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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을 자궁에 품고 그 생명을 낳아 기를 것인지 아닌지 고민하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친정도, 시집도 찾지 않았다. 모텔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내 손에는 친구가 건네 준 구슬을 꿰어 만드는 벽걸이 재료가 있었다.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밤새 구슬을 꿰어 벽걸이를 만들었다. 오직 구슬 꿰기에만 집중했다. 구슬 색을 잘 맞춰 무늬를 엮어야 하기에 다른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벽걸이를 완성한 뒤 나는 일상의 자리로 돌아갔다.

유배당한 삶 같았던 결혼 생활 초기 나는 레이스 뜨기로 유폐된 시간들을 버텨냈다. 레이스 뜨기는 처음엔 형체를 드러내지 않지만 한 코 한 코 모여 마침내 완전한 형체를 드러낸다. 인간 삶의 여정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한 걸음씩 나가다 보면  마침내 삶의 전체 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나를 공부할 시간> 인문학이 제안하는 일곱 가지 삶의 길
<나를 공부할 시간> 인문학이 제안하는 일곱 가지 삶의 길 ⓒ 풀빛
한때 뜨개질은 내게 삶의 계단 어딘가에 멈춰 서 있던 발걸음을 다시 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동력이 됐다. 평생 정신질환과 우울증을 달고 살았던 버지니아 울프를 구원한 것도 뜨개질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나를 구원한 것은 뜨개질'이라고 했다. 그녀는 뜨개질을 하며 자신의 내면을 읽고 그 흐름을 그대로 써내려가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문체로 글을 썼다. 뜨개질이라는 단순한 행위에는 복잡한 생각의 가지를 쳐내는 마성이 있다.

"책 읽는다고 밥이 나오니, 돈이 나오니?"

당장 무슨 일이든 해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나를 답답해하며 지인들은 가끔 쓴 소리를 한다. 읽기는 구차한 삶에서 내가 유일하게 붙들고 있는 사치다. 그 사치마저 누리지 못할 상황이었을 때 나는 쓰기를 시작했다.

선택의 폭이 좁긴 했지만 감상평을 쓰면 책을 받아 볼 수 있는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악하기 그지없는 단발마의 비명 같은 끄적임이었지만 쓰기는 읽기와 함께 내게 숨구멍을 틔워주는 길이 됐다.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근원적 질문을 하게 된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삶의 의미를 찾아 구도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때때로 삶을 향방을 묻기 위해 정신적 방황의 길을 떠난다. 근본을 묻는 인문학이 회귀점인 이유일 것이다.

<나를 공부할 시간>(풀빛)은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 '나를 밖에서 바라보는 삶의 기술'을 소개하는 책이다. '인문학이 제안하는 일곱 가지 삶의 길'이라는 부제가 책의 성격을 말해준다.

여행하는 삶, 앎을 추구하는 삶, 꿈에 이끌린 삶, 변혁하는 삶, 유배당한 삶, 공감하는 삶, 읽고 쓰는 삶이라는 일곱 개의 장 속에 열네 명의 사람이 선택한 삶의 양식이 소개되어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사람들은 일곱 가지 삶의 길을 통해 개인의 삶의 지평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문을 활짝 연 사람들이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두 길은 여행과 읽고 쓰는 삶

사마천이 <사기>를 쓴 사실은 대부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그가 현장 답사 여행을 통해 <사기> 집필의 의지를 굳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를 집필해야 할 의무가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인 사마담이 아들인 사마천에게 물려준 무언의 유업이었다.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선택하며 끝까지 살아남아 역사에 길이 남는 역사서를 남겼다는 사실은 뭉클한 감동을 준다. 스스로의 삶을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고난과 수치까지 감내하며 견딘 것은 젊은 시절 여행에서 얻은 힘이라고 저자는 추측한다.

신분의 제약이 강하고 직무가 세습되던 고대 사회에서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일을 스스로 맡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이 부자의 능동성과 자발성 그리고 고난에도 꺾이지 않는 의지에 다시 감탄하게 된다.

'여행 역시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사마천에게 여행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임무를 위해 삶을 계획하고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일부였을 것이다. 그에게 여행은 운명을 택한 사람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삶의 설계의 일부였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는 단순히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운명을 부여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운명을 실현시킨 가장 중요한 자원 중 하나가 바로 여행이 아니었을까.' - 27쪽

또 내게 인상적으로 각인된 사람은 읽고 쓰는 삶을 위하여 부와 명예를 포기한 페트라르카다. 돈과 권력을 위해 학자의 양심을 저버린 대학 총장과 재벌과 법관과 종교인이 넘쳐나는 세상에 페트라르카가 선택한 삶은 어떤 의미로 읽힐까.

'페트라르카에게 성직의 선택은 경제적 여유와 안정된 지적 활동을 위한 결정이었다. 이성의 자유를 얻기 위해 세속적 욕망을 포기한 것이다. 페트라르카는 성직자가 된 뒤에도 교황청의 고위직을 맡으라는 제안을 거절했다. 오직 읽고 쓰기 위한 시간을 빼앗길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는 부와 명예 대신 읽고 쓸 시간을 택한다. 수도원 지하에서 발견한 로마 시대의 문헌과 편지들은 그에게 삶의 기쁨이자 목적 그 자체였다. 그는 광범위하게 고전 문학들을 연구했고, 주석을 달거나 판본을 대조했으며 위작 여부를 검토했다. 고전을 묵수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연구를 통해 고전 연구의 전통을 새롭게 수립했던 것이다. - 228-229쪽.

인간은 누구나 본질적인 삶의 문제를 만났을 때 인문학적 사유와 성찰을 통해 길을 찾아간다. 모든 사람이 위대한 사상가나 실천가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역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기는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 삶의 자리를 돌아보고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인문학적 삶을 살아갈 수는 있다.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이고 영혼의 가치가 물질적 삶의 가치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묻고 읽고 나를 쓰고 그리하여 나를 넘어서는 기술을 제안하려는 것입니다.' - 19쪽

내 자신에게 자문해 본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근본적인 물음을 안고 삶의 막다른 골목이나 터널 속에 혼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도 모르게 사유의 어느 길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것은 바로 인문학이 자기 자신을 묻고 자신의 현 자리를 읽어 내고 자기 삶의 발걸음을 다시 시작하는 이정표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인문학의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독자가 있다면 인문학을 통해 길을 묻고 자기 앞의 절망의 벽을 넘어서는 '지혜의 문'을 인문학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나를 공부할 시간/ 김선희 지음/ 풀빛/ 15,000



나를 공부할 시간 - 인문학이 제안하는 일곱 가지 삶의 길

김선희 지음, 풀빛(2016)


## 인문학# #삶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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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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