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행복이 모든 사람의 절대적인 목표는 아니지만 적어도 불행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행복은 목표로 설정하고 간절히 바란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철학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전통에 따르면, 행복은 '잘 사는 것(living well)' 또는 '좋은 삶'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장기에 걸쳐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삶을 살다 보면 자연히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면 지속 가능한 행복감을 얻기는 어렵다. 좋은 삶이란 어떠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도 없다.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고 사람들은 각자의 삶에서 서로 다른 행복을 경험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행복에 중요한 요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행복경제학에서는 어떠한 요소들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요소들 중 행복한 노후를 위한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적정한 노후 소득은 행복의 필요조건먼저, 가장 필수적인 것은 적정 수준의 소득이다. 경제적인 빈곤은 노인의 안정적인 삶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이며, 적정 수준의 노후 소득은 행복에 필수적이다. 또한 절대적인 소득이 높을수록 평균적으로 더 행복해진다.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고, 보다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득이 계속 증가한다고 해서 행복 수준이 계속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은 행복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소득이 증가할수록 한계 효용 체감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했을 때 드러나는 상대적인 소득 또한 절대적인 소득 못지않게 중요하다. 예컨대, 한국의 평균 소득보다 높은 연봉 1억 원을 받는 사람일지라도, 평균 연봉이 2억 원인 동네에 산다면 상대적으로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다. 동일한 이유로 경제적 불평등 또한 행복에 직간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 노인들의 상당수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층 노후소득 보장 체계를 지니고 있지만, 현재의 노인 세대는 이 체계가 완전히 구축되기 이전의 세대이다. 자연히 제대로 된 노후 준비를 하지 못했다. 통계청의 <2016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15년 65세 이상의 노인들 중 공적연금(국민연금·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의 수급 비율은 42.3%수준이다.
더욱이 이들 중 약 77%는 50만 원 이하의 연금을 받는다. 대다수의 노인이 절대적으로 빈곤한 상태인 것이다. 상대적 빈곤율도 49.6%(2015년 기준)로 OECD 평균인 13%의 약 3.8배 수준이다(OECD, 2015). 때문에 노인의 58.5%(2015년 기준)는 생활비를 본인이나 배우자가 직접 마련하고 있다. 이 같은 경제적 어려움은 한국 노인들의 행복 수준을 상당히 저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소득이 중요하지만 소득의 차이가 행복 수준의 차이를 모두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과 대인 관계, 시간 활용time-use과 같은 비경제적인 요인 또한 중요하다. 건강이 행복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자명하다.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할수록 평균적으로 더 행복하다. 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건강하지 못하면 불행하다. 건강해야 소비도 하고, 대인 관계도 맺을 수 있다.
그러나 건강은 상당 부분 소득에 의존한다. 기대 수명도 소득 수준에 따라 크게 차이나지만, 실제로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하는 건강 수명 또한 소득 분위에 따라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진료비도 문제다. 가벼운 질병들은 건강 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사망과도 직결될 수 있는 중증 질환의 경우 자신이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보험 가입자라면 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하는 일반정기검진을 놓치지 않고 받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가족,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가장 큰 행복요인소득과 건강 이외에 행복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중요한 것은 시간 활용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활동 시간을 매개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노후는 평소의 시간 활용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은 가족,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교류를 필요로 한다. 급격한 고령화, 핵가족화, 노인 세대의 개인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한국의 노인 사회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사회로부터의 고립'이며, 이때의 정서적 소외감은 불행의 주된 원인이다. 다양한 사회적 교류를 통해 고립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행복 수준을 높이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때 중요한 점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교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타인과 직접적인 만남을 전화, 문자, 화상, 채팅 등의 간접적인 만남으로 대체하는 것은 행복 수준이 저해할 수 있다. 직접 만나는 것에 비해 관계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들과의 교제는 행복감을 느끼는데 특히 도움이 된다. 노년기의 친구들로부터 받는 정서적 안정과 지지는 가족으로부터의 정서적 지지 못지않다. 가족 관계는 당연히 행복에 중요한 요소이고, 가족 관계의 악화는 매우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 사회 노인들의 상당수는 노인 가구의 소규모화, 개인화, 노인 단독가구와 노인 부부가구의 증가, 가족 내 돌봄 인력의 감소 등의 현상으로 인해 가족과의 관계가 소홀해졌다.
이러한 사실은 부양에 대한 노인들의 인식 변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노인의 부양이 가족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노인의 비율은 2006년 67.3%에서 2016년 34.1%까지 감소했다. 소원해진 가족들의 빈자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운 지인과 친구들로 채워졌다. 낙심하거나 우울해서 이야기 상대가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망이 있다고 응답한 노인의 수는 2015년 기준 73%로 2013년에 비하여 약 5%p 증가했다. 노인 돌봄 서비스에서 노-노 케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문화·레저·봉사 활동도 행복감 증진에 도움문화·레저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는 것도 행복에 도움을 준다. 문화·레저 활동으로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평균적으로 더 행복하다.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것 또한 행복에 도움을 준다. 봉사 활동은 건강, 자아존중감 등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각 구청에서 시행하는 '어르신 경륜전수 활동'이나 '교육시설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행복감과 보람을 느끼는 동시에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반면, TV 시청은 행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TV 시청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즐거움을 주지만, 이를 통해 얻는 행복감은 다른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준보다 낮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의 노인들은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TV 시청으로 보내고 있다. 2015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의 83.1%가 주말이나 휴일의 여가 시간을 TV 및 DVD 시청으로 보낸다. 하루 평균 TV 시청 시간도 3시간 48분이나 된다. 가능하다면 TV를 끄고 다른 취미를 즐기는 것이 보다 행복해지는 길이다.
지금까지 노인 행복에 중요한 여러 요소들을 소개했다. 물론 개인의 행복이 이러한 요소들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은 아니며, 이들 중 일부가 없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행복에 중요한 요소들이 충족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우리 스스로도 이러한 요소들을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면,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 또한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다. 노인이 행복한 사회는 분명 좋은 사회이다. 앞으로 한국도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류재린님은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이 글은 월간 <참여사회>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