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바람'이 불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이 심상찮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전 마지막 여론조사는 심상정 후보 쪽이 기대하는 '진보정당 대통령 후보의 사상 첫 두 자리 수 득표율'이 헛된 희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서울경제> 의뢰로 한국리서치가 지난 1~2일 조사해 3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따르면, 심 후보의 지지율은 11.2%였다. 대통령 후보 등록일인 지난달 15, 16일 같은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의 조사에서 심 후보는 3.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보름 동안 심 후보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3, 4일에 발표된 다른 조사에서도 심 후보의 지지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TV토론을 타고 퍼지는 심바람심바람의 진원지는 단연 대통령 후보 TV토론이다.
지난달 19일 KBS 주관 후보자 토론회에서 홍준표(자유한국당)·유승민(바른정당) 대통령 후보가 대북송금 특검 등을 거론하며 색깔론을 제기하자, 심 후보가 "도대체 언제까지 대북송금 이야기를 할 거냐. 그게 언제적 이야기냐"라며 일침을 놓았다. 심 후보는 카리스마 있는 여성 후보의 이미지를 얻었고, 표심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난달 25일 JTBC 주관 후보자 토론회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군대 내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을 때, 심 후보는 '1분 발언권 찬스'을 써서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성소수자 이슈를 불편해하는 유권자의 표를 잃지 않으려 소신을 꺾은 문재인 후보와 당당하게 소신을 밝힌 심 후보의 모습은 큰 대비를 이뤘다. 며칠 뒤, 문재인 후보는 자신의 발언을 사과했고, 심 후보는 울음을 터트리는 성소수자를 품에 안았다.
심 후보의 유세 현장에서는 "TV토론을 보고 심 후보를 지지하게 됐다"라고 말하는 유권자를 쉽게 만날 수 있다. 2일 심 후보의 이화여대 앞 유세에서 만난 많은 20대 여성들은 "상식의 문제인 동성애 차별반대를 당당히 말한 건 심상정 후보뿐이었다"라고 말했다. 3일 심 후보의 춘천 유세 현장에서 만난 경덕영(67)씨는 "(TV 토론을 보니) 박근혜 대통령은 실패했지만 심상정 후보가 되면 성공한 여성 대통령이 될 것 같다"고 주장했다.
노회찬 정의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4일 기자간담회에서 "TV토론으로 국민들이 심 후보의 정책을 접하고 있으며 정책에 대한 지지가 20대 여성에서 30대로 전이되고 있다"면서 "심 후보가 30대 초반에서도 (2위와) 거의 근접한 3위이거나 2위를 달리고 있는 조사가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저희가 분석한 결과, 어느 후보에게도 마음 주지 못했던 무당층과 붕괴하는 안철수 후보 진영에서 (심 후보에게) 표가 오고 있다"면서 "지금 1위를 달리고 있는 후보 진영에서 '정의당에는 다음에 투표를 해달라'는 말을 연거푸 하고 하는 것을 볼 때, 심 후보의 지지율이 두 자리 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적극 투표층의 증가, 심상정에게 호재적극 투표층의 증가도 심상정 후보에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과 YTN 의뢰로 엠브레인이 2일에 조사해 3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적극투표층은 90.0%였다. 진보 성향 유권자 가운데 "적극 투표하겠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94.5%였다. 이는 중도층(91.2%)과 보수층(87.7%)보다 높은 것이다. 또한 지지후보별 적극 투표층의 비율은 문재인 후보가 94.4%로 가장 높았고 홍준표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93.3%로 같았다.
사전투표의 열기가 뜨거운 것도 심 후보에게 호재라는 게 노회찬 위원장의 생각이다. 사전투표 첫 날인 이날 오후 5시 현재 투표율은 10.60%다. 이는 지난해 4월 20대 국회의원선거(사전투표율 3.92%)와 비교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노 위원장은 "이번 선거를 만든 건 촛불 들었던 시민들이고 후보들이 지금 같은 지지율 나오는 것도 촛불 직후, 탄핵 직후 선거이기 때문"이라면서 "심 후보가 '촛불 대통령'에 가장 근접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권영길의 3.9%, 넘어설까장밋빛 전망이 현실이 될지는 미지수다. 진보정당에겐 뼈아픈 기억이 있다. 지난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진보정당 역대 최고 득표율(3.9%)을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실망이 더 컸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 권 후보의 지지율은 6%였던 탓이다.
이는 막판 진보 진영에 퍼진 '사표론'이 작동하면서 생긴 결과다. 노무현(민주당)-정몽준(국민통합21) 후보의 연대는 투표 전날 파기됐다. 진보진영에서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퍼졌다. 이는 사표론으로 이어졌고, 노무현 후보는 여론조사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권영길 후보의 표가 노무현 후보에게로 옮겨간 것이다.
19대 대선이 닷새도 남지 않은 가운데 바른정당 의원 일부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는 등 보수 세력이 집결하면서, 사표론이 기승을 부릴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의당은 보수표가 모일 가능성이 적다는 입장이다. 노회찬 위원장은 "지난겨울부터 시작해서 반기문, 황교안, 안희정, 안철수, 홍준표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보수표가) 분산돼가고 있다"며 "제대로 된 보수 표심이 함량 미달의 홍준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노 위원장은 "압도적 1위 후보가 있는 상황에서 누가 1위냐는 중요치 않다", "대신 향후 국정 운영을 위해 누가 2위가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면서 사표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미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압도적이니 굳이 심상정 후보 지지자들이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줄 필요가 없고, 더군다나 심 후보가 일정 수준 이상의 득표율을 얻어야 차기 정부가 획기적인 개혁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의당은 남은 5일 동안 무당파와 이탈표를 흡수하면 심 후보가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전국을 돌며 적극적인 유세를 벌일 계획이다.
노 위원장은 "저희들은 종횡무진이다"라며 "남은 기간 동안 경부선, 호남선 완전히 섭렵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상처받은 많은 국민과 절망의 나락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청년들을 심 후보가 한 명씩 직접 안아주며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유세를 펼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기사에 언급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