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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비바람꽃 그곳에서는 이제 막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홀아비바람꽃그곳에서는 이제 막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 김민수

강릉에 일이있어 다녀오는 길, 빠른 길을 택하지 않고 대관령옛길을 선택했다.
길은 넓어졌고, 넓어진만큼 빨라졌으나, 빨라진만큼 풍경은 그냥 스쳐지나 가고, 마음에 새겨지는 것은 없다.

도시와 다를바 없이 아스팔트와 앞차와 뒷차 사이에서 경주를 할 뿐, 길가로 펼쳐진 풍경들에 눈길을 줄 수 없다. 눈길을 주는 것 자체가 빠른 도로에서는 사치를 넘어 위험하기까지 하므로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현대인의 경쟁적인 삶이 도로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그것이 싫다.
경쟁하는 삶이 싫다.

경쟁하며 살아온 삶,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동의나물 '나물'자가 들어가는데다가 먹음직 스러운 이파리를 가졌지만, 독성이 있어서 먹으면 안 된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식물은 독성이 강해서 봄나물로 적합하지 않다.
동의나물'나물'자가 들어가는데다가 먹음직 스러운 이파리를 가졌지만, 독성이 있어서 먹으면 안 된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식물은 독성이 강해서 봄나물로 적합하지 않다. ⓒ 김민수

경쟁의 대열에서 벗어나 살아가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 그 행복한 시간을 그대로 즐겼어도 경쟁대열에 서 있는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했을 것이다. 물론, 끝없는 미련은 남았을 것이다.

여기서나 저기서나 조금씩은 후회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경쟁에 지쳤고, 왜곡당하는 진심과 오해의 일상화 속에서 마음은 점점 좁아졌다. 도시의 삶에서 여간해서는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음은 있었지만, 간절했지만 '올해는 만나야지'하면서도 그들을 만나지 못하고 지나쳤다. 그들은 '봄에 피어나는 풀꽃'이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지, 이제는 줄줄 외우던 이름조차도 가물거린다.

홀아비바람꽃 작은 꽃, 그 자태가 이름과는 영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홀아비바람꽃작은 꽃, 그 자태가 이름과는 영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 김민수

'대관령마루길', 페이스북 친구의 태그로 익숙해진 이름이다.

내가 보고 싶던 풍경들과 소재들이 페이스북에 업데이트 될 때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 언젠가는 나도 그곳에 설 수 있겠지. 그런 아침을 맞이하고, 그렇게 그 숲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겠지 생각했다.

옆좌석에 있던 아내가 "저기 대관령마루길"이라고 손짓을 했다. 지나칠뻔했던 길, 아직은 해가 남아있으니 그곳을 조금 걷다가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마루길로 접어드니 길가에 노란 양지꽃이 활짝 피었던 하루가 피곤했다는 듯이 꽃잎을 닫고 쉼의 시간으로 향하고 있다. 그곳은 봄이 조금 늦게 와서 양지꽃이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동의나물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풀꽃 친구들이다.
동의나물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풀꽃 친구들이다. ⓒ 김민수

숲으로 난 길을 걸었다.
맨 처음에 나를 반겨준 것은 홀아비바람꽃이었고, 홀아비바람꽃에 홀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동의나물과 숲개별꽃, 노란제비꽃, 엘레지.....

그랬다.
그들은 누가 봐주지 않아도 가장 예쁜 모습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누가 봐주지 않기 때문에 자기를 온전히 피워내고 있었으며, 그 피어남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위함이었던 것이다.

얼레지 마음 설레게 하는 얼레지가 화들짝 피어났다.
얼레지마음 설레게 하는 얼레지가 화들짝 피어났다. ⓒ 김민수

참으로 고마웠다.
2006년 서울로 올라온 이후, 해가 더해질수록 나는 그들과 멀어졌다. 그리하여 오늘 만난 얼레지나 동의나물, 홀아비바람꽃, 노랑제비꽃 같은 것들은 거반 10년 가까이 조우하지 못했다.

아직은 피어나지 않았지만 박새, 이미 지고 없지만 앉은부채, 사진으로 담진 못했지만 물망초 그리고 수많은 꽃들.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피고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 같은 이가 없어 오히려 더 풍성하게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노랑제비꽃 노랑제비꽃과 숲개별꽃, 그곳에서 노랑제비꽃은 흔한 존재다.
노랑제비꽃노랑제비꽃과 숲개별꽃, 그곳에서 노랑제비꽃은 흔한 존재다. ⓒ 김민수

자연의 신비, 그것은 여기에 있다. 그냥 그들을 보고 돌아왔을 뿐인데, 그들은 또다시 내게 수없이 많은 말들을 한다. 무엇보다도 도시의 삶, 경쟁의 삶을 살아오면서 나 자신을 피워내는데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시선들의 판단에 좌고우면하면서 나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나를 질책한다.

그게 사는 것이냐고.
무엇이 산 것이고, 죽은 것이냐고.
계속 그렇게 살아갈 것이냐고 묻는다.

숲개별꽃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서 빛나는 작은 별과 같은 존재들
숲개별꽃하늘에서 내려와 땅에서 빛나는 작은 별과 같은 존재들 ⓒ 김민수

누가 봐주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를 아낌없이 피워내는 봄꽃들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나를 피워내는 일. 그것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싶다.

'대관령마루길',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간의 체증을 다 내려놓았다. 그 길에서 만난 작은 풀꽃들, 이제 막 피어나는 봄꽃들은 오늘 아침에는 이슬방울을 달고 싱그럽게 피어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4월 24일, 대관령마루길 일대에서 담은 사진입니다.



#얼레지#동의나물#숲개별꽃#대관령마루길#홀아비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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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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