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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요즘만큼 헌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많았던 적은 없었다. 무너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일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다시 세우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헌법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근본임에도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던 헌법, 그 헌법을 국민들과 함께 읽어 보고자 한다. - 기자 말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범죄를 예측해서 예방하는 미래를 담았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범죄를 예측해서 예방하는 미래를 담았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2054년 워싱턴, 시민들은 최첨단 치안 시스템인 프리크라임(Pre-crime) 덕에 안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프리크라임 시스템은 범죄 발생 시각, 장소 범인 등을 사전에 예측한다. 이 정보를 통해 프리크라임 특수경찰은 범죄발생 전에 범인을 체포하여 범죄를 사전에 예방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2002년 작, SF영화인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내용이다. 영화는 결국 범죄의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며 예측만으로 사람을 가두는 것이 심각한 인권침해임을 깨닫고 체포되었던 모든 사람들을 풀어주면서 끝난다. 그런데 범죄를 사전에 예측하고 이를 통해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범행이 예측된다는 이유로 사람을 체포한다는 다소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SF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10년 미국의 구글(google)과 CIA는 실시간 인터넷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앞으로 발생할 일까지 분석할 수 있는 레코디드 퓨처스(Recorded Futures)란 회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웹 사이트, 블로그, SNS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여 사람과 조직, 행동, 사건들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언제, 어디서 특정 사건이 발생할지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프리크라임이나 레코디드 퓨처스 같은 일들이 이미 한국에서는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1년 4개월 동안 소년원에 수감되어야 했던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물건을 훔치거나 누군가를 때리지도 않았다. 단지 학교에 가지 않고 또래들끼리 무리를 지어 동네를 어슬렁거렸을 뿐이었다.

소년은 학교 가기가 싫었다. 경도의 지적장애 증상이 있는 어머니와 말도 잘 통하지 않았다. 집에 있기도 싫었던 소년은 아침에 책가방을 매고 나오면 하루 종일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자연스럽게 비슷한 친구들끼리 모이게 되었다.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수업 시간에 교복을 입고 동네를 어슬렁거리자 주민들은 학교에 민원을 넣었다.

잦은 결석과 주민들의 민원까지 이어지자 학교는 소년의 어머니를 학교로 불렀다. 담임선생님은 '통고'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소년이 조만간 큰 사고를 칠 것 같고 그 전에 통고를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통고가 무엇이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선생님은 판사님께 소년을 위한 적절한 처분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적절한 처분 중 소년원에 가야 하는 처분도 있다는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소년을 절대 통고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흥분한 어머니께 선생님은 소년원이 무조건 나쁘지는 않다고 했다. 기술도 배울 수 있고 그 곳에 다녀오면 다들 착해져서 나온다고 했다. 무엇보다 지금과 같이 방치되어 있다 사고를 치고 교도소에 가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어머니는 재판정에서 소년이 가능한 오랫동안 소년원에 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아들을 소년원에 보내려는 어머니의 행동은 소년의 가슴에 깊이 사무쳤다. 어머니와 학교 모두 소년원 송치를 원하자 판사는 장기결석 중인 소년에게 10호(2년 간 소년원 송치) 처분을 내렸다. 소년은 전주에 있는 소년원에 가야 했다. 다행히 모범적인 생활을 한 소년은 1년 4개월 만에 가퇴원(가석방)될 수 있었다.

'통고'라는 제도, 범죄 저지를 위험성만으로 청소년 감호 위탁 가능

소년법은 '통고'라는 제도를 두고 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이 큰 청소년들에게 특정한 처분을 할 수 있는 제도다. 소년법이 제시하고 있는 통고의 사유 중에는 "그의 성격이나 환경에 비추어 앞으로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할 우려가 있는 10세 이상인 소년"이라는 문구가 있다.

세부적으로 "1. 집단적으로 몰려다니며 주위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성벽(性癖)이 있는 것, 2.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하는 것, 3.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우거나 유해환경에 접하는 성벽이 있는 것"이라는 조건이 달려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또래들끼리 몰려다니거나 집을 나온 행위 또는 술집이나 노래방을 출입하는 행위만으로 청소년들은 통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청소년들의 가출이나 유흥업소 출입은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범법행위도 아니다. 그럼에도 청소년들은 이것만으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헌법 제12조 제1항은 신체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신체의 자유는 상당히 포괄적인 권리로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속당하지 않을 권리(신체의 자율성)도 포함한다. 제12조 제1항 후단의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과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은 국가권력에 의해 신체의 자유가 훼손되는 대표적 사례다.

 소년법엔 '통고'라는 제도가 있다. 통고된 청소년은 소년보호사건으로 처리되고 가정법원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
소년법엔 '통고'라는 제도가 있다. 통고된 청소년은 소년보호사건으로 처리되고 가정법원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 ⓒ 영화 '범죄소년'

통고된 청소년은 소년보호사건으로 처리되고 가정법원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 심판의 결과에 따라 1호부터 10호까지의 보호처분 중 하나가 내려진다. 1호는 보호자에게 청소년의 감호를 위탁하는 처분이다. 그러나 8~10호는 최장 2년까지 소년원에 송치되는 강도 높은 처분이다.

나머지 처분은 봉사활동이나 수강명령, 보호관찰 그리고 소년보호시설 등에 수용되는 처분이다. 어떠한 처분을 받던지 신체의 자유는 심각하게 침해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청소년을 법정에 세우고 소년원에 가두기도 하는 SF영화에나 나올법한 통고제도가 대한민국 헌법 하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은 소년법에 의한 보호처분을 사법적 처분보다는 복지적·행정적 처분의 성격으로 본다. 보호처분은 처벌이 아닌 청소년의 복지를 위한 행정처분이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처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대 2년까지 소년원에 송치될 수 있는 보호처분을 과연 청소년이 복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신체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는 방법으로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복지에 대한 몰이해이며 사법권의 심각한 권위주의적 발상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통고를 통해 보호처분을 받기까지의 과정에서 청소년이 의견을 피력할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소년법 상 통고권자는 보호자, 학교·사회복리시설·보호관찰소의 장이다. 즉 부모나 교장선생님의 판단만으로 통고될 수 있는 것이다.

통고를 통해 가정법원 소년부에 송치된 청소년은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를 받지 않는다. 소년부는 수사기록도 없이 부모나 학교의 의견 그리고 보호관찰소의 생활조사 등의 자료에만 의지해 소년을 판단한다. 대부분 가정법원 소년부의 심리는 단 한번 열리게 되는데 그 시간도 10분 내외로 매우 짧다. 통고된 청소년은 이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의 주장을 피력해야 하는 것이다.

신체의 자유는 대국가적 기본권의 성격이 강하다. 신체의 자유가 침해되는 경우는 공권력에 의한 강압적 또는 불법적인 수사, 연행, 감금 등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신체의 자유가 침해되는 대상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다. 청소년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약자 중 하나다. 그렇기에 범죄의 예측만으로 처벌을 하는, 성인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자유#통고#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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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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