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소설, 만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음식들. 군침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 속 음식 레시피와 그에 얽힌 잡담을 전한다. 한 술 뜨는 순간 장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음식 이야기를 '씨네밥상'을 통해 풀어낼 예정이다. - 기자 말1년여간 사귄 여자친구 애니(다이안 키튼 분)와 헤어져 고독, 비참함, 고통, 불행뿐인 남자 앨비(우디 앨런 분)의 독백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왜 둘은 헤어져야 했을까. 20세기 가장 위대한 로맨스 영화로 꼽히는 <애니 홀>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앨비의 어린 시절과 옛 연애를 훑는다.
우주가 팽창할까 걱정하는 동시에 이미 여자를 알던, 놀이공원 범퍼카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6살 앨비의 어린시절에 문제가 있을까? 현실과 상상을 혼동하는 불안한 꼬마였고, 여전히 불안한 그이지만 그것이 실패한 연애의 답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실패한 두 번의 지난 결혼에 실마리가 있을까? 언제나 시니컬한 유대인 뉴요커 앨비, 하지만 이런 그의 특징 때문에 그의 지난 연애가, 이번 연애도 실패로 끝났는지 또한 명확하지 않다. 그 자리엔 의례 헤어지는 연인들의 어긋남이 있을 뿐.
"Hi, Hi, Hi" 수줍음을 담은 어색한 인사를 반복적으로 건네던 가수 지망생 애니와 이를 바라보던 스탭드업 코미디언이자 희극작가 앨비, 둘의 시작도 여느 커플처럼 풋풋했다. 서로에게 끌리지만, 아니 끌려서 모든 게 어색한 처음을 지나며 둘은 오픈카를 탄 채 도로를 달리고 와인을 나눠 마시고 대화를 하고 강변을 따라 걸으며 키스를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앨비는 그 유명한 대사로 사랑을 읊는다.
"Love is too weak a word for what I feel - I luuurve you, you know, I loave you, I luff you, two F's, yes."사랑이라는 말은 너무 부족해서, 사아아아아랑해, 솩랑해 뭐라도 강하게 말하고 싶은, 벅찬 마음이 밀려드는 그 순간. 둘은 곧 동거를 시작하고 논쟁을 벌이고 섹스를 하고, 섹스에 실패하기도 하며 그렇게 사랑하는 연인들의 과정을 겪는다. 이 일련의 장면들은 별 큰일이 아닌 듯 지나가지만 영화의 엔딩에서, 말 그대로 '필름처럼 지나가며' 리플레이 되는데 이때 관객들은 이 아무렇지 않은 일상들이 얼마나 가슴시리게 소중하고 아름다웠는지 뻔한 충격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함께 랍스터를 요리하는 장면, 앨비의 부엌에 애니가 살아있는 랍스터를 들여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장면은 연애에서 가장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갑각류를 끔찍하게 여겨 혼자라면 절대 살 생각조차 못하는 살아있는 랍스터가 내 주방을 기어다니는 일. 원래의 나라면 만질 엄두도 안하는 랍스터를 만지게 되는 것. 나와 다른 용기를 지닌 애인이 웃으며 종용하면 소리지르고 욕하면서도 그래도 한 번은 해볼 수 있는 일이 되는 것. 그것은 내 삶을 뒤바꾸진 않을지언정 그렇게 함께해나가며 내 삶의 영역을 넓혀간다.
랍스터 장면은 거기서 끝나지만, 실제에서라면 요리가 끝난 후에도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필자라면 랍스터를 먹으며 내가 갑각류를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언제 그렇게 됐는지, 어린 시절 살아있는 꽃게를 요리하느라 진땀 빼던 엄마의 모습을 얘기하다가 언젠가 일본에서 먹었던, 회를 떴는데도 살아 움직이던 장인의 오징어회를 묘사하며 결국 함께 어디로 여행을 가면 좋겠는지 등으로 대화가 흘러갔을 것이다.
결국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이제까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온전한 다른 이의 인생을 들여다 보는 것. 나의 것이 아니던 다른 이의 지난 시간과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예뻐하고 응원하며 함께 기대해 보는 것. 그래서 연애의 묘미는 완전히 같은 둘이 아닌, 어느 정도 다른 둘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모습에 있다.
물론 연애의 끝도 그 다름 때문에 찾아온다. 서로의 즐거움과 놀라움이 되던 다름이 결국 참을 수 없는 점이 될 때, 헤어짐은 찾아온다. 처음 애니는 앨비의 시니컬함과 비판적인 사고방식에 매력을 느꼈지만 그것이 점차 부정적이고 피곤한 일로 느껴지기 시작했으며 앨비는 가수가 되려는 애니의 꿈을 누구보다 응원했지만, 갈수록 주변의 남자들에게 질투를 느끼기 시작한다. 서로가 생각하는 미래도 조금씩 다르다. 결국 둘은 헤어지는 데 합의한다. 앨비의 부정적인 '뉴욕'에 질린 애니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햇살을 타고 떠도는 캘리포니아로 건너간다.
헤어짐에 동의했지만 이내 후회하는 것은 앨비. 새로운 여자를 만나 데이트도 해보지만 자기가 진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애니 뿐이라는 생각에 캘리포니아까지 날아가 차를 빌리고 그렇게 싫어하던 운전을 해 앨비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너는 죽어가는 도시 뉴욕 그 자체야"일 뿐. 길거리를 배회하며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괴로워하는 그에게 지나가는 할머니는 말한다.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단지 사랑이 식었을 뿐."한 사람이라는 바다가 물결쳐 나에게 닿을 때, 나의 물결과 섞여들 때, 그 두 개의 바다가 완전한 하나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서로에게 섞여들 수는 없는걸까? 왜 모든 사랑은 끝나기만 할까?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끝끝내 그 물결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앨비는 자신이 집필한 희극 무대에, 자신의 염원을 담는다. 앨비가 애니를 잡으러 갔던 그 캘리포니아 카페에서의 상황을 그대로 재연하지만, 끝은 애니가 앨비에게로 돌아오는 해피엔딩으로 바꾼다. 하지만 연극이 어찌됐건, 사랑은 끝이 났다. 후에 둘은 브루클린의 카페에서 재회해 함께 식사를 하며 웃고 떠들지만 그것은 단지 앨비에게 애니가 얼마나 멋진 여자였는지 깨닫는 일이 되었을 뿐이다. 아름다운 시간은 끝이 났다. 쓸쓸함과 허무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다시 헤어져야 했죠. 애니를 다시 만나 기뻐요. 얼마나 멋진 여자였는지 얼마나 재밌었는지 깨달았죠. 옛 농담이 생각나네요. 정신과 의사에게 말했죠. 형이 미쳤어요. 자기가 닭이라고 생각해요. 의사가 이랬죠. 형을 데려오지 그래? 내가 대답했어요. 그러면 계란을 못 낳잖아요. 남녀 관계도 이런 것 같아요. 비이성적이고 광적이며 부조리해요. 하지만 계속 사랑을 할 거예요. 우리에겐 계란이 필요하니까."그게 부조리해도, 허무해도, 미친짓이더라도 어쨌건 우리에겐 계란이 필요하다. 그 계란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앨비에게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란을 찾을 것이다. 기사를 준비하며 랍스터를 무서워하는 나는, 살아있는 랍스터 대신 냉동 랍스터 꼬리를 주문했다. 나에게는 랍스터를 용기있게 잡아줄 이가 필요하다. 계란도 필요하다. 누가 당신의 주방에 살아있는 랍스터를 풀어놓을 것인가?
[씨네밥상 레시피] 랍스터 스파이시토마토크림 링귀네(2인분 기준)
최근 국내에서도 랍스터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마트에서도 랍스터를 판다. 살아있는 랍스터를 사서 요리한다면 제일 좋겠지만 무섭다면 자숙 랍스터를 사도 좋다. 필자는 냉동 랍스터 테일(랍스터 꼬리)로 요리했다. 손질하기 까다로운 머리와 집게발 부분이 없어서 편하다. 랍스터 한 마리를 통째로 구했다면 입 부분 등을 제거하고 반으로 갈라 마늘버터를 바른 뒤 통으로 오븐에 굽기만 해도 그럴 듯하다.
하지만 오늘의 요리는 랍스터 파스타이기 때문에 랍스터 테일만으로도 만들 수 있다. 물론 요리에 필요한 랍스터 스톡을 만드는 과정에서 머리와 그 안의 내장이 들어가야 맛이 진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각자 여력이 되는 것으로 준비하자. 랍스터 육수로 맛을 낸 매운 토마토 크림소스와 통통한 랍스터 살이 어우러진 풍부한 맛이 일품이다. 애인과 랍스터 파스타를 나눠 먹으며 <애니 홀>을 본다면 완벽한 저녁이 될 것이다.
재료 : 랍스터 꼬리 3개(혹은 통랍스터 1마리), 링귀네 250g, 당근·양파 ½개씩, 샐러리 ½대, 다진마늘 ⅔큰술, 레드페퍼플레이크 1작은술(페퍼론치노 다진 것, 쥐똥고추로 대체 가능), 토마토퓨레 ¾컵, 화이트와인 ⅓컵, 생크림 4큰술, 버터 1큰술, 월계수잎·타임·파슬리·소금·후춧가루 약간씩, 올리브유 적당량
1. 랍스터꼬리를 흐르는 물에 헹군 뒤 김이 오른 찜기에 넣고 4분 가량 찐다. 통 랍스터라면 흐르는 물에 헹군 뒤 6분 가량 찐다. 찜기가 없다면 끓는 물에 삶아도 된다. 삶고 남은 물이나 찜기의 물 2컵을 버리지 말고 둔다. 2. 익힌 랍스터는 차가운 물에 헹궈 한 김 식힌다. 통 랍스터라면 입 등을 제거하고 머리와 집게발, 꼬리를 잘라 분리한다. 집게발은 칼등이나 고기망치 등으로 내려쳐 껍질을 부셔 안의 살을 꺼낸다. 꼬리 부분도 살과 껍질을 분리한다.3. 당근과 양파 샐러리는 모두 잘게 다진다4. 두꺼운 소스팬을 달궈 버터를 녹이고 랍스터 머리와 껍질을 넣어 볶는다. 머리부분에서 내장이 나오도록 두들겨 가며 볶는게 좋다. 랍스터꼬리만 있다면 꼬리껍질만 넣고 볶는다. 어느 정도 잘라 넣는게 좋다. 5. 1분 정도 볶아 랍스터껍질의 향이 올라오면 다진 당근과 샐러리, 타임, 월계수잎을 넣고 1분 가량 더 볶다가 ①의 물 2컵을 붓고 소금 약간을 더해 7~8분 가량 약한 불에서 뭉근히 끓인다. 육수의 양이 줄어들면 불을 끄고 망에 걸러 랍스터육수 1~1½컵을 만든다.6. 냄비에 물을 가득 붓고 끓여 소금을 넣고 링귀네면을 넣어 삶는다.7. 달군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양파와 다진마늘, 레드페퍼플레이크를 넣어 향을 내며 볶는다. 너무 센불에서 볶아 타지 않도록 주의한다. 7~8분 가량 볶아 양파가 충분히 부드러워지면 화이트와인을 부어 1분간 끓인다.8. 와인의 알코올기가 날라가면 토마토퓨레와 랍스터육수 1컵을 붓고 소금 약간을 넣어 잘 저어가며 약한불에서 3~4분간 끓인 뒤 생크림을 넣고 2분 가량 더 끓인다. 9. 어느 정도 소스 농도가 나면 모자란 간을 소금, 후춧가루로 더하고 랍스터 살을 넣어 한 번 뒤적인 뒤 삶은 링귀네를 넣고 소스가 면에 고루 묻도록 휘저어 불에서 내린다. 소스 농도가 너무 뻑뻑하면 남은 육수를 조금씩 더하며 섞는다. 접시에 보기 좋게 담는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윤희는 음식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다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푸드라이터. 음식에 관련된 콘텐츠라면 에세이부터 영화, 레서피 북까지 모든 것을 즐긴다. 영화를 보다가 호기심을 잡아끄는 음식이 나오면 바로 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