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에 제 외아들을 입대시켰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다른 아버지와 다르지 않게 입대한 그 아들을 걱정하고 또 걱정하며 지냈습니다. 훈련 중 다치지나 않을까? 누구에게 맞지나 않을까? 그러다가 훈련소 수료식 소식에 아들이 좋아하던 음식을 싸들고 아내와 함께 달려갔습니다. 불과 몇 주 만인데도 왜 그리 마음은 뛰고 설레던지.
대학 입학 후 따로 자취하며 살았던 아들인데도 아버지인 제 눈과 마음에는 늘 어린애 같은 아들. 그런 아들이 마침내 군복을 입고 이등병 계급장을 달던 그 순간, '이등병' 작대기 하나가 얼마나 크고 또 무겁게 느껴지던지요. 그런 아들에게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 안달하다 보니 어느새 약속된 수료식 외출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야박한 조교의 행동, 잊을 수 없어그래서 다시 아들을 부대로 데려가고자 차를 운전하여 달려가 보니 어느새 주위는 깜깜한 밤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 하나를 가지게 됩니다. 차가운 12월의 밤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산골짜기 낯선 군부대 연병장에 아들을 내려주던 때였습니다. 저는 이제 또 헤어질 아들을 '마지막으로 꼭 안아주고 싶어' 운전석 안전띠를 풀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연병장에서 상황을 통제하고 있던 조교의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습니다. "가족은 하차하지 말고 그대로 차를 돌려 부대 밖으로 나가라"는 명령조 안내였습니다. 순간 '아차'했습니다. 아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힘내라는 말을 전하려고 차에서 내리는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안 했는데 그것조차 자칫하면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는 운전석 창문이라도 내려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 야박한 조교의 행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창문을 내리는 순간 조교가 다가와 창문을 가로막는 것 아닌가요? 결국, 저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창문을 올린 후 그대로 연병장을 돌아 부대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조교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항의라도 하고 싶었으나 그로 인해 제가 떠난 후 아들이 피해 입을까 싶어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돌아오며 제 눈에서는 내내 '소리 없는' 눈물이 났습니다. 턱선을 따라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 없이 서러웠고 무력한 제 처지가 슬펐으며 아들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런 내 뒤에 앉아 있던 아내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말은 안 했지만 아내 역시 홀로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 역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은 또 있습니다. 2014년 가을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부대 개방의 날'이라며 방문을 원하는 사병 부모는 찾아오라는 안내였습니다. 늘 부대 정문 옆 낡은 면회실까지만 가서 아들 얼굴만 보고 왔는데 마침내 아들이 잠자고 생활하는 공간까지 개방한다고 하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군인 부모를 모시고 부대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고 하니 어떤 행사를 준비했을까 싶어 내심 기대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마침내 찾아간 아들의 '부대 개방의 날' 행사. 고백하자면 저는 군악대라도 나와서 '빵빠레'라도 불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부모님들이 잘 키워서 보내주신 아들 덕분에 이 나라가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고 이 나라의 고마운 존재입니다."이런 덕담이라도 하면서 환영의 꽃가루라도 뿌려주지 않을까? 그러면 곁으로는 쑥스러워 하면서도 내심 '자랑스러운 군인 부모'임을 스스로 뿌듯하게 여기고 싶었습니다. 그런 후 아들의 손을 잡고 아들이 생활하는 부대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것을 상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을 하며 들어선 부대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뭐 그런가 하면서 연병장에 차를 세운 후였습니다.
국가보안법 처벌을 각서하라니, 이게 부모에게 할 짓인가어디로 가야 아들을 볼 수 있을까 궁금하던 그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지금 도착하는 부모님들은 장병들을 만나기 전 먼저 연병장 구령대로 모여 달라"는 안내였습니다. 그래서 구령대로 올라가 보니 그곳에는 긴 탁자 위에 볼펜과 서류 종이가 흩어져 있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이어 들린 부대 측 관계자들의 목소리.
"지금 보이시는 서류에 각서를 작성하신 후 장병들을 만나시면 됩니다. 볼펜으로 위 각서에 성명과 주소, 연락처, 그리고 서명을 해서 저에게 제출해 주십시오."
도대체 무슨 서류이길래 아들을 만나기 전, 먼저 작성부터 하라는 것인가 싶어 저는 그중 한 장의 서류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저는 가슴에 두방망이질 치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서류에 적힌 제목은 '서약서', 내용은 부대 개방 행사를 하는 데 있어 무슨 무슨 행동을 하면 국가보안법 제 몇조, 군 형법 제 몇조로 처벌당하며 이를 각서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너무도 참담하고 비참했습니다. 이게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에게 부대 도착을 하자마자 제일 먼저 요구하는 서류라는 것이 너무도 어이없고 분했습니다. 내 목숨보다 더 귀한 아들을 군에 보내놓고 기본적 생활비조차도 되지 않는 푼돈을 주면서 부려 먹으면서 그 부모에게는 이런 처벌 각서나 요구하는 군.
부대 내 빨래 건조기를 사용하려면 천 원짜리 지폐가 필요하다고 하여 "무슨 군대가 그런 것도 돈을 받냐"고 하면서도 면회 때마다 천 원짜리를 바꿔 가는 부모들, 우표는 팔지 않는다 하여 그것도 부모가, 집과 통화를 하려면 수신자 부담으로 일반 전화보다도 더 비싼 군용 공중전화를 쓰고, 때때로 군용 물품이 좋지 않다며 이러저러한 사제 물품도 사서 보내야 하는 우리 군인의 부모들.
그런데 그런 부모에게 아들 만나기 전에 이런 처벌 각서나 쓰라는 군의 표리부동한 태도에 저는 화가 나고 분했습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폭발했습니다. 저는 각서 제출을 안내한 부사관에게 "이 각서 제출을 계획한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뜬금없는 제 말에 그 부사관은 눈을 크게 뜨며 "왜 그러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국방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들을 군대 보낸 부모는 '이 나라의 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으로 나름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에게 부대 개방 행사에 오라고 한 후 이런 처벌 각서를 요구한다는 것이 너무도 비참합니다. 만약 우리가 출입해서는 안 될 곳이 있다면 미리 닫아두거나 또는 촬영이 안 되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서 말을 해도 됩니다.그런데 어디를 들어가거나 뭘 잘못 찍으면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국가보안법 위반 어쩌고 하면서 처벌 각서를 쓰라는 것이 이 나라 애국자인 우리 군인 부모를 대하는 국방부의 예우인가요? 그렇다면 저는 이에 응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조차도 이런 처벌 각서를 써야 한다면 그런 아버지를 아들을 만나 이 부대의 잘못된 점을 어떻게 도와 달라고 말할 것이며 그런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 무슨 말을 할까요?그러니 이 각서를 끝까지 요구한다면, 나는 지금 당장 이 길로 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아들을 만나러 온 여기에서 처벌을 받겠다는 각서까지 쓰면서 내 아들을 만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 군인 부모는 예우받아야 할 이 나라의 애국자이지, 처벌받을 각서나 쓰는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이러한 제 말에 각서를 쓰고 있던 다른 부모들도 손을 멈추고 이내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이건 정말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따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당황한 부사관중 한 명이 낭패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인상을 쓰며 하급자에게 "야. 이거 치워"라고 한 후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아들 복무 중 군인 부모 예우하는 '군인 부모증' 제안그렇습니다. 저는 정말 이게 말이 되나 싶습니다. 왜 군인의 부모가 애국자가 아니라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으로 대우받아야 하는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애국자이지, 절대 죄인일 수 없습니다. 국가가 시키는 대로 낳고 키우고 가르쳐 군대에 아무 조건도 없이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군인 부모에 대한 국가적 예우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 잘못된 현상은 언제나 바뀔까요?
그래서 저는 제안합니다. 아들이 군인으로 복무하는 기간만이라도 그 군인의 부모를 예우하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아들이 입대한 후 집으로 보내주는 사복 소포 발송 때 대통령 명의로 "이제 님의 아들은 대한민국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입대 후 생사와 상관없이 모든 책임을 국가가 지겠습니다"라는 약속과 함께 복무 기간 중인 21개월간 유효한 '군인 부모증'을 발급하여 함께 보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군인 부모증을 제시하면 고궁이나 미술관 같은 곳을 복무 기간에만 그 군인 부모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정도의 혜택만이라도 주면 어떨까요? 징병제 폐지니 제대 시 몇천만 원을 준다는 식의 '실현 가능성도 없는' 공약 말고 이런 작지만 지킬 수 있는 명예라도 약속해 주면 어떨까 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여러분. 오늘 연극 <이등병의 엄마> 스토리 펀딩은 마지막입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이 스토리펀딩은 끝나지만 저는 제 꿈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72일간 정신없이 달려온 스토리펀딩. 기적 같은 후원을 보며 모든 분들께 경의와 감사를 전합니다. 여러분이 주신 마음으로 오는 5월 중순에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잘 만들어 귀하게 모실 것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연극으로만 끝나지 않는 에너지를 통해 이 나라 사병 인권을 바꿀 것을 또한 약속합니다. 대한민국 군인이 귀하게 대접받는 사회, 그리고 그 부모가 대한민국의 또 다른 애국자로 예우받는 나라.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이 아니라' 우리가 바로 이 나라 대한민국의 주인으로 예우받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그런 나라를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