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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정감사 자료 준비 때문에 세종시 아파트에 방 하나 얻어서 지내고 있을 때다. (세종시에서) 자고 아침에 (사무실에) 나오니 10월8일이었다. 그날 사직서가 놓여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10월 8일을 얘기하며, 108번뇌라고 말한다. 지고가야 될 업보라고 생각하면서 사랑하는 후배들과 이별도 못한 채 나왔다. (울먹)"

30여년의 공직생활을 어쩔 수 없이 마감한 공무원은 참아온 소회를 토로하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 심리로 열린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지원배제명단) 9차 공판에는 최규학 전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조정실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블랙리스트 집행에 소극적이란 이유로 '성분이 불량하다'고 찍혀 옷을 벗은 피해자다.

그는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 기조실장으로 일하며 문체부 업무를 종합관리했다. 2014년 2월 청와대가 블랙리스트를 보냈을 때엔 '좌파성향 문화예술인'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는 일도 관장해야 했다. 김소영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문화체육비서관은 조현재 문체부 1차관을 불러 블랙리스트를 전달했고, 이것이 최 전 실장이 받은 첫 번째 블랙리스트다.

그와 유진룡 문체부 장관은 '블랙리스트를 문화계에 적용하기 어렵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2일 최 전 실장은 "기본적으로 문화예술인은 사회적 약자이고, 박근혜 정부 과제인 문화융성을 실현해야 할 대상"이라며 "통합할 대상이지 배제해야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고 그래서 (블랙리스트를) 적용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 지시를 따르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전담팀(TF) 구성하되 기존 정책 관련 업무를 맡기는 방식으로 자구책을 찾으려 했다.

최 전 실장의 태도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분노했다. 특검은 문체부 관계자들의 증언을 수사한 결과 이들이 블랙리스트에 반대한다는 보고를 전해들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당장 사표를 받으라"며 격노했다고 설명했다. 최 전 실장은 결국 김용삼 종무실장, 신용언 문화콘텐트 산업실장 등과 함께 문체부를 떠난다.

"문화예술계 인사들 약자인데... 블랙리스트, 공무원정신 훼손"

1급 공무원 3명이 갑작스레 물러나자 부처 내에선 여러 추측과 설이 난무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이들이 김 전 실장의 지시로 사직을 강요받았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최 전 실장은 당시 밤잠을 못 잘 정도로 언론사 취재 요청에 시달렸다. 그는 "청와대 외압에 인사 조치라는 설이 나오며 많은 전화를 받았지만, 지금은 밝힐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라며 "참고 또 참다가 지난해 12월 특검이 시작되고 나서야 심경을 밝혔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정말 사회적 약자다. 월급은 100만 원 밖에 안 된다. 공무원들의 도움과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배제하라는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는 참 부당한 일이다. 직업 공무원들은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해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헌법이 규정한 직업공무원 정신, 국민들의 재산과 생명,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과연 국가가 어떻게 운영되겠는가."

최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의 부당성을 거듭 강조하며 재판부에 엄정한 판단을 요청했다. "이런 직업공무원 정신을 훼손하는 조치에는 역사적 교훈, 판결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블랙리스트가 본격적으로 적용했다는 증언도 했다. 최 전 실장은 "세월호 참사로 국민들이 많은 아픔을 가졌고, 문화 예술인들이 학생들의 트라우마를 해소하고자 공감대 표명을 많이했다"라며 "위에 계신분들은 이를 비판적으로 본거 같다"고 말했다.


#김기춘#조윤선#블랙리스트#최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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