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애인종합복지관에 그림 배우러 간다
요즘 지방자치제는 말 그대로 사람이 살기 좋은 여건을 갖추기 위해 지자체장이 갖은 노력을 다 하는 것 같다. 더욱이 문화생활에 한해서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게 없고 못할 게 없을 정도다. 서울에 살 때도 느꼈었지만 이곳 장성으로 귀촌을 하고 나서는 혜택이 더 크게 느껴진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서울에서는 문화센터에서 수업을 들으려면 3개월 단위로 수강증을 끊어야 된다. 그러니까 1개월만 수업을 듣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3개월의 수업료를 내야만 1개월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따라서 수강료 역시 3개월분을 내야 된다. 중도에 그만두면 나머지 분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무척 번거로운 일이다.
그런데 이곳 장성에서는 한 달에 많게는 3만원, 적게는 출입을 할 때마다 1천 원씩 낸다. 만약에 헬스클럽을 가고 싶으면 갈 때만 1천 원짜리 표를 뽑으면 된다. 표 뽑는 것도 자동화된 기계(무인)에서 양심껏 뽑으면 된다. 20여 종목 모두가 1천원이다. 이용하는데 시간제한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곳도 꽤 많다.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군청에서 하는 프로그램 중에 선별적으로 하는 것이 있고, 도서관이나 장애인 복지관에서 하는 것도 있다. 재능기부를 하는 강사는 군청으로부터 소액의 봉사료 정도만 받는 반면, 배우는 사람들은 무료다. 당차게 수업료를 받는 강사는 생업형인 것 같다.
나는 4월부터 장성 장애인 종합복지관으로 그림을 배우러 간다. 수업료는 무료다. 무료라고 해서 그림을 가르치는 강사가 엉터리거나 성의 없이 가르치거나 하지 않는다. 강사는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선생님으로서 퇴직 후 낙향하여 재능기부를 하시는 분이다.
일반적으로 장애인 복지관이라고 하면 장애인들만 혜택을 받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본 기자도 그렇게 알았었는데 아니었다. 장애인은 물론이고 비장애인들까지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첫 수업을 하는 날 수강생들을 둘러보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데 어울렸다. 그럼에도 공부하는 분위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기자의 바로 앞에 20대로 보이는 장애인 두 사람이 앉았다. 그들에게는 그림 그리는데 필요한 모든 도구를 복지관에서 무료로 지급하고 있었다.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지나고 복지관 관장이 인사차 강의실에 들어 왔다. 부족한 것은 없는 지, 불편한 것은 없는 지 둘러보고 나가는 이대원 관장을 따라 나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서 곧바로 인터뷰 질문지를 작성하여 e메일을 보냈다. 복지관에서 시간을 조율하여 인터뷰에 응하겠노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 장애인 종합복지관에서 비장애인들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는지요?"어차피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비장애인들이 함께 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성군민이라면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자체가 사람 사는 냄새 아니겠습니까."
교통사고로 인해 지체장애인 숫자 점점 늘고 있어
장성군 장애인 종합복지관은 2016년 4월에 개관했다. 초대 관장으로 이대원 관장이 부임을 했고 전체 직원 17명 중에 2명이 장애인이다. 복지관을 이용하는 장애인은 하루에 60~70명이다. 복지관은 주간에만 이용이 가능하며 지자체(장성군)에서 운영을 한다.
복지관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주요 업무는 지적장애인으로서 혼자 집에 있을 수 없는 장애인을 오전 아홉시부터 오후6시까지 돌봐 주는 일이다.
지적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들은 복지관에 있는 낮 동안에는 각종 재활훈련을 받게 된다.
지적장애인 재활훈련으로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재활과 감수성 발달을 위한 음악재활, 미술재활이 있다. 지체장애인들을 위한 재활훈련은 운동재활로 체력단련을 시켜서 신체 발달을 돕고 있다.
지적장애인과 지체장애인들이 함께 받는 치료나 훈련으로는 심리치료와 손을 많이 쓰는 작업을 통한 직업훈련이 있다.
지금까지의 인터뷰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는 도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연한 질문인 줄 알면서 질문을 했던 기자는 당연하지 않은 대답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관장님 우리나라의 지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의 비율이 어떻게 되나요? 반반쯤 되나요?""아니요, 지체장애인이 훨씬 많지요.""아니 왜요? 뜻밖인데요.""지체장애인의 수가 훨씬 많은 이유는 교통사고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통사고 후 완치되지 않은 환자는 지체장애인이 된다는 얘기지요. 문명의 발달로 인한 후천성 장애인이 많이 생겨서 최근에 지체장애인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예요.""아 그렇군요. 그럼 자동차 사고로 인한 지체장애인 숫자는 얼마나 되며, 우리나라의 전체 장애인 숫자는 얼마나 되나요?""지체장애인 숫자의 50%가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인이에요. 지적, 지체 다 합해서 등록된 장애인만 전체 국민의 9% 정도입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어요. 어린 자식이 장애인 경우 점차 나아지리라는 기대 때문에 등록을 안 하는 경우도 있고, 채면 때문에 등록을 안 하는 경우도 있지요."이대원 관장의 이야기는 계속 됐다. 나머지 지체장애인 50%는 시각과 청각, 그 외의 장애인이라고 했다. 장애인에는 등급이 있는데 최근에는 장애인들이 등급을 없애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단다. 그 이유는, '사람에게 등급을 먹인다는 게 기분이 안 좋아서'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절로 수긍이 돼 고개가 끄덕여졌다. 장애인 복지관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장애인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재활훈련을 시키는 것이 또 하나의 목적이기도 하단다. 홀로서기를 하도록 훈련을 받는다고 해서 일반 병증처럼 금방 좋아지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재활치료를 하면 그 효과가 눈으로 나타나기도 한단다.
그 중에서도 직원들 모두가 보람을 느꼈던 일 한 가지를 얘기했다.
"국가에서 장애인 고용 안정자금을 마련하여 기업에 장려금으로 지급을 하고 있습니다. 안정자금을 받는 기업에서는 채용 인원에 차이는 있지만 장애인을 채용해야 됩니다. 우리 복지관에서도 직업훈련을 받은 후에 제법 많은 장애인이 취업을 했지요.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받는 급여는 다르지만 모두들 자기가 일해서 돈을 번다는 것에 매우 흡족해하고 있습니다.""월급에 차이가 있으면 불평을 하지 않나요?""각자의 성과를 측정한 후에 공개해서 금액이 다른 이유를 납득할 수 있게 설명을 하기 때문에 불평은 없습니다. 금액 확인은 장애인 본인과 직원이 동행해서 하고, 은행도 같이 가서 본인이 직접 입금을 하도록 해요. 그리고 돈의 소중함과 저축의 기쁨을 알게 하고 또 마트에 가서 돈 쓰는 훈련도 하고요, 교통표지판 보는 법을 가르쳐서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교통지도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훈련도 중요하지만 신체적인 훈련도 경제활동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한 가지 일화를 더 들려주었다.
"장애인들은 재활훈련을 한다고는 하지만 운동이 많이 부족해요. 그래서 집이 걸을만한 거리에 있는데도 자동차만 타고 걷지 않으려는 아이와 함께 제가 그 아이의 집까지 걸었지요.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혼자 잘 걸어 다니더라고요. 얼마나 대견한지! 그 아이가 올 무렵 밖에서 기다렸다가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었더니 그 아이도 무척 좋아하며 혼자 걸어왔다고 자랑을 하더라고요. 그때의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장애인 위한 도로개선 필요, 누구나 앞으로 혜택 입을 수 있어
또, 장애인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 것 같으면 일부러 기다렸다가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고민 상담을 유도한다고 했다. 생일파티 때는 같이 축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점심식사를 같이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한단다.
기자도 같이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어 보았다. 식사는 매우 깔끔하고 맛있었다. 밥값은 장애인은 1000원, 비장애인은 2000원이었다. 이 값은 순수한 음식 재료값만 산출해서 정한 것이란다. 인건비나 여타 음식, 이를테면 생일상 차림이나 가끔씩 특별식으로 하는 떡 같은 것은 기부금으로 한단다. 기부는 시골 특성상 돈도 있지만 쌀이나 곡식을 기부하는 주민들도 있다. 그 덕분에 묵은 쌀로 떡을 해서 먹이기도 한단다.
또한 복지관을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들은 찾아가서 도와준다며, 일부 사람들의 오해로 인해 안타까웠던 일 하나를 들려주었다.
"한 때 장애인들에게 야쿠르트를 돌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까짓 야쿠르트 한 병이냐'라고 했지만, 실상은 야쿠르트를 가져다줌으로써 그 장애인의 상태를 살피는 겁니다.""아하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군요. 앞으로 복지관의 발전을 위한 계획이 더 있는지요?""예 교육프로그램을 더 늘릴 생각입니다. 탁구나 케이트볼장 같은 것을 만들어서 신체 단련에 도움이 되게 하고 난타나 우쿨렐레반을 만들어서 장애인들의 정서함양에 도움이 되게 하고 싶습니다. 지금 수채화 반에는 그림에 소질이 있는 장애인을 선발해서 그림을 그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나중에 장성을 대표할만한 화가가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따라서 운동이나 음악에 소질이 있는 인물이 나와서 자신은 물론 다른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참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장애인 비장애인 구별 없이 다 함께 부대끼고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된다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복지관 관장 입장에서 욕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교통약자(장애인, 임산부, 노인 등)들이 활동하기에 편한 도로개선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교통약자가 됩니다. 그렇기에 지하나 상황이 나쁜 길에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것을 '얼마 안 되는 장애인을 위해 너무 많은 예산을 들인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장성 장애인 종합복지관 관장! 그는 오늘은 누구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까를 기대하며 출근할 때가 많단다. 구내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가면 몇몇 장애인은 일부러 관장 앞에 와서 밥을 먹기도 하고, 급여가 들어간 통장을 가지고 와서 자랑도 한단다. 그럴 때면 그들 못지않게 자신도 기쁘다는 이대원 관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