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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화 봄꽃 영춘화가 화들짝 피었다. 개나리와 비슷해 보이지만 개나리보다 훨씬 일찍 피어난다.
영춘화봄꽃 영춘화가 화들짝 피었다. 개나리와 비슷해 보이지만 개나리보다 훨씬 일찍 피어난다. ⓒ 김민수

봄다운 봄이 왔다. 이제는 봄을 한껏 실감해도 미안하지 않을 것 같다. 1075일 만에 저 깊은 바다에서 올라온 세월호와 마침내 박근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이제 정말 봄을 마음껏 느껴도 될 것 같다.

봄이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은 아니지만, 봄은 오기 시작하면 기어이 온다. 부드럽게 아이의 걸음으로 오는 봄을 막을 장사도 없고, 우리 곁에 왔는가 싶을 때 쏜살같이 달아나는 봄을 잡을 이도 없다.

산수유 산수유가 작은 별꽃들을 하나 둘 피어올리고 있다.
산수유산수유가 작은 별꽃들을 하나 둘 피어올리고 있다. ⓒ 김민수

할미꽃 흔하지 않는 할미꽃도 행운처럼 서울하늘 아래에서 만났다.
할미꽃흔하지 않는 할미꽃도 행운처럼 서울하늘 아래에서 만났다. ⓒ 김민수

흔하게 볼 수 있는 산수유와 흔하지 않는 할미꽃을 한 날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구례 산수유 마을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는 소식과 동강 바위 틈에 동강할미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마음만 그곳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그런데, 꿩 대신 닭이라고 서울 하늘에서 별처럼 터지는 산수유와 동강할미의 사촌격인 할미꽃을 만나니 '닭'도 그런대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닭', 그래 아무튼 오늘은 봄날치고는 쌀쌀하니 저녘엔 '닭'이라도 한 마리 푹 과서 상에 올리고 닭이나 씹어야겠다.

진달래 진달래 피어나는 가지에 직박구리 한 마리 찾아왔다.
진달래진달래 피어나는 가지에 직박구리 한 마리 찾아왔다. ⓒ 김민수

홍매화 봄바람에 꽃비를 흩날리는 홍매화가 가는 봄날을 아쉬워하는 듯하다.
홍매화봄바람에 꽃비를 흩날리는 홍매화가 가는 봄날을 아쉬워하는 듯하다. ⓒ 김민수

진달래 피어난 가지에 직박구리 앉고, 이런저런 까닭으로 담지는 못했지만, 홈매화의 꽃비도 내렸고, 매화나무에 찾아온 동박새까지 만났다.

오랜 기다림과 인내와 자기가 상상하는 그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준비해야 할 세세한 것들이 조금은 귀찮아졌다. 이제는 꼭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마음에 담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게 더 좋아서가 아니라 이젠 조금은 열정대로만 몸이 움직여 주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능수매화 능수버들처럼 가지가 축축 처진 능수매화에 갓 피어난 꽃은 아기의 볼처럼 싱그럽다.
능수매화능수버들처럼 가지가 축축 처진 능수매화에 갓 피어난 꽃은 아기의 볼처럼 싱그럽다. ⓒ 김민수

목련 목련이 피어난다, 목련 뒤에는 아련하게 매화가 피어있다.
목련목련이 피어난다, 목련 뒤에는 아련하게 매화가 피어있다. ⓒ 김민수

봄의 색깔이 이렇게 다양할까 싶다. 백목련도 그냥 '백'만 있는 것이 아니요, 매화도 '청매'가 있는가 하면, 가지가 능수버들처럼 축축 처진 능수매화도 있다.

갓 피어난 봄꽃은 참으로 귀엽다. 다 피어나지 않아서 예쁜, 다 피어난 것이 가지지 못한 '갓' 혹은 '어린'이라는 것을 소유한 것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본다.

진달래와 산수유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난 동산, 곁에 산수유도 함께 피었다.
진달래와 산수유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난 동산, 곁에 산수유도 함께 피었다. ⓒ 김민수

매화와 산수유 꽃망울을 막 터뜨리는 매화와 그를 기다리며 반겨주는 산수유가 함께 어우러졌다.
매화와 산수유꽃망울을 막 터뜨리는 매화와 그를 기다리며 반겨주는 산수유가 함께 어우러졌다. ⓒ 김민수

꽃들은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기다려주며 피어나는 것이리라. 먼저 피어난 꽃이 '어서 피어나라!'고 응원하고, 나중에 피어난 꽃들은 '이제 곧 피어날 터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줘!' 화답하고, 마침내 현실이 되어 조우하는 것이 그들이 세상이 아닐까?

산수유와 매화, 진달래와 산수유. 그렇게 서로 다른 그들은 그 다름으로 차별을 만들지 않고 어우러져 하나의 봄을 그린다.

영춘화의 낙화 꽃 피어나는 날, 이미 낙화한 영춘화의 꽃무덤
영춘화의 낙화꽃 피어나는 날, 이미 낙화한 영춘화의 꽃무덤 ⓒ 김민수

이렇게 피어나는 봄꽃을 만난 날, 영춘화의 꽃무덤을 본다. 올해 보지는 못했지만 붉은 동백도 그렇게 꽃무덤을 만들며 내년을 기약했을 것이다. 붉은 동백의 꽃무덤만 생각했는데, 노란 영춘화의 꽃무덤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그랬다. 붉은 동백만 꽃무덤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들만큼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영춘화의 꽃무덤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내 화사하진 않아도 목련도 그리할 것이며, 피어나는 꽃들은 모두 그렇게 낙화함으로 또 다른 여정을 향해갈 것이다.

봄을 시샘하는 날씨였지만, 진짜 봄을 비로소 만났고, 비로소 봄맛을 느낀 하루였다. 어떤 겨울도 봄을 이길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에 소개된 꽃들은 송파구(오금공원)와 강남구(봉은사)에서 3월 27일 담은 사진들입니다.



#영춘화#할미꽃#능수매화#홍매화#꽃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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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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