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원이든 듣겠다고
축 늘어진 귓불은 어깨까지 닿은 듯
-이상옥의 디카시 <불상 측천무후>벼르고 벼르던 낙양에 갔다. 지난 금요일(24일) 오전 10시경 정주 동역에서 고속철을 타고 낙양 용문역에 도착하는데, 약 30분 정도 걸렸다. 돌아올 때는 일반 기차로 약 2시간 소요되었던 걸 감안하면 역시 중국의 고속철은 대단한 속도다.
낙양용문역서 용문석굴로 택시로 갈까, 하다가 버스를 타기로 했다. 용문석굴로 가는 버스를 한참 기다려도 오지를 않아 먼저 시내로 들어가서 낙양 구경을 좀 하고 용문석굴을 찾기로 하고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중국식 발음으로 뤄양이지만 낙양이라는 지명은 한국인들에게 친숙하다. 우리 민요 성주풀이에도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로 시작한다. 낙양성 십리 밖 북망산에 묻힌 영웅호걸들을 일컫는다.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13조 고도 낙양낙양은 13조 고도(十三朝古都), 즉 13개 왕조의 도읍이 됐을 만큼 왕조가 명멸하며 영웅호걸들이 활거하다 북망산에 묻혔다. '뤄양엔 소가 누울 자리도 없다'는 속설도 있다. 소주(蘇州)와 항주(杭州)에 살다가 북망산에 묻히는 것이 꿈이라고 할 만큼 중국에서 북망산은 명당으로 여겨진다.
낙양의 지가(紙價)를 올린다는 말도 있다. 중국 진나라 좌사라고 하는 시인이 쓴 <삼도부>라는 책이 얼마나 인기를 얻었던지, 낙양에 종이가 귀해서 종이 값이 폭등했다는 말이다. 후세에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낙양의 지가 오른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용문석굴 가는 길목의 낙양시내에 내렸다. 시내에서 먼저 눈에 뜨는 것이 관림이라고 쓴 표지다. 낙양 교외에 관림이 있다는 정보는 알고 있었던 터에 표지를 보니 반가웠다. 관우의 수급이 묻힌 곳을 '림(林)'이라고 한다. 림은 황제의 묘인 능보다 높은 존칭으로 공자의 공림과 함께 관림(關林)은 중국에서 "이림(二林)"으로 불린다.
낙양에는 관림을 비롯하여 중국 최초의 사찰인 백마사(白馬寺), 선종의 본산 소림사(少林寺) 등 유명하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용문석굴이다. 이번에는 용문석굴을 투어하기로 했다.
용문석굴은 이하(伊河)강변 좌우로 용문산과 향산으로 나누어져 약 1.5㎞에 걸친 암벽에 조성돼 1300여개의 동굴과 10만여 개의 석불이 불교 석불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수많은 석굴과 불상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역시 석굴 최대 규모의 봉선사(奉先寺) 동굴 중앙 노사방(盧舍邦) 불상으로 높이 17m이며 중국 유일의 여황제인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모델로 알려져 있다. 측전무후는 당나라 고종의 황후로 고종이 오랫동안 중병이 들자 전권을 장악하여 국호를 주(周)로 바꾸고 스스로 중국 최초의 여황제가 되었다.
용문석굴은 암벽을 벌집처럼 구멍을 뚫어 새긴 크고 작은 석불들이 하나하나 모두 빼어난 예술품이라니 과연 유네스코가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 만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해 3월 1일부터 중국 정주에 거주하며 디카시로 중국 대륙의 풍물들을 포착하고, 그 느낌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산문으로 풀어낸다.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감흥)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공감을 나누는 것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