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저녁 9시.
"어머니, 이모 집에서 주무셔요?""아니다. 막내 외숙이 7시 30분쯤 기사한테 택시비 만원주면서 태워 드렸다. 진즉 도착했겠다." 외사촌 이모 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어머니가 이모 댁에서 주무시고 오신다고 했지만 궁금해서 이모께 전화를 했었다.
"딸, 할머니 집에 오셨지?""아뇨. 아직 안 오셨는데요."머리를 둔기로 맞은 것 같다. 불길한 생각이 금방 온 몸을 조인다. 어머니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몇 번 전화 만에 폰으로 들려온 목소리는 남자다.
"저 00인데요. 할머니가 전화기를 우리 집에 놓고 가셨어요."불길한 생각이 점점 꼬리를 문다. 전화기만 갖고 계시면 지구대에 위치 추적 의뢰를 해 금방 찾을 수 있는데 그럴 수 없다. 뇌 질환으로 몇 번 집을 찾아오시지 못해 지구대에 등록을 해놨었다. 서둘러 지구대에 가출신고를 하고 딸하고 집 근처를 샅샅이 찾았다. 어머니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불안한 그림자만 길게 드리워진다.
새벽 1시. 어머니를 찾기 시작한지 3시간.
내 핸드폰에 밸이 울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머니가 차고 있는, 내 전화번호가 새겨져 있는 팔찌를 누군가가 보거나 어머니가 보여줘 전화가 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지구대에서 오는 전화만 있을 뿐 반가운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이 흘렀다.
무섭고 두려운 생각이 들었지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병원응급실에 갔다. 큰 부상이 아닌 상태로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시기를 바라는 나쁜 마음도 있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병원에도, 여러 곳에 있는 공공화장실에도 가봤지만 어머니는 꽁꽁 숨어버렸다.
새벽 3시.
일단 집으로 왔다. 잠시 쉬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몹쓸 생각만 길어진다.
아침 7시30분.
옷을 주섬주섬 입고 다시 어머니를 찾으러 출입문으로 나가는데 번호 키 누르는 소리다.
어머니다. 얼굴에 상처를 입고 절뚝거리시며 들어오신 것이 아닌가.
잠시 꿈인가 의심을 했다. 몹시 지쳐있는 어머니는 집 근처에서 넘어지신 것 같다. 핏자국이 선홍빛이다. 시간이 얼마 안 돼 보인다. 울컥 눈물이 났다. 어머니는 밤길을 12시간 가까이 집을 찾아 헤매신 것이다.
광주 아침 온도는 6.6도였다. 겨울이었다면 어머니를 생전에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퇴근해서 집에 와 어제 밤일을 여쭤봤다.
"택시미터기에 만원이 나와 내려주라고 했다. 택시기사가 내려줘도 집 찾아갈 수 있느냐고 물어서 찾아갈 수 있다고 했더니 내려주더라."2000원 정도 추가요금이면 아파트 앞에 내리셨을 것 같다. 뇌 질환 이후 특히 방향감각이 없는 어머니를 저녁시간에 내려놓고 가버린 개인택시 기사가 야속했지만 다행히 귀가해준 어머니와 모든 신들께 감사를 드렸다.
"어머니 이 목걸이는 외출하실 때 꼭 걸고 가세요."다음날 통신사 대리점에서 반려견에 채워주는 위치 추적 장치를 핸드폰 줄에 달아 걸어 드렸다. 내가 어머니의 반려견이 되더라도 어머니가 곁에 더 계셔야 한다. 78년을 사시면서 몸과 맘에 상처가 너무 많아 건강하지 못한 어머니가 짠하고 효도한 시간이 거의 없어서다.
2일 전.
"내가 우리 집안에서 가장 어른이다. 내가 챙겨야 해."어머니는 아직 몸도 성하지 못하신데 방앗간에 떡 맡겨야 한다고 나가신다.
이틀 뒤인 오늘이 집안 시제를 모시는 날이다. 시제를 지내면서 조상님께 소망 하나를 빌고 왔다.
"고조 증조할아버지 우리 어머니 천천히 모셔가세요. 우리 곁에 더 계실 자격이 있고 조상님들께 잘하시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드려야 할 사랑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봄 꽃 따라 가실 뻔한 어머니, 다시 돌아오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 더 잘 모실게요.
덧붙이는 글 | 월간잡지 첨단정보라인 5월호에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