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안되고 전기만 간신히 들어오는 뽀꼬뽀꼬 마을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100원만 줘요, 학교 짓게'라는 문구를 봤다. 한국인 여행자가 남미 볼리비아 오지에 현지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고 있었다. 기업 후원은 절대 받지 않고, 개인 후원은 최대 만 원 밖에 안 받으며 주로 100원짜리 후원을 받았다. 이 기상천외한 일을 벌이고 있는 여행자의 이름은 '한영준'.
영준씨는 학교를 짓겠다고 선포한 지 1년 6개월 만에 학교를 설립했다. 설립 후 학교 운영도 무리 없이 이루어져 현지인 선생님을 고용하여 업무를 전임하는 단계까지 이뤘다. 현재 학교에 다니는 유치원, 초등학생, 중고생은 모두 60~70명 정도이다.
영준씨의 이력을 살펴보니 있는 집 자식도 아니고, 명문대 출신도 아니었다. 지방대를 휴학하고 떠난 해외여행으로 남다른 인생을 살게 됐다. 대기업 돈 한 푼 없이 소액 개인 후원금만 모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운 영준씨가 근사해 보였다. 인생을 돈에 저당 잡히지 않는 사람일 것 같았다.
영준씨가 세운 학교는 인터넷은 안되고 전기만 간신히 들어오는 오지 뽀꼬뽀꼬 마을에 있다. 뽀꼬뽀꼬에 가기 위해 근처 도시 수크레에 있는 영준씨 집에 들렀다. 영준씨의 첫인상은 무척 강렬했다.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해 미안하다고 하자 영준씨는 "아, 그래요. 너무 일찍 도착하면 민폐죠. 저 싸가지 없는 거 아시죠?"라며 웃었다.
언뜻 들으면 기분이 상할 수 있지만, 예상치 못한 영준씨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영준 씨는 솔직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말랐지만 근육질 몸, 노란색 브릿지가 들어간 머리, 눈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에너지 역시 영준씨가 개성 있는 사람임을 알려줬다.
영준씨는 스리랑카, 과테말라 등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며 DSLR 카메라를 사려고 모은 돈과 여행자금을 털어 현지에서 만난 빈민 가족에게 집을 지어줬다. 그 후 본격적으로 공정 여행가의 길에 들어섰다.
영준씨는 뽀꼬뽀꼬에서 단순히 학교만 짓고 운영하는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 대표로 시청을 방문해 마을에 전기도 놔주고, 학교에 오지 못하는 시각장애 아동까지 가정방문해 간식을 챙겨주고 마사지를 해줬다. 영준씨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던 동기는 뭐였을까.
"유명해지고 싶었어요. 6개월만 있다가 떠나려고 했어요. 좋은 일 해서 여자한테 인기도 얻고 싶었고요. 유명해져서 번 돈으로 여행하려고 했어요. 제가 지금 하는 말 거짓말 같죠? 근데 진짜예요. 집 짓고 학교 짓고 나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걸 보고 난 후 나눔에 대한 진정성이 생겼죠. 지금도 이런 일하는 가장 큰 동기는 아내의 응원이에요. 아내가 없었으면 지금의 결과도 없었어요."'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니 마음이 따뜻해져요'라는 식의 전형적인 답변을 예상했다. 그런데 유명세와 인기가 최초 동기라니. 그런 게 동기가 되어 산골 오지에 학교를 짓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학교 짓다가 2번쯤 영양결핍으로 쓰러지기도 했어요. 근데 전 그런 일도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해요. 일종의 정신승리죠."영준씨는 돈에 인생을 저당 잡히지 않았다
영준씨는 보통사람들과는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사람이었다. 고생을 고생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시선, 적당한 유명세와 인기를 즐기고 싶은 욕망에 솔직한 성격이 영준씨의 인생살이 비법이었다. 부부의 행복이 먼저 채워져 흘러넘쳐야 남에게도 나눌 수 있다고 했다.
NGO 일을 하는 사람 중 돈에 쪼들리는 사람을 많이 봤는데 영준씨도 돈 걱정하며 사는지 궁금했다. 여행 초반에 영준씨도 돈 걱정하는 시기를 거쳤다. 아르바이트와 장사도 하고, 여자 친구들이 준 용돈으로 살았다. 시간은 지나고 영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늘어남과 동시에 자신감도 쌓였다.
"전 이제 영어, 한국어, 스페인어를 해요. 무역하건, 장사하건 잘할 수 있죠. 시간이 지날수록 능력치는 늘어나요. 이제 돈 걱정 안 해요. 한국에 한 번 가면 강연 요청이 셀 수 없이 들어오죠. 아직도 여행하며 산 물건 파는 보따리 장사하면서 생활비를 벌어요. 일단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공을 던지는 거예요. 좋아하는 일 하면 돈하고 사람은 알아서 따라와요. 하고 싶은 일 하다 보면 어떻게든 살아져요."영준씨는 돈에 인생을 저당 잡히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자신감을 가지고 일단 저질렀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5년 동안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다. 처음에는 재미있던 사업이 점차 돈이 목적이 되었고, 수익이 떨어지면 불면증에 시달렸다. 삶을 정상적으로 이어 나가기 힘들었다. 나는 돈이 주는 공포 앞에 무기력했기에 영준씨의 돈을 대하는 쿨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부러웠다.
영준 씨는 이제 제법 유명한 여행가가 되었다. 가식 없는 태도 때문에 사람들의 오해도 사고 안티들도 있다. 안티들은 주로 영준씨가 고급 사륜 구동 차를 몬다, 비싼 카메라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걸 트집을 잡는다. 나도 영준씨의 집에 장식장 가득한 고급 카메라들을 보고 놀랐다.
"NGO 일하는 사람 중에 좋은 일 해도 괜찮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요. 그런 사람들 결국 힘들어서 많이 그만 둬요. 좋은 일 하면서 괜찮게 사는 거 중요해요. 내가 재미있어야 일을 지속할 수 있죠.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월급 넉넉하게 줘요. 곧 볼리비아 떠나 다른 나라에 병원 지을 계획이에요. 부지 선정할 때 가능하면 서핑 포인트 가까운데 하려고 해요. 병원 지으며 틈나는 대로 서핑도 하고 몸매자랑도 하고 싶거든요."여행하며 영준씨를 꼭 만나고 싶었다. 어떻게 여행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특별한 삶을 지속하는지 궁금했다. 비영리단체 활동가 중에는 월급도 적고, 몸이 고생해도 좋은 일 하니 헌신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일 하다가 결국 번아웃돼서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다. '좋은 일 하면서 괜찮게 사는 거 중요해요'라는 영준 씨의 말이 내 궁금증에 대한 답이었다. 영준씨는 NGO 일을 계속하려면 타인에 대한 끝없는 헌신보다 취미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향유가 먼저라는걸 강조했다.
영준 씨의 넘치는 자신감, 돈에 대한 쿨한 태도를 나도 닮고 싶다. 돈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기 개성대로 사는 인생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집 장만하기, 건물주 되기 같은 세상 기준 따라가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여행이든 나누는 삶이든 스스로가 진정 원하는 대로 시간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영준씨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사람이기를, 나누는 삶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