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에 안 간 지 10년쯤 된 것 같다. 남들은 놀 겸 쉴 겸 찜질방을 찾는다는데, 나는 뭐가 좋은 건지, 그 기분을 잘 모른다. 사람이 많은 것도 싫고, 내 옷 아닌 옷을 입는 것도 거북하고, 바닥을 밟는 것도 찝찝하다.
어렸을 때도 목욕탕에 가는 걸 그렇게 싫어했다. 여름엔 요리조리 핑계를 대며 피해갈 수 있었지만, 겨울엔 어쩔 수 없다. 날씨가 추워지면 피부에 때가 허옇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내가 봐도 더러우니 안 갈 수가 없다.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잠시 후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일단 모른 척한다. '공포의 이태리 타올'을 가능하면 늦게 만나고 싶은 것이다. 결국 엄마에게 손목을 붙들려 한바탕 '국수 가락'을 뽑아내고 나면 그제야 마음을 놓는다. 겨울방학이 되면 주말마다 치르는 전쟁이었다.
이렇게 나를 괴롭힌 때가 유독 겨울에만 허옇게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 먼저 '때'의 정체를 알아봐야겠다.
때는 먼지 같은 물질이 땀과 피지와 섞여 피부의 각질층과 함께 벗겨져 나온 것이다. 피부는 바깥부분부터 표피-진피-피하조직으로 나뉜다. 표피는 물이나 이물질이 몸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우리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진피는 표피 아랫부분으로 이곳에 땀샘, 모낭, 피지선, 혈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피하조직은 지방층이다.
각질은 표피 중에서도 가장 바깥쪽으로 밀려난 딱딱한 피부조직을 말한다. 각질층의 피부세포엔 세포를 살아있게 하는 세포핵이 없다. 죽은 세포라는 뜻이다. 각질층은 자외선 등 다양한 외부 자극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고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몸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각질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우리 몸의 일부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아껴둬서는 안 된다. 각질이 모공을 막으면 뾰루지가 생기기 쉽다. 그래서 묵은 각질은 주기적으로 없애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지나치면 안 된다. 각질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수분 증발을 막는 것이다. 때를 밀고난 뒷몸이 건조해지는 것은 수분 증발을 막아줄 각질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각질이 사라지면 피부는 이를 보상하기 위해서 더 많은 각질을 만들어낸다. 허연 각질이 더 많이 일어나고, 각질층은 점점 더 두꺼워진다. 특히, 각질층 바로 아래에 있는 상피세포까지 밀어버리면 피부는 그야말로 엉망이 된다.
이런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선 때를 밀 때 '국수 가닥'의 색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각질층의 국수 가닥은 거무스름한 색을 띠는 반면, 상피세포층은 하얀색이다. 하얀 때가 나온다면 이미 선을 넘은 것이니 얼른 멈춰야 한다.
그리고 때를 민 후엔 반드시 보습제를 발라줘야 한다. 특히 겨울철엔 필수다. 겨울이 되면 피부는 체온이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땀구멍을 작게 만든다. 땀구멍이 좁아지면 수분(땀)이 적게 나오고, 표피는 더욱 건조해진다. 우리나라의 겨울철 대기 역시 건조하다. 건조의 제곱이다. 피부엔 재앙이다. 피부가 갈라지는 피부건조증이나 건성습진과 같은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목욕탕에서 엄마는 내 몸의 상피세포까지 싹 벗겨냈고, 따로 보습제를 챙겨 바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다행히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무너진 피부층이 회복되는 기간인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피부에게 주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일주일에 일요일이 두 번이었다면 얼마나 괴로웠을까. 내가 겪은 고통에 대해, 이제라도 엄마에게 복수를 해야겠다. 아, 엄마의 등을 마지막으로 밀어드린 게 언제였던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