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왔어.(엄마는 이제 집에 가도 돼)"쌍둥이 남매 사이에서 곤히 잠든 친정엄마를 깨운 시각은 새벽 2시. 그냥 아침까지 주무시게 할 걸... 그 시각에 집에 돌아가니 잠이 안와 뒤척이다가 새벽에 선잠을 자고 다시 쌍둥이 남매 생각에, 출근하는 딸년 생각에 일어나서 오셨다는 친정엄마의 말씀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에 남네요. 그냥 주무시게 할 걸...
쌍둥이 남매가 다섯 살 이전일 때 3~4년은 매일이 전쟁이었어요. 12시 전에 집에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었고, 남편도 무척 바쁜 때라 친정엄마가 집에 돌아가시는 날이 매일 11시, 12시를 넘겼습니다. 아침 등원을 포함해 어린이집에서 다섯시에 돌아오는 쌍둥이 남매를 저희 부부가 퇴근할 때까지 돌봐주시는 친정엄마의 육아시간이 주당 40시간에 육박할 정도였으니까요.
친정엄마가 최대한 빨리 집에 돌아가실 수 있게 하고, 주말에는 어떻게든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원칙을 세웠지만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는 시각이 12시를 넘고, 주말까지 출근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주말에 아이들을 싸매고 남편이 시댁에 가서 도움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친정부모님이 2~3분 거리의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계시니 망정이지 이 거리가 더 멀었더라면 맞벌이 부부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을 겁니다.
늦은 시각 친정엄마를 돌려보낸 뒤 씻고 잠깐 잠을 청합니다. 다시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일어난 시각은 새벽 5시 반. 남편과는 주말이나 휴가가 아니면 일년 내내 주중 저녁식사를 먹기 힘들어 아침식사만큼은 꼭 함께 합니다. 5시 반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식사를 한 다음 남편은 6시 반에 출근을 합니다.
딸의 출근과 손주의 어린이집 등원을 돕기 위해 친정엄마가 저희 집으로 다시 출근하신 시각은 아침 7시. 저는 친정엄마가 오시고 나서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7시 15분쯤 출근을 했습니다.
예전보다 저희 부부의 근로 상황이 훨씬 나아졌지만 친정엄마는 아침 6시 50분에 저희 집으로 출근, 저녁 8~9시, 늦는 날은 10시에 집으로 돌아가십니다. 제 업무가 본점에서 지점으로 바뀐 최근에는 아침에 저희 집으로 오시는 시각이 15분쯤 빨라졌어요.
쌍둥이 남매의 초등 입학 즈음에 친정엄마가 아프셔서 혼자서 아이들을 돌볼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약 7~8개월간 돌봄 이모님을 고용해서 아침과 저녁에 대여섯 시간씩 아이들을 맡겼는데요. 정말 좋은 분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입학 이후 아이들을 챙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프신 와중에도 쌍둥이 남매의 일상을 챙기시던 친정엄마가 보다 못해 친정 아빠께 회사를 퇴직하고 쌍둥이 남매를 함께 돌보자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돌봄 이모님 고용비만큼을 딸에게 받으며 손주를 돌보는 것이 몇 년 안 남은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것보다 낫겠다고 말입니다.
40년간 직장생활을 하신 친정 아빠도 나이가 들면 손주들 손을 잡고 학교에 데려다줘야겠다고 생각하고 계셨다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저는 친정부모님이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덕분에 힘들다고 징징댈지언정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한편 저희 부모님의 생활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모든 것이 쌍둥이 남매 중심입니다.
아이들이 기관(유치원, 학교)에 가 있는 사이 모든 볼 일이 끝나야 합니다. 아침 9시부터 돌봄 교실이 끝나고 학원으로 이동하는 3시까지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의 전부입니다. 간단한 집안일을 하고, 간단한 운동만 하셔도 그 시간이 바쁩니다. 말이 간단하지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블랙홀이고, 부모님의 식사뿐만 아니라 쌍둥이 남매의 먹거리까지 신경 쓰고 계시거든요.
부모님이 집에만 있는 것을 막으려고 구민회관, 구청의 각종 복지 프로그램을 알아봐드렸습니다. 노래교실, 컴퓨터 교실 등 몇 개는 아이들이 기관에 가있는 사이에 배우실 수 있었어요. 또 도서관에도 다니실 수 있도록 대출 카드도 만들어드렸습니다. 친정 아빠는 노래교실을 열심히 다니시면서 연말에 모 병원에서 위문 공연도 하셨다고 합니다.
친구들과의 점심 약속도 최대한 앞당겨 잡고 3시 전에 집에 도착하기 위해 서두르십니다. 한참 얘기가 재미있을 때 일어나야 한다고 친정엄마가 많이 투덜대셨죠. 조금 먼 거리로 가는 여행을 통 못하시다가 친정 아빠와 함께 쌍둥이 남매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당일치기 여행을 준비하는 친정엄마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습니다.
부모님의 저녁 모임, 여행 모임도 저희 부부가 휴가를 낼 수 있도록 거의 보름에서 한 달 전부터 통보를 해두십니다. 저희 부부는 쌍둥이 남매의 학교 방문 일정과 친정부모님의 저녁 약속 혹은 여행 일정이 잡히면 1순위로 휴가를 냅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아이들을 돌볼 수 있으면 다행입니다.
쌍둥이 남매를 돌보시느라 친정엄마는 여러 번 몸살을 하셨습니다. 관절염이나 족저 근막염으로 아프셨을 뿐만 아니라 가족력이라고는 해도 몇 년 전에는 암 수술을 하시고 현재까지도 항암치료 중이십니다. 오랜 기간 직장생활로 병원 갈 시간을 못 내시던 친정 아빠는 임플란트 등의 치과 치료를 1년째 받으시며 몇 개월째 죽과 밥을 병행하고 계십니다.
친정부모님의 건강, 시간을 담보로 쌍둥이 남매가 커가고 있고, 제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안 좋습니다. 초등 1학년을 마치고 보니, 아이들이 부모님께 웃을 일을 많이 만들어드리고 잘 크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저희 부모님뿐만 아니라 저희 부부도 회사 일정까지 포함해 모든 생활이 아이들 중심입니다. 겨우 아이 둘을 키우면서 어른 넷이 매달려 끙끙대는 상황이네요.
시험관으로 처음에 세 개의 수정란이 착상됐는데, 선생님의 권유로 선택유산을 했던 사실이 있습니다. 그때는 임신된 사실이 너무 기뻤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라 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선택유산을 했는데, 선택유산이 뭔지 정확하게 알았더라면, 혹은 한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우겼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두 명의 아이를 키우는 일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아이가 셋이었다면 저는 직장생활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중요한지 직장이 중요한지 굳이 따지자면 말할 나위도 없이 아이가 중요하지만 이렇게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든 대한민국에서 아이 하나를 더 키우는 일은 함부로 감놔라 배놔라 참견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친정이나 시댁 부모님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기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오죽하면 교통이 좋은 곳(역세권)보다 자녀 양육을 도와줄 가족이 있는 곳(친세권)에 사는 것이 더 낫다는 부동산 단어가 등장할 정도일까요.
저출산 정책을 막는다며 선심성 정책이 난무하고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다시 최저 출산율을 기록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어지러운 정치 상황, 대선과 맞물려 실행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공약들을 언급하는 기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같이 모성만 강조하는 현실성 없는 정책에 저는 고개를 젓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아니라 부부가 함께 키우는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일단 야근과 주말 근무, 단체 카톡 등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조직문화가 변해야 합니다. 여성의 육아 휴직만 기간을 늘리고 강제할 것이 아니라 부부가 동시에 혹은 번갈아가며 육아 휴직을 강제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또 학원이 아니라 학교에서 좀 더 긴 시간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육아와 가사의 가치에 대한 인정이 필요합니다. 회사 일이 힘든 것은 맞지만 그에 못지않게 육아나 가사 역시 힘듭니다. 남자도 육아와 가사에 함께 혹은 혼자 참여하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하는 인식의 번화가 필요합니다.
좀더 현실성 있는, 진짜 맞벌이 부부와 아이들을 돕는 정책이 나올 때까지 저는 저 때문에, 저희 아이들 때문에 몇 년이나 퇴직을 앞당기신 친정 아빠의 몫까지 회사생활을 할 생각입니다. 꾸역꾸역 버텨내서 제 딸이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맞벌이를 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