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것이 한국인의 근성이던가. 지난 카페 면접은 그새 묻어두고, 나는 또 몇 차례 이메일을 보냈다. 그 중 두 번째 답장은 어느 가정 집으로부터 왔다.
해당 알바는 가족들의 휴가 기간(오스턴 4일, 핑스턴 7일, 여름 휴가 14일) 동안 가족의 반려 동물을 돌보는 일이었다. 집에는 강아지, 고양이, 닭 그리고 말이 있다고 한다. 그 정도의 넉넉한 부지를 가지려면 아무래도 하이델베르크 근교가 아닐까 싶었다. 다가오는 부활절 연휴 및 휴가시 반려동물들의 먹이를 챙겨주고 산책을 시켜주면 되는 일이었다. 해당 근무를 위해 머무를 수 있는 단기 숙식도 제공된다고 했다. '그래! 독일어로 소통하지 않아도 되는 동물들이라면 더 수월할지도 몰라'하는 생각에 상세한 소개를 써서 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나댜라는 여인에게 다음 날 답장이 왔다. "우리는 우리 동물들과 잘 지낼 배려 깊고, 동물 좋아하고, 착하고 성실한 사람을 원해. 그리고 이건 정기적인 알바가 아니라, 휴가 때만 하는 것이야" 등등의 이야기를 상세히 적어주었다.
나는 성의있게 답장을 작성했다. 한국에서 토끼, 강아지, 앵무새랑도 살아보았고 동물을 참 좋아한다고 적었다. 차마 '월세를 벌기 위해서 알바를 지금 꼭 해야만 합니다'라고 적진 않았다. 설렘 반 떨림 반의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렸으나, 다음 날 그 다음 날이 되어도 답은 오지 않는다.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휴가를 이미 떠났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뽑았을까.' 다시 메일을 보내볼까 하루 이틀 망설이다 결국 이런 결론에 다다랐다. 신은 감당할 만한 시험만 주신다는데, 차마 동물들이 내 말을(독일어) 알아듣지 못하는 시련은 주지 않으시려고... 그랬던 것 일거야. 참고로 독일 강아지는 '바우와우' 짖고 고양이는 '미야오~'하고, 닭은 '키키리끼' 운다.
작은 고추가 맵지도 않나봐다음 메일의 답장은 문자 말투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어느 친절한 여인이었다. 연금 생활자로 지내는 여인은 장애인 아들을 두었는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아들의 생활 전반을 집에서 도와주고 대화 상대를 찾는 일이었다. 나는 언어 공부도 할겸, 장애인으로서 독일 사회에서 지내는 일상이 궁금하기도 해 해당 알바에 지원했다.
면접 시간을 잡고서 낯선 동네로 들어섰다. 여러 건물을 지나는 웬 비밀의 정원 같은 곳이 펼쳐지더니, 그 분의 집이 나왔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 벨을 눌렀다.
"Hallo, ich bin Jin" (안녕하세요? 진이에요.)문을 열고 반겨준 흰 단발머리의 그녀는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자신의 남편은 일 때문에 위층에 있다며, 양해를 구했고 아들은 재활센터에 갔다고 했다.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을 설명해준다. 이곳저곳을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는데, 나의 상상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의 모든 구조는 아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두 다리로 거동이 불편한 아들이 공간은 넘어들며 다닐 수 있도록 방마다 천장에 구름사다리 비슷한 철봉 구조물이 있었다. 욕실도 휠체어에서 바로 넘어 들어갈 수 있도록 단이 조정되어 있었고, 주방이며 개인 방이며 하나하나 세심하게 지어진 모양새가 애틋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하루 3회씩 기계를 이용해 운동해야 하는 것,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방에서 이것저것을 가지고 여가시간을 보내는 내용들을 설명해 주셨다.
사실 한국에서 복지센터를 통해 치매 어르신들이나, 간혹 장애 아이들과 캠프에 다녀본 것 외에는 나도 경험이 없었던지라 장애를 갖고 있는 성인에 대해 상상력이 부족했다. 주인 아주머니도 아마 나를 처음 보자마자, 언어도 언어지만 신체적으로 내가 아들을 돕기엔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분의 체구는 나에 비해 훨씬 크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 첫인상에도 불구하고, 아주머니는 집안 이모저모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보여주고, 일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되거든 와서 한국요리를 해달라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집안의 모양새 자체도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당장 알바를 하지 않는 나에게도 이런 따스한 말을 건네는 그녀에게서 이 사회를 본다.
우리나라에서 장애를 가진 구성원 한명만 있더라도, 그 본인도 그리고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가족 또한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사는지 쉽사리 상상해 볼 수 있다. 허나 그녀에게서 본 건 그런 안타까움과 급급함이 아니었다. 아들은 다른 모습 그대로 그리고 그 아들과 더불어 그 부모 또한 각자의 삶 더불어 가족의 삶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한 가정으로 전체를 판단할 수 없겠지만, 내가 만난 그 가족은 그러했다. 어쨌건 알바 자리는 얻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왠일인지 마음은 푸근했다. 어릴 적 반장 선거 때마다, 인용했던 구절이 "작은 고추가 맵다!"였는데 이럴 땐 이 작은 체구가 조금은 밉구나. 기회가 생긴다면 그 가족을 다시 만나,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한 호텔에서 연락이 왔다. 이름을 번역하자면 시청 호텔인데, 시청 앞에 있어서 그렇다. 시간될 때 들르라고 한다. 늘 그렇듯 단단히 준비를 하고 들어섰는데, 역시 서비스 맨, 활짝~웃는 매니저(?)분이 나를 반긴다. 그리고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묻는다.
'응??????????? 이건 뭐지...'"저 독일어 지금 공부하고 있는데, 잘 못해도 괜찮나요?""그 정도면 괜찮아요. 그렇게 많이 알 필요도 없구요." 싱글벙글 매니저의 그 한 마디가 마치 첫 키스의 종소리와도 같았다.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어요!"그렇게 나는 독일 노동시장에 들어서게 되었다.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