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살아온 마을' 어떤 점이 좋고 어느 곳이 좋아?"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단박에 내놓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학생 시절 '우리 마을'에 대해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한 탓이다.
주민 6명과 교사 4명이 만든 교과서, 초3 학생들에게 무상배포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 금천지역 주민들과 현직 교사들이 초등학교 3학년용 마을 교과서를 만들었다. 이 교과서의 이름은 <여기 사는 내가 좋아>이다. 표지엔 '초등 3학년 금천마을 학습자료'란 부제를 붙였다. 서울 금천구청과 남부교육지원청이 이 사업을 지원했다.
그동안 전국의 지역 교육지원청은 몇 개 자치구를 묶어 지역화 교과서를 펴내 왔다. 하지만 이번처럼 같은 마을의 민관학(주민·기관·학교)이 어깨를 맞대고 마을 교과서를 낸 것은 전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3년째 이어온 서울형 혁신교육지구 사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5일 오후 금천지역 초등학교 3학년 교사들 60여 명이 금천구청 강당에 모였다. 이 교과서를 갖고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칠지 협의하기 위해서다.
이날 조성익 금천구청 교육전문관은 이 교과서에 대해 '1, 2, 3, 4…' 숫자를 붙여가며 설명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1. 주민과 교사가 함께 낸 마을 교과서는 전국 첫 번째다. 2. 두 권(마을 교과서와 교사용지도서)의 책을 냈다. 3. 3년간 제작했다. 4. 4명의 집필교사가 참여했다. 5. 5개의 단원이 있다. 6. 6명의 집필주민이 참여했다... " 무엇보다 이 교과서는 이 지역 초등학교 교사 4명과 마을 주민 6명이 공동으로 집필에 참여해 만들었다. 이들은 지난 3년 동안 100번 이상의 연구회의, 3번의 공청회를 열었다. 금천지역 모든 초등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벌였다.
교사 집필자 가운데 배옥영 교사(서울 문백초)는 "금천지역의 학교 선생님 가운데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 분들도 많아 초3 <사회>과에서 지역 상황을 가르치기가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마을 주민과 함께 쓴 이 교과서를 통해 금천을 잘 몰랐던 선생님들이 학생을 지도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금천구청은 이 교과서 2000권을 인쇄해 이 지역 초등학교 3학년 학생 모두에게 무상 보급할 예정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돈 2900만 원(교사용지도서 제작비 등 포함)은 금천구청이 지원했다.
이 교과서는 초등학교 3학년 사회 교과와 연계해 가르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모두 144쪽의 분량인 이 교과서는 초3 사회 교과서에 실린 단원의 주제와 똑같다. 1학기 '우리가 살아가는 곳', 2학기 '우리 지역, 다른 지역'이 그것이다.
하지만 속 내용은 금천지역 학생들을 위해 맞춤형으로 짜였다. 신발을 닮은 금천구의 지도를 자세히 보고 금천구표 신발 꾸미기(13쪽), 호암산과 안양천의 모습(16쪽), 옛날의 금천구와 지금의 금천구(38쪽), 호압사 옛이야기 만화(63쪽), 금천구 십자말풀이(90쪽) 등이 그랬다.
"우리 마을 아이들이 이 책 들고 돌아다니길... "
이 지역 학생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의 모습을 교과서에서 보고, 동네 마실가듯 견학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교과서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창작캐릭터인 '금천이'와 '한내'는 이 지역에서 자란 청년들의 재능기부로 탄생했다. 교과서에 실린 사진 역시 금천구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와 블로거 등이 찍은 것이다.
이 교과서 총괄책임을 맡은 오현애 교육나눔협동조합 이사장은 "우리 금천지역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마을을 배울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면서 "이 책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이 아니라 우리 마을 아이들이 이 교과서를 들고 직접 동네를 돌아다니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교사들은 "교과서에 실린 금천구에 대한 그림지도를 크게 확대해서 학교로 보내 달라"고 부탁하는 등 관심을 나타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서울교육소식>에도 비슷한 기사가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