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隱·華·奧·幻 은화오환 –조명희 자개핸드백전>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전시가 서울의 갤러리로얄에서 4월 16일까지 열리고 있다. '은은하며 화려하고, 오묘하며 환상적'이라는 뜻의 전시제목인데 나전칠기와 채화옻칠에서 느껴지는 빛과 색깔을 핸드백과 결합한 작품들 50여 점이 전시중이다. 이 전시회는 몇 가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자개와 옻칠을 어떻게 핸드백과 결합한 것일까? 나전칠기와 채화칠의 전통 공예가 어떻게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재탄생하였을까? 핸드백을 갤러리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조명희 자개핸드백전의 특징을 세 가지로 살펴본다. 전통적으로 보면 자개는 장롱, 함, 상자 등의 목가구에 주로 쓰였는데 이번에는 자개와 핸드백이 결합된 것이 첫째 특징이다. 목가구에서 나전칠기는 뼈대가 되는 나무판 위에 자개를 하나하나 붙이고 옻칠을 하는 기술이 적용되었다. 이번에 전시된 핸드백에서 자개는 별도로 작업된 자개판을 핸드백 가죽에 실로 바느질해 부착시켰다. 조명희 디자이너가 핸드백과 자개를 결합한 자개핸드백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영국 런던에서 독립적인 핸드백브랜드를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녀의 대표적인 자개핸드백 중 하나인 '소반핸드백'의 탄생 일화가 재미있다.
"영국 유학시절에 공원 벤치에서 빵과 커피를 즐겨먹었는데 커피가 흘러 가방에 얼룩이 남곤 했어요. 이때 어린 시절에 자개상에서 밥먹던 기억이 떠올라서 '소반모양'의 자개핸드백을 디자인했어요. 그런데 핸드백 샘플제작자들은 "자개로 핸드백을 만든다는 게 이해가 안된다"며 손사래쳤지만 어렵사리 그분들을 겨울 설득해 '자개소반백'을 2004년 처음으로 완성했어요. 자개소반백 외에도 여러 자개핸드백들을 파리 '프리메르클라스'라는 세계적인 디자인박람회에 출품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유럽의 여러 유명잡지들에 소개되었고 영국에서 최고로 꼽히는 리버티백화점을 비롯해 유럽과 일본의 여러 백화점들에서 호평을 받으며 판매되었지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자개 디자인을 현대화하는 작업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자개핸드백으로 대표되는 조명희 스타일의 핸드백디자인은 해외에서 '동서양의 조화'라는 차원으로 먼저 조명받았고 점차 한국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조명숙(스타일엑스 편집장, 전 <보그> 패션디렉터)씨는 조명희 디자인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예술품처럼 보이면서도 굉장히 실용적이고 가변적이다. 부드러움과 딱딱함, 동서양이 유기적으로 뒤엉켜진 그녀의 작품들은 융합과 콜라보의 시대를 대표한다. 세계적이면서 한국적인 멋이 살아있고 독창적이면서도 세련되어 보인다. 쉽지 않은 그 일을 조명희 디자이너는 해내고 있다."
두 번째로는 이번 핸드백디자인에 사용된 나전 문양들이 현 시대의 정서를 담은 추상적이며 시각적인 디자인으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나전 문양으로는 기복과 풍요 등을 상징하는 학, 십장생, 박쥐, 용, 나비 등의 동물문(動物文), 식물의 줄기와 잎이 길게 늘어선 국화나 모란 등의 당초문(唐草文), 한자로 새긴 수복문(壽福文) 등이 대부분이었다.
안웅철(사진작가)씨는 "반질반질한 자개 빛은 실상 동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 소재지만 그 어느 소재보다 인터내셔널한 감성을 지닌 소재다. 어쩌면 그게 바로 그녀라고 말하는 포인트다. 그녀가 만져 탄생한 자개핸드백은 그래서 한국적인 동시에 영국적"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 특징으로는 이번에 전시된 핸드백 디자인의 독창성이 돋보여 가방이라는 상품 수준을 넘어 예술작품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는 점이다. 이는 샤넬, 프라다 등의 유럽 명품 핸드백들의 디자인을 모방하는데 급급한 국내 핸드백업계의 관행에서 볼 때 한국 핸드백의 독립적 디자인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최선희(초이엔라거 갤러리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디자이너 조명희는 우리가 놓쳐버리기 쉬운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내어 마음에 가득 담아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쓴다. 이리 저리 바꿔보기도 하고 다른 것들과 조화롭게 조합해보기도 하고 영감을 받은 예술 작품과 섞어보기도 하고 위대한 장인들과 함께 직접 손으로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전혀 예기치 못했던 가방을 창조해낸다. 그래서 그녀의 가방에는 삶과 아름다움들이 가득 들어 있다."
조명희 디자이너는 알렉산더 맥퀸, 헨릭 빕스코브 등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를 배출한 영국 센트럴세인마틴 예술대학을 졸업했으며, 신원, 이신우컬렉션을 거쳐 루이까또즈, 빈치스, 스토리(STORI)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면서 한국 핸드백의 창조적인 디자인을 개척해오고 있다.
프리미에르 클라세, 대만 국제엑스포, K팝쿠틔르 조명희핸드백전,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22인전 등의 핸드백전시회를 통해 독창적인 핸드백 디자인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2012년 문체부 선정 'K패션 한국디자이너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코오롱패션스쿨, 인덕대, 계명대, 동덕여대 등의 강의를 통해 핸드백 디자인 실무를 전수하고 있다.
[인터뷰] (조명희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는 4월 1일 갤러리 로얄에서 진행되었다.)
- 핸드백을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경우가 한국에선 드문 경우인데 외국에선 어떤가요? "외국에서도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종종 볼 수는 있다.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나 후세인 살라얀(Hussein Chalayan)은 디자이너이지만 옷으로 아트 전시를 하면서 아트와 디자인으로 경계를 짓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 전시작들의 자개 문양들이 독특하다. 어떤 콘셉트나 구상으로 작업했나요? "근래의 자개 문양은 꽃이나 나비 등 자연을 모방한 것이 많다. 그런데 훨씬 옛날로 가면 기하하적 문양들이 많다. 토기에도 빗살무늬가 있고 선으로 만들어진 문양들이 많다. 어떤 자연물을 (디자인적으로) 돌리면 알 수 없는 기호로 바뀌고 그것들이 기하학적인 문양이 된다. 외국 출장 중에 종이로 된 만화경을 보고 어릴 때 즐겁게 가지고 놀았던 게 생각났다. 그것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했더니 새로운 패턴들이 나온 것이다."
- 채화옻칠을 핸드백에 적용했는데 어렵지 않았나요? "채화칠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옻이 옮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마스크 쓰고 장갑 끼고 작업실에 들어가야 했다. 옻이라는 물체의 특성도 어려웠고 그 작업하는 분들의 고정관념도 어려웠다. 근본적으로 전통하는 분들과 저처럼 전통을 활용해 새로운 걸 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가치관의 차이나 오해들이 힘들었다. 하지만 넘어서야 할 과제다. 우리 당사자들만의 문제를 넘어서 좀더 제도적인 차원의 근본 해결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 한국에서 대형 핸드백 회사 말고 개인의 독립 핸드백 브랜드들의 현황은? "한국에서 개인 브랜드들이 생겨난 게 최근 5년이다. 핸드백 업계가 최근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동안 새로운 형식의 아이디어나 유니크한 디자인을 만들지 못하고 그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추종하면서 만들기에 바빴다. 그러다보니 디자인업계 전반이 무너지고 있다. 새로운 것이 나오지 못했고 그것을 견디지 못한 디자이너들이 개인독립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힘든 길이지만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용기를 주고 싶다."
- 조명희 디자이너의 독립 브랜드인 스토리(Stori)도 2004년경에 영국에서 시작했다는데 10년 넘었다.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겠다. "타인의 것을 카피하지 않고 독창적인 아이덴티티로 성장해오는데 멈췄다 섰다를 반복했다. 그냥 어려움이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고난의 길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혼자 개척해오고 있다. 제 스스로가 장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앞으로도 더 힘들겠지만요..."
- 조명희 디자이너의 독창적인 핸드백들이 잘 팔리나요? "잘 팔린다는 것은 잘 팔리는 것과 많이 파는 게 있는데, 제 핸드백들은 잘 팔린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많이 팔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다 개성이 다르다. 많이 팔 생각보다 꾸준히 사랑받고 잘 팔 생각이다."
- 평소의 디자인 철학은? "일단 새로운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박증에 가깝다.. 새로운 것은 날 것이고, 낯설고 무르익지 않아서 생내가 나지만 그것들이 무르익도록 잘 돌보는 게 내 책임이다. 그게 나중엔 브랜드가 될 것이다. 그러려면 (디자인을) 시작할 때 굉장히 깊은 생각이 있어야 한다. 쓰임새는 어떠한지, 소재는 어떻게 사람에게 이로운지, 철학적으로 인간에게 해가 안되는 것인지, 아티(arty)한지, 가치가 있는지 고민을 많이 한다. 또한 옛것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아름다운가,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가를 지속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그것을 어떻게 디자인으로 발전시켜야 하는지를 계속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