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씨를 심으면 사과나무가 자라서 우리가 아는 부사, 아오리, 홍로, 홍옥 같은 사과가 열릴까? 사과씨를 심으면 나무가 되긴 하는데 사과나무가 아니라 알이 조그마하고 나무가 아주 높이 자라는 능금나무가 된다. 고염나무를 떠올려 보면 된다.
그럼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과씨를 심어 키운 나무(실생대목), 또는 사과나무를 작게 키우는 대목(왜성대목)에 부사, 아오리, 홍로 같은 사과나무 가지 또는 잎눈을 합체 시켜야 한다(이를 접 붙이기라 한다).
2년 전에 개원한 사과밭 사과나무는 내가 조합원이자 기획이사로 있는 단양사과협동조합원들과 직접 접을 붙여서 키워 심었다. 품종은 맛과 식감이 뛰어난 감홍이다.
감홍 묘목이 죽은 자리에 여름사과인 아오리를 심고 와 빈 밭에 홍옥을 심으려고 접을 붙였다. 이렇게 접을 붙이면 비로소 사과묘목이 된다. 1년 키워야 1년생 묘목이다. 묘목밭에서 1년을 키워서 사과밭에 옮겨 심는다.
사과농민들은 대부분 묘목을 묘목상에게 산다. 좋다는 묘목은 값이 비싸니 사과밭 개원할 때 묘목값이 많이 든다. 돈을 들인 만큼 묘목이 잘 크면 좋지만 농민들은 묘목 피해를 많이 본다. 품종이 엉뚱한 경우도 있고, 묘목이 죽는 경우도 많다. 묘목상들의 농간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사과재배기술을 가르치는 정부 기관이나 이름이 난 사과 선도 농민들은 묘목 피해를 줄이기 위해 묘목을 직접 기르는 것을 권장한다. 자가묘목을 기르면 품종과 묘목 품질이 확실하다. 묘목값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농민이 묘목 기술 주권을 쥘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농민들이 묘목을 직접 기르기 보다 사서 심는 걸 더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일나무 묘목을 기르는 걸 과일농사꾼들이 농사로 여기지 않고 묘목업자들에게 돈을 퍼주니 모를 일이다.
하긴 요즘 농사꾼은 씨앗과 모종, 묘목을 돈 주고 산다. 거름도 돈 주고 사고 수세식 화장실 쓰면서 오줌과 똥 다 버린다. 농기구, 농기계, 오만가지 농자재도 다 돈 주고 산다. 산업화 전에 농사꾼은 쇠로 만든 농기구 외에는 사서 쓰지 않았다. 거의 완벽하게 스스로 해결했다. 어쩌다 농사꾼이 이런 노예 신세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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