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드 배치는 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그른 문제가 아니다. 배치에 따른 득과 실이 있으며, 얻는 것의 크기와 잃는 것의 크기를 따져 물어야 한다. 저는 잃는 것의 크기가 더 크고, 종합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2.
"지난해 10월에 한미 국방부 장관이 합의해 발표한 것은 국가간 합의이고 공동발표를 통해 된 것이다. 다음 정부는 국가간의 합의는 존중해야 한다. 상황이 바뀌었는데 이전 입장을 고수하는 게 문제다. 사드 배치를 제대로 해야 한다."'#1'과 '#2'는 문맥도, 논지도 전혀 다른 발언이다. 전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반대를, 후자는 찬성을 주장하고 있다. 토론회를 가정한다면 이 주장들은 사드를 찬성하는 패널과 반대하는 패널 사이의 논쟁으로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충된 견해다.
그러나 이 발언들은 모두 한사람의 입을 통해 나왔다. 발언의 당사자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다. '#1'은 안철수 후보가 지난 2016년 7월10일 성명을 통해 발표한 내용 중 일부이며, '#2'는 지난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정토론회에서의 발언 내용이다.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고 명확하게 입장을 밝혔던 안철수 후보는 9개월 만에 그와는 정반대의 주장을 들고 나왔다. 그가 입장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안철수 후보는 그 이유를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궁금하다. 9개월 사이에 바뀐 그 상황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상황이 달라지긴 달라졌다. 첨예한 논란에도 아랑곳 없이 정부는 미국 정부와 사드 배치를 일방적으로 합의해 발표했고, 배치 시기 역시 대선 전인 4~5월 안으로 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지난 2월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의 방한 당시 정부는 미국측과 극비리에 이 문제를 논의했고, 사드 포대를 우선적으로 배치하겠다는 내용에 전격 합의했다.
우려했던 중국의 사드 보복도 현실화됐다. 중국은 정부 주도 하에 자국인의 한국 관광을 금지시켰고,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 계열에 노골적인 제재를 가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 제품 불매운동이 이어지며 관련업계가 직견탄을 맞는 등 한국기업들의 수난이 잇따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혐한' 분위기가 급속하게 퍼지면서 중국내 한인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한류 열풍' 역시 끝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사드 배치로 달라진 것은 중국의 경제 보복이 전부가 아니다. 외교·안보 분야의 위협은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사드 배치로 인해 한국은 중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위험국가가 됐다. 한미일 군사 공조에 맞춰 북중러의 군사동맹이 강화될 것이고, 그로 인해 남북 관계와 한반도의 안보 위험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중국은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반발로 군사적 대응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9일 중국 군용기가 우리방공식별구역에 침범했는가 하면, 미국의 MD체계에 맞서 최첨단 전략무기를 한반도 주변에 배치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사드 배치로 발생하는 모든 후과는 한국과 미국의 몫"이라며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단계별로 강화해나갈 것임을 천명하기도 했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이렇게나 달라졌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안철수 후보가 사드 배치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섰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외려 중국과의 외교 마찰과 한반도의 안보 불안은 사드 배치를 원점에서 다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준다. 안철수 후보 역시 과거 사드를 반대하면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문제제기 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사드 체계의 성능 문제, ▲비용 부담의 문제, ▲대 중국관계 악화 문제, ▲사드 체계의 전자파로 인한 국민의 건강 문제 등을 거론하며 사드 배치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드 배치가 '한반도의 평화와 국민의 생존 나아가 국가의 명운을 결정할 국가적 의제'라며 국민투표의 필요성을 역설하기까지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와서 '상황이 바뀌었다'며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월간 군사전문지 <디펜스21+>의 편집장을 역임했던 군사평론가 출신 김종대 정의당 원내대변인의 지적이 아주 흥미롭다. 그는 "한미 국방장관의 공동발표는 한미가 지난해 7월 8일 사드 배치 결정 발표를 재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상황 유지'에 가깝다. 배치 결정 절차는 한미 공동실무단의 검토보고서를 한미 양국 국방장관에게 건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며, 이와 관련해 어떠한 변동사항도 없다"고 비판했다.
상황이 바뀌었다는 안철수 후보의 주장과 달라진 것이 없다는 김종대 원내대변인의 주장이 이처럼 엇갈린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외교적 상황의 변동 여부가 논쟁이 되고 있는 가운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안철수 후보의 정치적 환경이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사드 배치를 찬성할 당시 미미했던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현재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세론을 위협할 정도로 급상승했다.
어쩌면 '상황이 바뀌었다'는 말의 적확한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지지율이 급상승한 안철수 후보가 보수표를 끌어모으기 위해 사드 배치 찬성으로 선회한 것 아니냐는 추론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가 입장을 바꾸자 그동안 사드 배치 반대에 공조를 맞춰온 민주당과 정의당은 물론 사드 배치를 찬성해온 바른정당까지 그 저의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물론 안철수 후보의 생각은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면 더더욱 입장을 바꾸게 된 명확한 근거를 내놓아야 한다. 정치인은 자신의 철학과 정치적 비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국민에게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대권에 도전하고 있는 유력한 정치인이다. 국가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사안에 대해 입장이 달라졌다면 그에 대한 합당한 이유와 근거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의 말마따나 지도자의 판단에 '국민의 생존과 국가의 명운'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가 사드 배치를 찬성하며 '상황이 바뀌었다'고 설명하자, 시민들은 한일 양국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합의한 '12·28 위안부 합의' 역시 그대로 존중해야 하느냐고 그에게 반문하고 있다. 또한 상황이 달라지면 '12·28 위안부 합의'에 대한 폐기 입장도 바뀌는 것이냐고 되묻고 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을 꽤뚫어 본 시민들의 명쾌하고 재기넘치는 대응이다.
사드 배치는 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그른 문제가 아니다. 그런 이유로 지도자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공론화의 과정을 거쳐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 결정해야 한다. 사드 배치가 한반도의 평화와 국민의 생존 나아가 국가의 명운을 결정할 국가적 의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9개월 전 안철수 후보 자신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며 했던 말이다. 안철수 후보는 직시해야 한다.
상황에 '혹'하지 않는 지도자의 투철한 철학과 소신이 국가안보를 굳건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세에 따라 유리한 쪽으로 행동하는 태도는 국가 지도자의 미덕이 될 수 없을 뿐더러 국민의 신뢰와 동의를 얻기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