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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아침 여덟 시부터 저녁 아홉 시까지 콘크리트 벽돌 공장에서 일한다는 잠비아 출신 결혼이주민 윌슨(가명)이었다. 한동안 얼굴 보기 힘들었던 그는 "Long Time No See(롱타임노시), 밥 먹었어"라고 인사하며 설탕 가득한 도넛 상자를 쑥 내밀었다. 나이로 치면 연필 한 묶음도 더 되는 차이인데도 반말하는 모습이 싫지 않았다. 그에겐 사람을 미소 짓게 하는 매력이 있다.

윌슨은 한국에 온 지 수년이 지났지만, 특별히 기분 좋을 때와 상대방이 영어를 전혀 못 할 때를 빼고는 한국어로 말하는 법이 없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기에, 도넛까지 사 오면서 한국어로 인사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이혼 후 한국인 아내의 반대로 만날 수 없었던 딸아이들을 만날 희망에 부풀어 있기 때문이었다.

윌슨은 지난 몇 년간 스스로 홈리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왔다. 자칭 홈리스라는 그는 따뜻한 방을 놔두고 쉼터 베란다에 의자를 길게 모아놓고 자는 걸 좋아했다. 아무리 말려도 고집이 여간 아니었다.

여름이야 그렇다 쳐도 추운 겨울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쉼터를 나가라는 엄포를 놓아야 했다. 그러면 마지못해 실내로 들어가지만, 부엌과 방 사이에 난방도 되지 않아 거실이라고 할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 이불을 편다. 남들이 오가는 거실에 신발도 벗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난감할 때가 종종 있었다.

왜 그토록 자신을 학대하려 하는지 물을 때마다 그는 홈리스는 따뜻한 방에 잘 자격이 없다고 답했다. 그에 의하면 홈리스는 단순히 집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홈리스는 찾아갈 가족이 없는 사람이다.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뜻했다.

"일을 마치고 따뜻한 인사로 맞이하는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홈리스예요. 저에게는 그런 가족이 없어요. 아내는 아무런 말도 없이 몰래 이사했고, 아이들을 못 만나게 해요. 제가 아이들을 키울 수 없는 거예요. 아이들과 놀아주고, 책을 읽어주고, 기도하고, 함께 학교에 가고, 맛있는 걸 사 줄 수도 없어요.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요."

윌슨은 찾아갈 가족이 없고, 아이들을 만날 수 없는 자신을 심하게 자책했다. 스스로 홈리스라 부르며 한동안 술에 절어 살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내는 주말마다 아이들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토요일마다 정장을 차려입고 아이들을 보기 위해 준비했지만, 매번 허탕만 쳐야 했다.

그래서 입에 술을 대기 시작했다. 한국에 와서 배운 술이었다. 소주를 마시기도 하고,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취할 때까지 마셨지만, 아이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점점 또렷해지며 가슴이 미어질 뿐이었다. 쉼터 도움으로 한동안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았지만 쉽게 술을 끊지 못했다. 살아갈 소망이 끊긴 그에게 술 말고는 위안이 되는 게 없어 보였다.

난방이 되는 방을 놔 두고 거실에서 자는 윌슨
난방이 되는 방을 놔 두고거실에서 자는 윌슨 ⓒ 고기복

홈리스라는 말 이제는 더는 하지 않아도 된다

작년 가을에는 딸아이들을 내놓으라고 엉뚱한 파출소에서 난리를 피우기도 했었다. 파출소는 쉼터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는데, 왜 그곳까지 갔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분명한 것은 밤 9시 넘은 시간에 술에 취해 딸아이들 이름을 대며 불러오라고 생떼를 부렸다는 사실이다. 경찰들은 운동복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흑인이 술에 취해 누군가의 이름을 대며 무턱대고 찾아오라는 말에 난감해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에나 나올 법한 일이 시골 파출소에서 일어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일로 다신 쉼터에서 술 마시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야 했다. 그랬던 그가 쉼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어렵게 마음을 다잡았다. 딸아이들을 만나겠다는 의지로 술을 끊었다. 그는 반드시 아이들을 만날 거라며 술을 끊고 일을 시작했다. 콘크리트 벽돌 공장에서 시멘트를 섞는 일이었다. 아침 여덟 시부터 저녁 아홉 시까지 휴일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아 일은 고됐다. 그래도 언젠가 귀국하면 벽돌 공장은 좋은 사업 아이템이 될 거라는 생각에 기술을 배우기로 했다.

미국에서 호텔경영을 공부했던 윌슨은 고향에 있을 때도 육체노동을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개발 붐이 일고 있는 고국에서 건설에 꼭 필요한 벽돌 제작 방법을 배워둔다면 소규모라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일하던 그에게 재판을 도와주겠다는 변호사가 나타났다. 재판은 순조롭게 끝났다. 법원은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면접교섭권을 허락했다.

"격주 토요일 정오부터 일요일 다섯 시까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은 지금 부산에 있다. 하지만 정확히 아이들이 부산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모른다. 이혼한 아내는 변호사를 통해 만남 장소를 알려준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의 갑작스러운 이사와 이혼 통보로 아이들을 못 본 지 2년도 더 된 윌슨은 이미 세상을 다 얻은 듯하다. 아이들이 얼마나 컸는지 벌써 마음은 부산에 가 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부산으로 이사해야 해요? 공장에서 일하면서 왔다 갔다 하면 사장님이 허락할까요? 아이들 만날 수 없다면 회사 그만둘 거예요. 그래도 기술은 꼭 배워 두고 싶어요. 어떡하죠?"

윌슨은 사장이 허락하면 격주로 내려가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의치 않으면 회사를 그만둘 생각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있는 부산으로 이사해야 할지, 격주로 부산에 가는 길을 택할지 윌슨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이제 그는 이제 홈리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 않아도 된다.

안전화 재판 때문에 일을 가지 않은 윌슨이 안전화를 빨아 널었다.
안전화재판 때문에 일을 가지 않은 윌슨이 안전화를 빨아 널었다. ⓒ 고기복



#잠비아#이혼#결혼이민#면접교섭권#알콜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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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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