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관람 안 되는 반구대암각화는 "맛없는 식당"반구대암각화는 소위 "직관(직접 관람)"이 안 된다. 축구경기장을 찾았는데 자리가 없어 경기장 밖에서 대형스크린으로 경기를 봐야 하는 것과 같다. 축구경기야 다음에 일찍 예매를 하면 직접 관람할 수 있는 기회라도 얻지만 반구대암각화는 그런 기회조차 없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보존방안을 둘러싼 논란 때문에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국민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반구대암각화를 보기 위해 서울, 경기, 강원, 전북 등 울산과 꽤 거리가 먼 곳에서도 여행자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직관 실패"가 주는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행자들은 요즘 '먹방'에서 흔히 쓰는 맛집 표현에 빗대 그 실망감을 표현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 "한 번도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고 하는 데, 이 표현을 빌려서 비꼰다.
"반구대암각화를 보러 한 번 가본 사람은 있어도 두 번 이상 가본 사람은 없다"고.
현장 찾았지만 보는 것은 모두 '가짜'만두 번 다시 찾지 않은 이유는 반구대암각화를 보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왔지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모두 "가짜"이기 때문이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현장을 찾아가 보면 반구대암각화에서 대략 100m 떨어진 지점부터 접근이 금지돼 있다. 접근을 가로막은 철제 울타리를 넘으면 곧바로 센스가 작동해 경보음이 울리고 관리인에게 제재를 당하게 된다.
울타리 옆에는 대형쌍안경 3대가 설치돼 있다. 직접 볼 수 없지만 렌즈를 통해서라도 구경하라는 관리당국의 배려다. 하지만 선명하지 않은 렌즈 화질이 오히려 화만 돋운다는 게 여행자들의 하소연이다.
그래서 결국 울타리 옆에 세워진 대형 암각화 사진만 뚫어지게 보고, 이마저 부족하다 느끼면 가까운 울산암각화박물관을 찾아 모형으로 만들어진 암각화와 사진을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방문기념 사진도 당연히 모형 암각화 앞에서다.
암각화에 돌 던지는 관광객, 접근금지 한 몫울타리는 반구대암각화의 인위적인 훼손방지와 여행자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됐다. 관계자말로는 벌써 설치된 지 7년이 넘었다. 반구대암각화는 알려진 대로 울산시민의 식수원인 사연댐 상류에 위치해 있고 암각화 앞에는 대곡천이 흐르고 있다.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는 급류가 형성돼 접근 시 매우 위험하다. 또 비가 계속되면 댐의 물이 이 울타리 앞까지 차올라 반구대암각화는 수면 아래로 잠기게 된다.
울타리가 생기기 전에 일이다. 갈수기 때 댐 수위가 낮아지면 암각화 바로 앞 대곡천 물길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이곳에서는 암각화까지 10m 거리. 하지만 풍화작용으로 새김이 옅어진 바위그림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몰지각한 일부 관광객은 같이 온 일행에게 그림 위치를 가리켜 주기 위해 암각화를 겨냥해 돌멩이를 던지는 경우도 많았다.
행정편의주의는 없는가?반구대암각화가 1995년 국보로 지정되고 난 후에도 일반인들의 접근이 가능했다. 매년 장마철을 앞둔 갈수기 때면 사연댐의 수위가 내려가고 반구대 앞의 흐르는 대곡천이 겨우 발목까지 잠길 정도가 된다. 대곡천을 건너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이 직접 바위그림을 만지며 관찰했다. 학술답사를 온 대학생들의 탁본도 많이 행해졌다.
하지만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 이어지고 문화재적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2000년 전후로 일반인들의 접근이 제약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오로지 접근금지다. 여행자들의 지적 호기심은 완전히 배제됐다. 갈수기에 대곡천 바닥이 드러나도 어림없다. 사연댐 수위로 인한 풍화가 훼손의 가장 큰 원인이지만 이는 수년 째 방치하면서 애꿎은 관광객만 가로막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천전리각석은 직관 가능지난 4월 2일 휴일을 맞아 반구대암각화 현장을 찾은 한 가족은 쌍안경 렌즈로 제한된 바위그림만 몇 개 보고나니 너무 허무하다며 하소연하고는 급히 되돌아섰다. 아이들과 도보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천전리각석을 찾아 가기 위해서다.
천전리각석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걸쳐 각종 문양과 글이 새겨진 바위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각석까지 3m 정도 접근할 수 있도록 시설을 해놓았다. 매우 가까이서 육안으로 관찰이 가능하다. 울타리 높이도 어른 무릎 정도여서 아이들도 불편 없이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천전리각석 현장에는 반구대암각화처럼 대형 사진이 없다. 방문기념 사진도 각석 앞에서 바로 찍을 수 있다. 물론 울타리를 넘으면 센스가 작동해 경보음 울리고 관리인이 달려온다.
이 같은 접근허용은 천전리각석의 보존가치가 반구대암각화보다 못해서일까? 천전리각석은 반구대암각화보다 먼저 발견됐고 또한 국보 147호로 앞서 있다. 신석기 시대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기하무늬와 금석학으로 가치가 높은 신라시대 문장이 새겨져 있는 중요한 문화재다.
울산시가 추진하고자 하는 생태제방은 직관이 가능한가? 큰비가 내릴 때마다 사연댐 수면 아래로 잠기는 반구대암각화는 풍화작용으로 인해 선긋기, 면쪼기 등의 방법으로 그려진 바위그림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마구잡이 탁본 등으로 인한 인위적인 훼손도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사연댐의 물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반구대암각화가 소재해 있는 울산광역시에서 그 보존방안으로 생태제방을 제시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와 문화재청 등에서는 아예 사연댐 수위를 낮춰 물에 잠기는 것만 방지하는 차원에서 암각화를 보존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생태제방안은 반구대 암각화 앞 30m 거리에 길이 357m 높이 65m의 제방을 쌓는 것이다.제방을 쌓아 사연댐의 수위가 만수가 되더라도 반구대암각화가 물에서 완전 격리돼 잠기지 않고 울산시민의 식수를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이 경우 제방 위로 관람대의 설치가 어느 정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암각화로부터 직선거리 30m 높이 65m 위치에서는 어지간히 시력이 좋지 않으면 육안으로 관찰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모나리자와 밀러의 비너스, 그리고 앙코르와트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는 훼손과 도난방지를 위해 보안이 철저한 유리액자 속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창고가 아닌 전시실에 보관되어 있으며 하루 수 만 명이 관람하고 있다. 루브르를 다녀 온 여행자들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는 "모나리자를 직관했다"는 것이다.
또 루브르에는 BC150년경 만들어져 헬레니즘미술의 걸작으로 불리는 밀로의 비너스상이 큰 제약 없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시 사원'이자 조각예술의 백미를 보여주는 곳이다.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관광객은 조각 하나하나 손으로 만져보고 그 촉감을 기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 같은 사례와 반구대암각화의 비교는 과분한 것인가?
관념화되는 반구대암각화, 가치만 반감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가 가진 문화적 가치는 실로 대단하다.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즉, 한반도 선사인의 삶과 가치관, 역사와 미술, 과학 등이 집성된 종합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물을 앞에 두고 직접 볼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반구대암각화가 관념화되고 그저 우리 머릿속에서만 존재한다면 그 빛나는 가치는 크게 반감되고 말 것이다.
취재 당일 부산에서 온 한 여행자는 "인위적 훼손방지 방안과 관람객 안전방안이야 강구하면 되는 것이고 갈수기 때만이라도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가까이서 반구대암각화를 관찰할 수 있는 이벤트라도 열어주면 좋겠다"며 "앞으로 보존방안이 어떻게 결정될지 모르겠지만 직관이 가능한 방안으로 결정 나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행동'에 함께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