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택시기사와 멱살잡이 한 시민 A씨, 경찰의 동행요구를 거부하다2017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 시민기자 발대식이 있던 날, 행사 프로그램 중 인권감수성교육을 받았다. 평소 생각하지 못한 사례교육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강사는 권위주의 시대에 길들여진 시민기자들의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라며 다음과 같은 상황제시와 질문으로 교육을 시작했다.
상황 : "시민 A씨는 친구와 저녁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 택시를 탔다. 그날따라 도로는 막히고 '빨간 신호'에 자주 걸렸다. 조급해진 A씨는 자기도 모르게 담배를 빼어 물었다. 운전기사의 제지 속에서 몇 모금의 담배를 빠는 동안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운전기사는 '재수 없다'며 투덜거렸다. 그 소리를 듣고 A씨 역시 '시간도 못 맞추고 택시비만 많이 나왔다'며 택시비를 집어 던지듯이 지불하고 내리면서 택시 문짝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 급기야 두 사람은 말다툼을 넘어 멱살잡이까지 했다. 이를 목격한 시민 B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약속장소로 가고 있는 A씨에게 경찰서까지 동행을 요구했다."
"이 경우 A씨는 경찰의 연행요구를 거부할 수 있을까?"라는 강사의 질문에 '거부할 수 있다'고 정답을 대답한 사람은 39명 중 두 명뿐이었다. 그 두 명도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시민 A씨가 경찰서 대신 친구들 모임에 갈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 헌법 12조는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요건을 두 가지만 적시하고 있다. 하나는 적법하게 영장이 발부된 경우, 또 하나는 '현행범'인 경우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짓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경우이다.
앞의 상황에서 긴급 출동한 경찰이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을 리 없고, 범죄를 실행 중인 현행범도 아니며, 3년 이상의 형에 처할 정도의 죄가 아니기 때문에 A씨는 경찰의 동행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의동행을 요구할 경우 경찰은 반드시 피동행인에게 동행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고지해야 한다.
이처럼 신체의 자유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헌법에서까지 중시하고 있다는 적절한 사례라 머리 속에 각인된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중대장 시절 신체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했던 일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2. 1989년 육군 병장, 부당하게 신체를 구속당하다
독립중대장으로 근무하던 1999년 어느 날, 중대본부에서 서무계 임무를 수행하던 김관수(가명) 병장이 휴가복귀를 하면서 몰래 술을 들여왔고 그것을 저녁점호가 끝난 후 몇몇 병장들과 나누어 마신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 밤 당직사관은 음주사실을 보고하면서 영창을 보내야 한다고 건의했다.
서무계는 부대의 활동사항을 부대일지에 빠짐없이 기록하는 일과 중대의 예산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주 임무인, 중대병사들 중에서는 매우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자리였고 김관수는 명문대학 출신에 업무수행도 잘 하는 장래가 촉망되는 병사였다. 나는 한참을 고민을 했고 아침 간부회의 시간에 "김관수는 영창을 보내야 하지만 사령부 영창이 아니라 중대영창에 보내라!"고 지시했고 중대영창 운영지침을 동시에 하달했다.
물론 정상적이라면 중대 징계위원회를 열어 양정기준에 부합한 징계를 결정하고 영창으로 결정되면 당연히 사령부 헌병대에 구금해야 했다. 그 당시 중대에는 영창으로 활용할 만한 시설이 있을 리 없었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생각한 것은 연병장 가운데 흰 석회석 가루로 직경 2m 남짓의 원을 그어놓고 그 안에서 대기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라는 것이었다.
선임 소대장으로 하여금 전 중대원을 대상으로 재발방지를 위해 김관수의 비행과 중대장의 처분에 대해 교육을 하게 했다. 그렇게 5일 동안 김관수는 2m에 불과한 창살 없는 감옥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연병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뭇 시선을 받으며 술 한 잔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전역신고를 하는 날 김관수는 "군 생활 중 그 때가 가장 수치스러웠고 자신의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육체적으로도 가장 힘들었으며 차라리 사령부 영창에 보내줬으면 더욱 감사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쓸쓸히 중대를 떠났다.
돌이켜보면 중대영창 운영을 통해 중대의 기강도 유지하고 중대원, 특히 병사들의 입장을 생각해 주는 중대장이란 이미지를 심으려 했던 나의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특히 인권 감수성교육을 받고 난 후 그때 나의 행동은 자칫 범법행위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흠칫 놀라기까지 하였다.
먼저 중대 영창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김관수와 일반병사의 차별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장래가 촉망되는 중대 서무계가 아닌 일반 병사가 몰래 음주를 했더라도 중대 영창을 생각했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일반 병사가 몰래 음주를 했더라면 고민하거나 주저함 없이 징계위원회를 소집하여 사령부 영창에 수감했을 것이다
더불어 내가 착각한 것은 나의 조치에 대해 김관수가 고마워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한마디로 당사자의 입장이나 생각을 고려하지 않고 내 멋대로 남의 마음을 읽으려 했다는 것이다. 전역신고 당시 김관수가 이야기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그 처분을 내가 부하를 위해 고민하고 선처했던 일 중의 하나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정적인 나의 잘못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징계위원회라는 규정된 절차를 무시했고,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제한 할 수 없는 신체의 자유를 나의 임의적 판단으로 제한해버린 것이다.
헌법 가치의 절반 이상이 인권보장에 있고 헌법에 명시된 여러 자유 중에서도 신체의 자유가 모든 기본권 보장의 전제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로부터 한참 뒤에 헌법공부를 하면서 알 수 있었다.
지금도 군의 많은 지휘관들이 임무를 완수한다거나 지휘권을 확립한다는 명분에 집착하여 부대원들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부 지휘관들은 장병의 인권 신장과 전투력 향상은 상충하기 때문에 인권은 임무를 완수한 이후에나 생각해 볼 수 있는 부수적인 일쯤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귀하게 대우받은 사람이 귀하게 행동한다'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재량권을 행사할 때도 장병들의 인권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군대가 헌법에 의해 존재한다면 장병 개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 또한 군의 지휘관들에게 부여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헌법적 의무라는 인식을 갖는 것 역시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