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4월 5일)부터 5일 단위로 <계절의 수상>이라는 제하에 그 시점의 계절과 관련된 현상이나 사물에 관하여 200자 원고지 10매 정도의 에세이를 게재하려 합니다. 계절은 우리 삶의 일부이며,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계속 바뀌는 매주 시사적인 주제이기도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편달을 바랍니다. -기자말
오늘(5일)은 한식일이자 식목일이다. 어제는 절기상 청명(淸明: 맑고 밝음)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그런데 청명도 흔히 4월 5일에 드는 경우가 많아 이 세 날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청명은 이 시기 만물이 맑고 청명해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황하의 물이 가장 맑은 때라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오늘날은 대기가 깨끗하고 맑음을 의미하는 전자의 의미로 쓰인다. 청명은 춘분을 넘긴 때라서 이미 낮이 밤보다 더 길어진 때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삼사월(양력 사오월) 낳은 아기 저녁에 인사한다"는 속담이 있다. 청명에는 아직 일교차가 크기는 하지만 따뜻한 영상의 날씨가 이어진다. 그래서 이때부터 모판을 만들기 위해 논에 물을 대어 써래질을 하고, 논둑과 밭둑을 손보고, 봄채소를 파종하는 등으로 농사일이 본격적으로 개시된다. 그리고 이때 장을 담그면 그 맛이 좋다 하여 옛날에는 이 무렵에 한 해 먹을 장을 담갔다.
한식일은 본래 중국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충신 개자추(介子推)를 기념하는 날로써 동지로부터 105일째로 청명일과 겹치거나 6년에 한 번씩 하루 다음이 되거나 하는데 이 때문에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매일반"이라는 말이 생겼고, 중국에서는 한식일의 세시풍속이 청명절에 흡수되었다. 한식은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우리의 4대 제사 명절 가운데 유일하게 음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절기력에 의한 것이라서 날짜가 들쑥날쑥하지 않는다. 한식은 잡귀들이 묶여 있어 "귀신 맨 날" 또는 줄여서 "귀 맨 날"로 불리며 손이 없는 날로 여겨 이날 산소의 봉분을 새로 하거나 산소의 이장을 하거나 한다. 한식 때가 되면 특히 바람이 심한데, 이때 불이 나기 쉬우므로 우리 조상들은 한식날에는, '한식(寒食: 차게 먹음)'이라는 말 그대로,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밥을 그냥 먹고 술, 과일, 포, 식혜 등으로 제사를 지냈다.
청명일은 4월 5일에 드는 경우가 많아 식목일과 겹치는 것이 보통인데 이는 식목일을 일부러 청명일에 맞춘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는 날이 풀리고 온화하여 식목에 적당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도 땅에 꽂으면 잎이 돋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예로부터 청명에 식목을 장려하였다. 식목일을 청명일로 한 것도 그 한 예다. 우리 선조들은 청명에 식목을 장려하기 위한 <나무 타령>이라는 매우 익살스런 민요를 만들어 보급했다. "청명 한식 나무 심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거짓 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 편 내 편 양편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양반 골에 상나무, 너 하구 나 하구 살구나무, 이 나무 저 나무 내 밭두렁에 내 나무."
이 <나무 타령>의 마지막 구절의 "내 나무"는 나무의 이름이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 몫으로 부모가 청명에 심은 나무가 그 아이에게는 "내 나무"인 것이다. 딸을 낳으면 뜰이나 밭두렁에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을 낳으면 선산에 소나무나 잣나무를 심어 그 딸이나 아들로 하여금 그 나무를 자기 것으로 여겨 정성껏 돌보게 하였다. 딸의 내 나무는 그 주인이 성장하여 시집갈 때 혼수용 장을 만들어 주고, 아들의 내 나무는 그 주인이 이승을 하직할 때 관을 짜는데 썼다고 한다. 내 나무의 주인은 자신의 나무 앞에서 "한식날 심은 내 나무 / 금강수(金剛水) 물을 주어 / 육판서(六判書)로 뻗은 가지 / 각 읍 수령(守令) 꽃이 피고 / 삼정승(三政丞) 열매 맺어..."라는 <내 나무 노래>를 부르고 애지중지하며 잘 가꾸었다. 그리고 총각은 좋아하는 처녀의 내 나무에 거름을 주는 것으로 연정을 표시하기도 했다고 하니 내 나무는 사랑의 매개이기도 했다.
청명 무렵은 화창한 날씨 속에서 여러 꽃들이 함께 피어 세상을 더 화창하게 만든다. 특히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나무,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앵두나무, 배나무 등의 나무들이 잎도 없는 가지에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일시에 또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화사한 꽃들을 잔뜩 피워내서 온 천지가 수를 놓은 듯 울긋불긋한 꽃동산들로 변모한다. 아마 지상을 낙원으로 부를 수 있는 때가 있다면 단연코 이처럼 여러 나무 꽃들로 그림 같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청명 어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