가 국민들에게 뿌리는 공짜 돈이 아니다"라면서 "국가가 모든 국민들에게 실질적 자유를 부여할 의무 때문에 지급하는 돈이자, 한 나라의 공유자산에 대해 권리를 갖는 국민들에게 그 권리에 상응해 지불하는 배당금"이라고 밝혔다. 토지를 비롯한 자연자원, 환경, 인공지능, 기득권층이 누리는 특권을 모두 국민의 공유자산으로 본 것이다.
[전문가 평가] 기본소득 실험 의미있지만 재원-정책 효과는 미지수그동안 사회수당을 비롯한 복지 예산 확대를 요구해온 시민사회나 일찌감치 기본소득 공약을 꺼내든 진보정당에서도 이재명 시장 공약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증세를 통한 '보편적 복지국가'를 추구해온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내만복) 공동운영위원장은 "이재명 시장 공약은 기본소득으로 포장만 했지, 청년배당과 농민배당만 빼면 보편적 복지국가에서 제시한 '사회수당'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설계 원리는 기본소득이지만 금액이 워낙 적어 부분 기본소득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전 국민에게 월 30만 원(4인 가구 기준 월 120만 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 공약을 내놨던 노동당에선 이 시장의 공약의 실효성보다는 상징성에 더 무게를 실었다.
장흥배 노동당 정책실장은 "기본소득의 기본 정신은 국민 모두에게 무차별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라면서 "(이 시장 공약처럼) 특정 계층에게만 주는 건 전면 기본소득이 아닌 부분 기본소득에 가깝다"고 밝혔다. 기본소득의 장점은 납세자와 수혜자가 일치해 조세 저항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인데 특정 계층에만 주게 되면 그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5000만 전 국민에게 연 30만 원씩 지급하는 토지배당이 기본소득 성격에 가깝지만 생애주기별 배당까지 합해도 1인당 연 130만 원, 월 10만 원(4인 가구 기준 월 4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장흥배 실장은 "다른 노동소득 없이도 기본소득만으로 기본 생활이 가능한 수준은 돼야 하는데, 1인당 월 10만 원 정도는 기본소득으로 보기 어렵다"면서 "(1인당 월 30만 원이) 아직 국내에서 현실성이 없지만 조세부담률(2014년 기준 18%)을 OECD 평균 수준(2013년 기준 25%)으로 높이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비판에 이재명 캠프는 이번 기본소득 공약이 아직 '실험' 수준임을 강조한다. 전강수 교수는 "1인당 연 130만 원이라는 돈은 모든 국민에게 실질적 자유를 부여하기에도, 공유자산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기에도, 새로운 분배 대안의 역할을 해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면서도 "아직은 소액이지만 국민들이 제도의 혜택을 맛보고 나서 제도 확대를 열망하는 단계가 오면, 비로소 본격적인 기본소득제는 꽃을 피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오건호 위원장은 "어떤 식으로든 기본소득 실험을 하겠다는 의도겠지만 (토지배당) 월 3만 원 정도에 국가 예산 15조 원을 쓰기엔 정책 효과가 떨어진다"면서 "기본소득이란 명분에만 너무 연연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 시장이 제시한 재원 확보 방안도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오건호 위원장은 "정부 지출 7%를 줄이겠다는 건 너무 순진하다"면서 "400조 원 예산 가운데 법령에 따른 의무지출만 절반에 가깝고 나머지 재량 지출에도 인건비 같은 경상 지출이 포함돼 실제 재량 여지는 37% 정도밖에 안 된다"면서 "400조 원 기준으로 몇 % 줄이겠다는 건 중앙정부 예산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닌가"라고 따졌다.
장흥배 실장도 "기본소득 재원을 확보하려면 조세 제도 자체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면서 "재정 낭비 줄이기는 재원 마련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정책 실천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복지 예산에 쓰이는 목적세인 사회복지세 도입을 비롯한 '복지 증세'를 강조해온 오 위원장도 "재원 확보가 안 된 복지 확대 정책은 국민의 복지 기대만 꺾는 기대 역설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서 "재원 확보 계획을 치밀하게 마련하고 청년배당과 농민배당도 정책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꼼꼼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청년배당(만 19~29세) 대상자 가운데 25~29세 상당수는 노동 활동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24세 이하 취업준비생 지원을 더 늘리고, 농민 배당도 현재 쌀직불금제(쌀소득보전직불금제도)와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 위원장은 "기본소득 같은 현금 복지가 더 가시적이긴 하지만 사적 복지를 줄이고 의료, 주거, 요양 등 공적 복지를 늘리는 게 민생 복지 개선에는 더 효과적"이라면서 "월 10만 원씩 받아봤자 민간의료보험료 내고 전세금 3천만 원씩 뛰고 요양 시설 엉터리면 말짱 황이고 밑 빠진 독"이라고 지적했다.
[대선기획취재팀]구영식(팀장) 황방열 김시연 이경태(취재) 이종호(데이터 분석) 고정미(아트디렉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