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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이맘때였다. '내 오늘은 기필코 먹고야 말겠어!' 전날부터 잔뜩 벼르고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꺼낸 것은 쑥 한 봉지. 며칠 전부터 향긋한 쑥국이 너무나 간절히 먹고 싶었다.

 쑥국을 끓일 때마다 그날 아침이 떠오른다.
쑥국을 끓일 때마다 그날 아침이 떠오른다. ⓒ 심혜진

열흘 째 내리 사골미역국만 먹은 터였다. 4월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첫 아이를 유산했다. 뱃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낯선 설렘에 한창 적응해가던 12주차, 검진을 위해 병원에 갔다가 의사에게 "뱃속에 아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입덧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는데, 아기가 없다니. 병원을 나와서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병원에선 수술을 권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몸을 믿어보고 싶었다. 입덧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2주 후, 숨도 못 쉬도록 배와 머리가 아프더니 손바닥만 한 핏덩이가 쏟아져 나왔다. 태반과 아기집이었다. 조금 있으니 배와 머리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임신과 유산을 모두 겪어낸 내 몸이 자랑스럽고 기특했다. 그래서 슬펐고, 그래서 괜찮았다.

주위사람들은 저마다 "유산도 출산과 똑같다"며 '찬물에 손 담그지 마라, 찬바람 쐬지 마라, 무거운 것 들지 마라' 등 잔소리가 끝이 없었다. 나는 최대한 지키려고 했다. 삼칠일 동안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는 말도 웬만하면 따르고 싶었다. 그런데 쑥이 내 노력을 망쳐놓았다. 텔레비전에서 4월에 쑥이 제철이라며 쑥밥부터 쑥국, 쑥전, 쑥버무리, 쑥떡까지, 쑥으로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을 보고 말았으니, 하도 끓여 흐물흐물해진 미역국을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쑥을 씻어 생콩가루를 설설 뿌렸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 육수에 생콩가루 묻힌 쑥을 살포시 얹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텔레비전 앞에 작은 상을 펼쳤다. 이제 막 한 숟가락 떠먹으려는 순간, 방송이 중단되더니 뉴스속보가 나왔다. 화면엔 큰 배가 기울어져 있었다. 잠시 후 '전원구조'라는 자막이 떴다. 아, 다행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같은 내용과 장면이 반복해서 나온다. 현장에 분명히 취재진이 있는 것 같은데 왜 다른 장면은 안 나올까? 불안감을 누르려 텔레비전을 껐다. 일단 밥을 먹자.

쑥국은 향긋했다. 그래, 4월 쑥은 보약이라지. 씹지도 않은 밥알이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넘어갔다. 쑥국 대접과 밥 한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배를 두드리며 누워서 좀 쉬려는데 다시 큰 배가 생각났다. 텔레비전을 켰다. 구조된 인원수가 아까와 다르다. 전원구조가 아닐 수도 있단다. 배 안에, 아직 사람이 있단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은 내게 그런 날이다.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쑥국을 먹겠다고 잔뜩 마음 설레던 그날, 그 아침. 나의 시간과 그들의 시간이 그토록 달랐다는 것에 나는 한참동안 죄책감을 느끼며 꺽꺽 울었다. 내 자궁에 잠시 머물었던 작은 생명이 빛나는 거대한 생명들과 함께 저 깊은 어둠의 바다로 하릴없이 사라진 것 같아 슬픔이 더 짙었을지 모른다. 그때부터다. 어디서든 울컥울컥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것은. 가라앉은 배는 다시 떠올랐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아직 그 배에 남은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저기 뽀얀 쑥이 한창이다. 쑥국을 끓일 때마다 그날 아침이 떠오른다. 설레던 마음은 먹먹함으로 바뀐 지 오래. 제를 올리는 마음으로, 올해도 나는 쑥국을 끓인다. 4월은 여전히 잔인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쑥국#세월호#기억#단짠단짠 그림요리#요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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