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아름다운 해변'이 적지 않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이탈리아의 아말피, 태국의 피피 섬….
하지만, 청아한 물 빛깔과 새하얗고 고운 모래만으로 이야기하자면 지구 위 어떤 해변도 필리핀 중부 비사야제도에 미치지 못할 듯하다. 개인적 취향을 이야기하자면 산보다는 강을, 강보다는 바다를 더 좋아한다. 해서 '만약에 전생(前生)이란 게 있다면 아마도 나는 커다란 농어 또는, 나붓거리는 해초가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하곤 했다.
어려서부터 사파이어 색채로 반짝이는 바다를 보면 사족을 쓰지 못했다. 그랬기에 적지 않은 나라의 해변을 여행했다. 바다를 편애하는 사람의 필리핀 중부지역 여행은 당연지사 즐거웠다. 비사야제도의 여러 해변과 기쁘게 만났다. 속절없고 바람 같은 인간의 생을 위로해주는 새파란 물결과 일시에 들끓다 허망하게 하얀 포말로 사라지는 파도. 그것들 속에서 울고 웃었다.
원시의 풍광을 지닌 발리카삭 섬, 석양이 기가 막히게 근사했던 팡라오 섬 알로나 비치, 물빛 고운 보홀 항구, 짙푸른 바다와 새파란 하늘이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지는 보라카이의 화이트비치, 관광객들이 만들어내는 북적임과 번잡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세부….
그랬다. 위에 열거한 바다를 떠돌던 때 내 손에는 소다수와 라임즙을 섞은 필리핀 전통주 탄두아이(Tanduay)가 늘 들려있었다.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힘을 가진 필리핀 비사야제도의 해변들.
한국의 호텔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던 필리핀 청년 두 번째로 필리핀을 여행했을 때는 수도인 마닐라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많은 이들이 걱정과 우려 섞인 이메일을 보내왔고, 엄마는 여러 차례 국제전화까지 걸어와 "여행을 그만두고 어서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채근했다.
나는 그때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일로일로), 다시 쾌속정을 타고 1시간 30분(바콜로드), 거기서 또 네그로스 섬을 횡단하는 로컬버스를 타고 7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도시인 두마게테에 있었다. 폭탄이 터진 지역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테러의 위협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인터넷 속도가 한국의 10분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두마게테의 PC방 컴퓨터를 이용해 지인들과 엄마를 안심시킨 후에야 비사야제도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제가 있는 지역은 폭탄테러가 일어난 곳에서 수백 km 떨어져있으니, 아무 염려 마세요. 저는 남태평양의 환하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즐겁게 잘 지내고 있으니까요."이메일 답신을 보내고는 갑자기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스콜(squall·강풍과 천둥을 동반하는 열대성 소나기)에 젖어가는 거리를 바라보며 향기 좋은 커피를 마셨다.
그날 밤엔 두마게테의 한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다는 스물한 살 청년과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포켓볼을 쳤다. 기자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는 그가 "내 꿈은 한국의 호텔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텔을 '경영'하는 게 아니라 호텔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니. 그 말이 이상스레 쓸쓸하게 들렸다.
지난 시절. 체 게바라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꿈'에 관해 말했고, 가수 조안 바에즈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목소리로 '꿈'을 노래했다.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하고, 차별받는 이들에게 평등을 선물하는 것이 청년에게 어울리는 꿈일 것인데, 너무나 현실적인 '꿈'밖에는 말할 수 없는 스물한 살 젊은이가 어쩐지 슬퍼 보였다.
팡라오 섬과 발리카삭 푸른 바다와 만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슬픔과 쓸쓸함도 경험하게 되는 법. 필리핀 청년의 맑은 눈빛을 뒤로 하고 다음 날 오후엔 쾌속정을 타고 조용한 섬 보홀로 갔다.
산호 가루로 형성됐기에 물빛이 사파이어 색채로 반짝이는 알로나 비치와 거기서 조그만 목선을 타고 들어간 발리카삭 섬의 원시적 풍광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발리카삭 섬은 자정이 넘어서면 전기가 끊기는 곳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여행자 숙소가 하나, 식당이 한둘, 구멍가게가 두어 곳밖에 없는 조그맣고 소박한 섬. 주민이라곤 닭과 돼지를 키우며 관광객들에게 조개껍데기로 만든 기념품을 파는 원주민 몇몇이 전부였다.
거기서 하루를 묵었다. 복잡하고 바쁜 한국 도시에서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에 불편을 감수할 만큼 즐거웠다. 잠시 잠깐이었지만 낯설고 새롭게 다가오는 풍광과 순박한 섬 주민들 속에 섞여 함께 웃을 수 있었다.
먹음직해 보이는 참치구이와 신선한 망고주스로 저녁을 먹고는 동네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조그만 가게에 설치된 노래방 기계를 이용해 팝송도 한 곡 불렀다. 노래 실력에 관계없이 박수를 아끼지 않았던 발리카삭 섬 사람들.
사파이어 색채를 닮아 짙푸르고 투명한 바다, 웃음의 힘으로 가난을 이기며 살아가는 필리핀 시골마을 사람들. 그들과 더불어 미소와 빵을 나눌 수 있었던 '특별하고도 의미 있는 하루'였다.
고등학교 시절 읽은 소설 중에 <팔색조>라는 게 있다. 거기에 이런 말이 등장한다. "이렇게 한 번씩 사로잡히고 나면 한참은 괜찮아져요." 그 문장은 여행의 매혹이 없었다면 다장조의 동요 같은 지루한 일상을 견디기 힘들었을 메마른 내 삶을 위로해왔다.
여행은 그랬다. 언제나 그랬다. 크고 작은 비행기와 고속 페리, 창문이 없어 바람 속을 달리는 듯한 로컬버스와 매연을 뿜어대는 트라이시클(tricycle), 인정 많은 기사가 운전하던 지프니(jeepny)와 에어컨이 고장 난 택시를 타고 떠돈 필리핀 중부 비사야제도에서의 2주일은 행복했다.
그 시간이 앞으로도 한참 동안 나의 단조로운 삶을 견디게 해줄 것임을 믿는다. 돈? 중요하다. 일? 역시 그렇다. 그러나, 그것들이 전생에 와본 듯한 기시감(旣視感)을 주는 여행지에서의 한 조각 웃음보다 소중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