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정치적 문제를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투표권을 준다면 이 사회는 붕괴될 겁니다." - 영화 <서프러제트> 中
작년 6월 극장가에는 1912년 영국의 평범한 여성 노동자가 자신의 존엄성을 찾기 위해 참정권 운동에 뛰어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가 상영되었다. 영화는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투표권이 목숨을 건 험난한 투쟁의 결과였다는 걸 잘 보여주었다.
비슷한 시기인 1908년 3월 8일, 미국에서는 1만 5천 명의 섬유여성노동자들이 폭압적인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항의하는 시위를 열고 "우리에게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남성에게만 부여했던 반쪽짜리 참정권을 의미했다. 이 시위가 세계여성의 날의 기원이다. 세계여성의 날은 올해로 109회를 맞이했다. 빵과 장미의 구호를 외친지 100년이 넘은 지금 한국 사회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한국여성민우회는 1987년도부터 매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한국여성들이 당면한 인권, 복지, 노동, 건강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차별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09년에는 빈곤과 폭력 없는 세상에 대해, 2010년에는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왜곡된 성문화와 가부장제에 대해 말하며 몸에 관한 자율성이 여성들의 권리임을 알리는 "여성의 임신·출산 및 몸에 대한 결정권"을 말했다. 2011년은 돌봄 노동 권리 찾기를, 2012년에는 남녀임금격차 해소와 비정규직 축소를 외쳤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는 '대한민국 출산지도'라는 이름으로 지역별 가임기 여성을 숫자로 표기하여 명시하는 등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 중단을 위한 세계적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지금, 국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은 모조리 무시하면서 생명권 존중이라는 미명하에 낙태죄라는 형법으로 여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여성의 몸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
당신이 반대하고 있는 건 누군가의 삶입니다"어떤 모욕을 받아도 저는 제가 꿋꿋이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내야만 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전 죄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고통의 원인을 찬찬히 쫓아가보면 제 뱃속 작은 세포가 아니라 세상의 도덕에 닿게 됩니다. 당신들이 반대하고 있는 건 비도덕 행위가 아닌 누군가의 삶입니다. 나의 삶이고 여기 모인, 그리고 다른 모두의 꿈과 웃음입니다."위 글은 작년 10월 29일(토)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종로 보신각에서 진행된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 <진짜 문제는 '낙태죄'다!>에서 용기를 내어 발언한 집회 참가자의 발언이다.
또한, 남녀임금격차는 OECD국가 중 2000년 이후 부터 남녀성별임금격차 부동의 1위라는 불명예를 차지하고 있고, 그 차이는 100:64로 더욱 벌어진 상황이다. 여성노동자 842만 명중 40.3%가 비정규직이다(
2016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지금 매주 광장을 나가고 있는 것처럼 나는 말하고 싶다. 여전히 여성의 삶은 차별과 맞닿아 있지만 100년 전 참정권 쟁취를 위해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때의 여성들처럼, 우리들은 여전히 싸워야하고 함께 연대해야 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올해도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여러 여성단체들과 시민들이 2017년 3월 4일(토) 보신각 인근과 광화문 광장에서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라는 슬로건으로 행진했다. 당일에는 제19대 대선주자에게 여성유권자의 목소리를 전하고 여성의 삶과 차별과 혐오에 대응하는 대안을 만들어가는 기념식을 가졌다. 더 많은 지지자들이 생기고, 함께하기를 바라며 영화 서프러제트의 대사로 글을 마무리한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끝까지 싸워요. 우리는 이길 거예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필자 바사님은 한국여성민우회 회원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