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세상은 방사능 재해를 잊어버리게 되는 것일까요. 이대로 세상은 방사능에 의한 건강 피해가 없었다고 하게 될까요. 이대로 세상은 방사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부모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해 버리게 되는 걸까요."후쿠시마현 고리야마(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60km 떨어진 지역. 원전 사고 직후 현내 도시 중 방사능 수치가 가장 높게 측정된 곳)에서 살고 있는 노구치 도기코씨는 중학생 아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이렇게 외쳤다. 그는 사고가 발생한지 6년이 지난 지금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가 사람들에게 잊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적' 방사능과 끝까지 싸워 갈 것을 다짐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피해자 지원과 탈원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20일 도쿄도 시부야구의 요요기 공원에서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만 1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생명을 지켜라! 후쿠시마를 잊지 않는다. 사요나라 원전 전국집회'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집회에는 후쿠시마 거주자, 사고 이후 타 지역으로 피난해 있는 피난자, 피폭노동자, 어린이들의 갑상선암을 지원하는 단체 관계자 등이 연사로 단상에 올랐다.
현재 사고 후 6년이 지났음에도 후쿠시마 원전은 폐로 작업에 돌입하지도 못하고 있다. 더불어 피해자들의 고통 역시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는 사고 수습과 배상보다는 지역부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양상이다. 연사들은 이러한 정부의 태도를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사고 후 고향을 뒤로하고 가나가와현으로 피난해 있는 피난자 마쓰모토 노리코씨는 "아직도 방사능 선량이 높은데도 정부는 위험한 그 곳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라며 정부의 귀환정책을 비판하고, 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과 정부가 책임질 것을 촉구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현장에서 일을 한 후 백혈병에 걸려 투병생활을 해 온 기타규슈의 남성(익명)은 "도쿄전력은 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취급을 해 왔다"라고 호소했다. 그는 앞으로 도쿄지방법원에 제소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정부의 책임을 추궁해 가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원전 사고의 실제 피해자들의 연설이 이어질 때마다 청중석에선 박수와 구호가 쏟아져 나왔다.
지난 11일 열린 동일본대지진추도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추도사에서 처음으로 '원전사고'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당시 총리의 추도사는 원전사고에 의한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보다 '지역부흥'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재해에 강하고, 강인한 국가 만들기'를 추진할 것을 약속했다. 이에 대해, 후쿠시마현 우치보리 마사오 지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현민으로서 위화감을 느낀다. 후쿠시마현은 세계에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가혹한 원전사고로 심대한 피해를 받고 있다. 그것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라고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정부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원전사고 피해자들의 고통에 등을 돌린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이다.
이날 집회를 마친 집회 참가자들은 두 코스로 나뉘어 행진을 시작했다. "방사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자!", "모든 원전 지금당장 폐로!", "원전 재가동 철회!" 등을 외치는 시민들의 외침이 휴일 오후 사람들로 북적이는 하라주쿠 거리를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