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0살이 된 롯데그룹은 순항할 수 있을까? '예스(Yes)'라고 속 시원히 말할 수 없다.
롯데그룹이 창립 50주년을 맞아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뉴비전'을 선포했다. 그동안 매출 등 외형적 성장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질적성장으로 한 단계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동빈 롯데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고, 중국의 반한감정이 지속되는 등 리스크는 남아있다.
50주년 맞은 롯데, "투명경영 등 질적 성장으로 전환"롯데그룹은 3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생애주기 가치창조(Lifetime Value Creator)'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그룹의 성장을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Lifetime Value Creator'란 한 사람의 생애주기(유아기~노년기)동안 필요한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뜻이다.
롯데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면서 특히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날 발표한 50주년 기념사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투명한 경영구조를 갖춰 고객과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각규 롯데그룹 경영혁신실장(사장)도 간담회에서 "기업의 목표는 매출 성장과 이익확대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롯데라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공감하고, 질적 성장을 통해 뉴 롯데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그룹이 제시한 새로운 경영방침은 투명경영과 핵심역량 강화, 가치경영, 현장경영 등 4가지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지향해 지속가능한 성장과 미래가치, 경제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롯데의 새로운 비전은 현재로선 알맹이 없는 호두에 불과하다. 우선 투명경영의 핵심 과제인 호텔롯데 상장과 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 2015년 형제 경영권 다툼으로 알려진 롯데계열사간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는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주사 전환 여전히 미정, 신 회장 거취 최대 변수신동빈 회장이 지난 2015년 8월 지주회사 전환을 약속했지만 2년째 군불만 떼고 있다. 지난 2월 그룹 인사에서는 지주사 전환에 대비해 화학과 유통, 식품, 호텔 및 기타 등 4개 사업부문(BU,Business Unit)을 신설하기도 했지만, 아직 지주사 전환 시기나 구조 등 세부적인 밑그림은 나오지 않고 있다.
황 사장은 이날 그룹 지주사 전환에 대한 질문에 "여기서 답변하기 어렵고, 지난 1월 공시된 내용대로 계속 검토하고 있다는 것만 말씀드린다"라고 말을 아꼈다.
롯데 지주사 전환 시나리오로는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계열분리를 하고, 호텔롯데를 상장한 뒤,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을 합병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롯데가 정확한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어 아직까진 모두 '썰'에 불과한 상황이다.
신 회장이 약속한 호텔롯데 상장도 구체적인 시기와 계획 등이 확정되지 않았다. 황 사장은 "호텔롯데 상장은 중국 사드 영향으로 면세점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지주사전환과 호텔롯데 상장의 걸림돌은 신동빈 회장의 거취다. 신 회장은 현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에 배임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신 회장은 롯데타워 개장식 등 그룹 현안을 챙기면서도 매주 열리는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신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현재 총수일가에 대한 공짜 급여 지급과 롯데 피에스넷 유상증자에 다른 계열사를 동원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혐의, 롯데시네마 매장 운영권을 헐값으로 매각한 혐의 등 세 가지다.
재판과는 별도로 검찰은 신 회장과 미르-K스포츠재단의 관계를 수사하고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조만간 신 회장을 불러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대한 자금을 출연하는 과정에 대가성이 있었는지 등을 확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세 가지 혐의에 대한 재판과 미르 재단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 재판 중인 배임 횡령 혐의나 미르, K스포츠재단 뇌물 혐의 가운데 하나라도 유죄가 밝혀지면 지주사 전환과 호텔롯데 상장 등 그룹의 굵직한 현안 처리는 미뤄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신동빈 회장은 자신이 제시한 '투명경영'과 '가치경영'을 부정하는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된다. 불법을 저지른 재벌 총수가 투명경영을 외친다면 일반 국민은 물론 회사임직원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드로 인해 면세점과 현지 마트 등 중국 매출 타격사드(THAAD)로 인해 중국 사업이 여의치 않은 것도 고민이다. 롯데는 이날 그룹의 새비전을 발표하면서 경쟁3사의 평균 성장률을 상회하는 성장 목표를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시장 확장은 필수다.
하지만 사드 부지 제공으로 '최대 소비 시장'인 중국발 매출 타격은 불가피하다. 롯데면세점에 따르면, 중국 당국의 한국 단체 관광 제한 조치가 본격화된 지난달 15일부터 면세점 매출은 급락세를 보였다.
지난 3월 15일 이후 2주간 롯데면세점의 전체 누적 매출액은 전년 대비 30%가량 줄었고, 중국인 관광객 매출은 40%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동남아와 일본 등으로 마케팅을 다변화하면서 해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중국에 비하면 매출 규모가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중국 현지 롯데마트도 잇따른 영업 정지 조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롯데에 따르면 중국 당국이 지난달부터 집중적으로 롯데마트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면서 현재(3일) 중국 내 영업점(대형마트) 99개 가운데 75개 점포가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유통업계 쪽에서 영업정지에 따른 롯데 쪽 손실이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선 롯데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에서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임병현 롯데그룹 경영혁신실 가치경영팀장(부사장)은 "중국 마트는 실무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서 지방정부에 재오픈 신청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면서 "중국 사업은 현재 투자단계로 판단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선 중국 사업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