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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겪은 노동 문화 이야기를 담은 글립니다. -기자말

 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국에서 얻어온 강박 관념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국에서 얻어온 강박 관념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 pixabay

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국에서 얻어온 강박 관념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하루빨리 경제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독일어 수업은 점심시간 이후 애매한 시간대인지라, 저녁 시간 일자리 아니면 오전 일찍 근무하는 아르바이트를 찾아야만 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나온 이들 사이에게 가장 자주 통용되는 말이 '맨땅에 헤딩'이다. 문화 차이는 물론 미흡한 언어 실력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자처하는 것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아니고서는 덤벼들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아온 잔고가 바닥을 보이기 전, 나 또한 '맨땅에 헤딩' 정신으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어학원과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한국에서처럼 화려해 보이는 이력서를 작성하고, 구인 사이트를 매일같이 드나들며 지인들에게 낮은 자세로 부탁해야 할까? 가족도 지인도 없는 외딴 곳에서는 과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일단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학생 신분인지라, 나와 같은 학생들이 자주 이용할 만한 곳을 알아두는 것은 굉장한 도움이 된다. 근처 대학을 드나들며 도서관, 학생 식당, 공중 화장실 등의 위치를 빠삭하게 알아두고는 해당 대학의 구인광고 게시판을 활용하면 아주 좋다. 해외 생활 초보가 구인사이트를 매끄럽게 사용하는 게 힘들고, 언어가 부족하다고 해서 한식당에 들어가면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종일 일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독일 미니잡(알바, 한 달 450유로 미만으로 근무 가능)에 도전하기로 한다. 언어 공부를 위해서도, 그리고 경험해보고팠던 독일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게 필요한 일이었다. 대학 광고 게시판에 나온 정보들을 노트 한가득 옮겨 적어와 이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으며, 독일어 실력은 어느 정도 되며, 근무 가능시간에 대해 상세히 적은 이메일 원본을 하나 만들어 두고서는 ctrl+C,V(복사, 붙여넣기) 작전으로 10개 정도의 메일을 보냈다.

하루 이틀 뒤 신기하게도 답장이 왔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안 된다, 시간이 맞지 않는다, 혹은 독일어가 좀 더 완벽해야 한다 이유로 정중한 거절의 답장을 보내주었다. 이렇게 신속한 답은 차라리 다음 결정에 도움이 된다. 그 와중 하나의 카페에서 긍정적이 답이 왔다.

"이번 주 목요일 11시 카페로 와보세요."

기뻤다! 내게도 드디어 기회가 열리는 것인가? 이력서 하나 없이 메일 두 문단 정도만 수정해서 보낸 게 다인데... 벌써? 이리 쉽게?

'잘할 수 있는데!'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목요일이 되었고, 나는 단정하게 차려입고서는 카페로 향했다. 물론 면접을 위해 카페 홈페이지는 물론, 고객들의 방명록을 살폈고 개장 시간 및 인기메뉴에 대해 익혀두었다. 그 날은 눈이 내렸다. 신발에 질척이는 바닥의 고인 물들이 나의 미래를 암시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그렇게도 연습했던 독일어는 머리속에서 하얗게 잊혔다. 마치 눈 내리는 창가의 서린 김이 닦이기라도 하듯이... 깨끗하게 말이다.

나는 들어서면 면접의 상황이 준비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카페는 손님 맞이로 분주했다. 나는 내 상황을 그 누구에게라도 설명해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는 그저 그 많은 고객 중의 한 사람이 될 뻔했으니 말이다. 알바생으로 보이는 어떤 이에게, 내가 메일을 썼었고 오늘 약속이 있어서 왔다고 이야기했다.

허나 결정적으로 나와 메일을 주고받았던 이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한 5분을 주섬주섬 매니저가 오가더니, 그제야 눈치 챈 듯 자리를 안내해준다. 아직 사장이 오지 않았으니 기다려 달라고 한다.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지만, 사실 내 영혼은 이미 집으로 귀가하였다. 첫 대화부터 실수를 저질렀으니... 또각또각 사장이 내 앞자리로 온다. 그리고 말을 건다.

"뭐라도 마실래요?"

멍해진 내 표정을 눈치챈 건지, 따스한 커피와 오밀조밀 어여쁘게 생긴 빵을 내 앞에 내어준다. 당황하기도 했지만 내 언어 수준을 눈치챘는지, 해당 역할은 어느 정도 언어 수준이 되어야 한다며 상세히 설명해준다. 나의 얼굴을 점점 더 붉어지고 어서 집에 가고 싶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울상이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언어가 부족한 것이 죄는 아닌데, 왜 이리 마음이 쪼그라드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배우면 잘할 수 있는데!' 마음속 소리 없는 아우성이 사장의 귀까지 닿진 않았다.

그렇게 터벅터벅 질척이는 마음과 몸을 안고서 독일에서의 첫 면접을 마친 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그 길은 왜 이리 멀고도 멀기만 한지. 당분간 그 카페 주변은 얼씬도 하지 못할 것 같다.

정말, 이래서 나 독일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커피와 빵이 왜 그리 목이 메이던지.. 잊지 못할 독일 빵
이 커피와 빵이 왜 그리 목이 메이던지.. 잊지 못할 독일 빵 ⓒ 진실애



#워킹홀리데이#독일#청년#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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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국문학+시민정치문화를 전공했고, 현재는 독일 중서부 뒤셀도르프에서 유아 청소년 교육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아동기관에서 재직중입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의 일에 관심이 많고, 더 나은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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