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벚꽃,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가! _ 일본 방랑시인, 바쇼(芭蕉)
이 글을 쓰고 있던 새벽, 세월호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뉴스가 타전되고 있다. 거의 3년을 어두운 바닷속에 가라앉았던 그 배가 올라왔다. 미수습자 가족들을 비롯해 모든 피해자 가족들이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인가?
수면 위로 떠오른 녹슨 권력의 사체팽목항, 동거차도, 그리고 안산에서 모두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어디 가족들뿐이겠는가? 많은 국민이 복잡한 심경으로 세월호가 인양되는 아침을 맞았을 터이다. "박근혜가 내려가자 세월호가 올라왔다"는 댓글에 '좋아요'가 무수히 붙었다.
새벽의 여명과 조명을 함께 받으며 인양되는 세월호는 마치 성경에 나온다는 거대 바다괴물, 리바이어던*의 사체처럼 보였다. 녹슨 권력, 그 괴물의 사체가 뱃속에 진실을 품고, 그 무수한 희생자들의 영혼을 품고 바다 위로 솟아오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네가 낚시로 리바이어던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어찌 그것이 너와 계약을 맺고 너는 그를 영원히 종으로 삼겠느냐/…그것은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이니라" _구약성서 욥기 41장
한국인들에게 '국가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계기가 세월호 참사였다면, 일본인들에게 국가와 사회를 낯설고 통제 불가능한 바다괴물처럼 여겨지게 만든 사건은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였다.
사람이 만들어낸 활화산,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에 소재하는 도쿄전력 제1핵발전소의 1, 2, 3호기에서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트리플 멜트다운(노심융용)과 수소폭발이 일어난 이래,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아직 근본적인 수습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2020년까지 사고수습을 장담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고 핵발전소로부터 매일 150톤가량의 오염된 지하수가 원자로 지하로 유출되고 있다. 유출되지 않고 철제탱크에 모아두고 있는 방사능 오염수만 2017년 3월 현재 90만 톤을 넘어선 상태다.
최근에는 원자로 내부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개발했던 로봇(전갈모양으로 생겨서 스콜피언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던)에 내장했던 측정 장비들이 원자로 내부에서 고장 나는 일이 발생해 당국을 더 당혹스럽게 했다.
원격 조정된 카메라를 통해 확인한 방사능 수치는 무려 시간당 650시버트 수준으로 1분 안에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한 수치였다고 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사람이 만들어낸 활화산,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이다.
절망적인 상황의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는 일본의 파워엘리트들이 자랑해마지 않던 '세계 일류의 기술력(Japan as No1)' 신화의 폐허 위에 서 있다. 핵기술은 일본의 지배층에게는 단순한 초고가 일류기술 혹은 에너지 공급원 이상의 복잡한 의미와 복선을 지니고 있다.
전범국으로서 핵무기 보유에 대해 미국의 통제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기업들은 핵 기술만큼은 세계최고 수준으로 연마해 왔다. 일본정부는 핵 발전을 통해서 생산된 플루토늄을 핵 발전을 위한 재처리라는 명분을 내세워 48.7톤이나 보유하고 있다. 핵무기 6000기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히타치나 미쓰비시 중공업 같은 대표적인 핵발전 관련 기업들은 공업국가 일본의 대표기업일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전범기업이기도 하다. 이들은 요격미사일의 핵심기술인 미사일방어체계의 핵심기술도 보유하고 있어 미국 국방성조차 이들의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제팬 애즈 넘버 원(Japan as No1)'의 신화와 재난자본주의그래서 핵발전의 중단 혹은 재개는 뜨거운 정치이슈다. 이미 한동안 일본국민들은 핵 에너지 없이 지내왔기에 에너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 머물렀던 지난해 10월 당시, 아사히신문이 주관한 여론조사 결과, 아베정권의 핵발전소 재가동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이 57%로 찬성(29%)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핵 발전 지속의 논리는 '성장 동력 유지', '투자비용 회수'라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물신화되어 집요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모든 핵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했다. 하지만 2012년 핵발전소 재가동 방침 발표 이후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가 마련한 새로운 안전기준을 통과한 핵발전소부터 단계적으로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2015년 8월과 10월에 가고시마(鹿兒島)현 큐슈 전력 센다이(川內)핵발전소 1,2호기, 2016년 1월과 2월에 후쿠이(福井)현 소재 간사이 전력 다카하마(高浜) 핵발전소 3,4호기, 8월 에이메(愛媛)현 소재 시코쿠(四國)전력 이타카 핵발전소 3호기가 재가동에 들어갔다.
이 중 다카하마 핵발전소는 지방법원이 주민들의 재가동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가동을 중단했지만, 지난달 28일 오사카고등법원이 원전 재개를 허용했다. 반면, 지난해 9월 21일 일본정부는 고속증식로 '몬주'를 폐로하기로 결정했다. 플루토늄을 연료로 사용하고 금속 나트륨을 냉각재로 쓰는 몬주는 사고 위험이 일반 원자로에 견줘 너무 높아 '악마의 원자로'라 불렸다. 일본 정부는 몬주의 폐로를 결정했지만 새로운 고속증식로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48.7톤에 달하는 플루토늄을 보유해야 할 이유도 함께 살아남았다.
일본 체류 중 만난 미쓰비시의 젊은 엘리트 직원은 '핵발전산업이 일본의 성장동력'이므로 정부가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력회사들은 전력회사대로 핵발전소를 다시 가동하지 않으면 국내 전기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국민들을 겁주고 있는 중이다.
정부와 업체들은 핵발전소 재가동을 통해 투자한 비용을 회수해야 핵발전회사 도산으로 인한 추가 비용투입을 막을 수 있다는 조삼모사식 주장도 곁들인다. 탈핵단체들은 먼저 도쿄전력과 같은 특혜적 핵발전 업체의 보유자산이 얼마인지 공개하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대통령의 7시간'만큼이나 핵 발전 업체들의 자산공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성역에 속한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사고회로에서는 핵발전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인도적-사회적 비용이 과소평가되거나 생략되기 일쑤다. 핵발전 사고가 발생시킨 사회적 비용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10만 명 내외의 피난민과 그들이 전국에서 직면하고 있는 배제와 차별도 포함된다. 활화산처럼 연일 방사능 오염수를 뿜어내고 있는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야기할 비용은 계측할 수조차 없는 현실이다.
골리앗에 맞서는 늙은 목동
꺼지지 않은 인공지옥의 언저리에 사람이 다시 살기 힘든 곳, 이른바 '영구피난지역(No Return Zone)'이 있다. 발전소 반경 20km 이내 지역에서 바람의 영향으로 요행히 피폭을 피한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여기에 속한다. 후쿠시마에 머물던 2016년 10월 초, 당시 나를 안내하던 현지 활동가 에미코-토시유키 부부가 그곳에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사고 직후부터 여전히 거기 사는 사람이 있는데, 그를 만나고 싶다면 안내하겠다는 거였다. 피폭이 걱정되면 안 가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온 이유가 바로 거기 가기 위한 것이었기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에미코-토시유키 부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로부터 14km 거리에 있는 나미에 마치(浪江町)의 어느 목장으로 나를 안내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을 통과하는 느낌은 야릇했다. 과거 논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너른 황무지를 가로질러 차를 몰았다. 쓰나미 피해 이후 부서진 건물과 어선들의 잔해로 뒤덮였던 해안가의 난장판은 어느 정도 정리된 후였다.
멀리 제염을 위해 걷어낸 흙을 담은 검은 플라스틱 백의 행렬이 산성처럼 이어지고, 듬성듬성 자리 잡은 폐허가 된 집들이 가을 늦은 오후의 뉘엿한 햇살을 받아 긴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작은 구릉지대로 들어서는가 싶더니 검둥소들이 노니는 언덕 위에 차가 멈추어 섰다.
"소들을 죽일 수도, 떠날 수도 없었어요""마스크 필요하시죠?" 에미코가 권한다. "당신은요?" 그가 빙긋이 웃으며 차 밖으로 나선다. 마스크를 차에 두고 나도 뒤따른다. 한참을 기다려 만난 사람은 '희망의 목장'을 운영하는 요시자와 마사미 상. 60대 중반으로는 보이지 않는 다부진 체구의 그는 정부의 피난지시를 거부하고 가축을 도살하라는 지시도 거부한 채, 300여 두의 소를 보살피며 6년째 거기 살고 있다. 핵발전소 폭발 직후 피난 나갔다가 두고 온 소가 생각나 다시 돌아왔단다.
"소들을 죽일 수 없었고, 그냥 두고 떠날 수도 없었어요." 그가 말했다.
스스로 '정부가 버린 사람(棄民), 정부가 버린 가축들(棄畜)'을 구하고, 최소한 그 증인이라도 되기 위해 거기 머물고 있다는 거다. 여기서 살아갈 사람이나 소에게 어떤 보장된 미래가 있어서 '희망의 목장'으로 명명한 것이 아니었다. '구조는 운명'이라는 주문과도 같은 구호를 큼직하게 써 붙여 놓았지만, 이 목장에 머무는 사람도 소도 결코 안전할 리 없다.
이미 소에게도 사람에게도 흰 반점이 생기는 기현상이 나타나 의료진에게 조사를 의뢰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그에게는 개인의 안전이나 보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여기 그대로 살 자유', '더 이상 팔수 없는 소들을 보살피며 살 권리', 그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그에게는 어떤 절망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이다.
그가 힘겹게 일구어가고 있는 '희망의 목장'에서 많은 이들이 같은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목장 한 켠에 자리 잡은 컨테이너에는 이 목장을 다녀간 수많은 자원 활동가들의 사진과 응원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
레베카 솔닛은 그의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재난은 기본적으로 끔찍하고 비극적이고 슬픈 일이다. … 그러나 사람들이 자각한 열망과 가능성은 너무도 강력해서 폐허 속에서도, 잿더미 속에서도, 아수라장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고 썼다. 이 책의 번역자 정해영은 이 책 한글번역본에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라는 소개를 달았다.
목장을 안내하며 앞서는 그의 등을 보며 목장 길을 따라 걸었다. 그의 등 너머로 저녁 햇살을 받으며 검둥소가 '해설피 금빛 울음을' 울고 있었다. 비록 방사능 속이지만,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 없어 돌아온 살뜰한 주인과 함께 제 운명보다는 오래 살게 된 행복한 소가 희망의 목장에서 노닐고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 참사를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한다면 우리는 피해자의 고통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죽은 2만 개의 사건으로 기억해야 한다" _ 기타노 다케시, 영화감독 겸 배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세상을 설명했던 계몽사상가 홉스는 자연인의 이런 본성을 극복할 방법으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다괴물 리바이어던(Leviathan)과 같은 절대국가와 공포에 기초해 사회계약을 맺을 것을 주창했다. 홉스에 따르면 리바이어던, 즉 커먼웰스(commonwealth) 혹은 국가(state)는 자연인이 아닌 '인공인간(artificial man)'이며, "자연인을 보호하고 방어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연인보다 몸집이 더 크고 힘이 더 세다. 이 인공인간에게 있는 주권은 인공 혼으로서 전신에 생명과 운동을 부여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태호님은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