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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과 <밀정>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약산 김원봉 장군의 외조카 김태영씨를 지난달 26일 미국 LA에서 만났다. 김태영씨는 약산 김원봉의 막내 여동생 김학봉씨의 자제로, '의열단 약산 김원봉 장학회' 회장이며 '임시정부 건립의원회' 이사이다.

김태영씨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면서,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의 직접적인 피해자이기도 하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시작하여 박근혜 탄핵, 그리고 대선으로 이어진 현 정국을 어떻게 보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를 이끌며 일제시대 최고의 현상금이 걸린 독립운동가였던 약산 김원봉은, 1947년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친일세력이 득세하던 남한에서 대표적인 친일경찰 노덕술에 쫓기듯 월북했다. 남쪽에 남겨진 약산의 가족에게 상상하지 못할 시련이 닥쳤다.

한국 전쟁이 일어난 후 보도연맹 사건으로 약산의 형제(김태영씨의 외삼촌) 4명, 약산의 사촌 (김태영씨의 외당숙) 5명이 총살당했다. 김태영씨의 외할아버지는 연금 상태에서 돌아가셨으며 아버지는 우익들에 의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그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 (약산의 막내 여동생 김학봉 여사)도 약산의 월북으로 인해 종로경찰서로 연행되어 모진 심문을 받았다.

약산의 형제 중 생존자였던 김봉철씨(김태영씨 외삼촌)는 보도연맹사건으로 처형된 형제와 사촌들의 시신을 수습하였다는 이유로 5.16 쿠데타 이후 군사혁명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 선고문에는 박정희가 직접 서명을 했다.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김태영씨 가족에게도 연좌제의 족쇄가 씌워졌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김태영씨의 남자 3형제는 모두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고아원의 환경은 말로 하기 어려울만큼 열악했다. 일부 원장들이 고아원 자산을 탈취하고 원생들을 중노동으로 착취했으며, 그리고 심한 매질로 학대하였고 또한 성적 노리개로 삼는 일도 있었다. 김태영씨도 이런 고아원에서 지옥같은 6년을 보냈다.

 약산 김원봉 장군의 외조카 김태영 박사
약산 김원봉 장군의 외조카 김태영 박사 ⓒ 이철호

1980년 제5공화국 헌법에 연좌제 금지를 명문화해서 조금은 움직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군 제대 후 유학비자를 받아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왔다. 의류업에 종사를 하면서 공부를 했고 (경영학 박사) 한동안은 한국 쪽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현재는 약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활동을 하면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고 있다.

김태영씨는 한국의 촛불집회에 여러 차례 참석하며 만난 한국 국민들의 의식이 의열단의 혁명 정신과 맞닿아 있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 사회의 오랜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에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씨가 대통령에 당선했으나, 얼마 전 탄핵되는 과정을 보면서 남다른 감정이었을 것 같다.
"박근혜가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 대통령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대한민국 국민은 참으로 불행하구나라고 생각했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 죽도록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자신 집안의 명예를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니, 참으로 사고의 문제가 심각하지 않고서야 이런 말을 대놓고 할 수가 없지 않나 싶었다. 그 때부터 박정희와 박근혜 자신, 그리고 자신의 집안을 위해서도 불행한 선택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박정희 시절 주변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또다시 모이게 되어 있기에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 탄핵과정을 지켜보면서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했다. 시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이렇게 수치스럽고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국가로 만든 장본인들은 정치계나 법조계, 교육계나 할 것 없이 모두 퇴출시켜야 한다."

- 촛불 집회가 계속되던 당시 한국에서 촛불 집회에 여러 차례 참석했다고 들었다. 광장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나?
"작년 10월부터 박근혜 파면까지 열 번을 나갔다. 내가 미국에서 30년이 넘도록 살았기 때문에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이 그동안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했다. 이 분들이 박근혜 정부를 어느 정도 증오하고 있을지, 그리고 어떤 나라를 원하고 있는가 등, 많은 의문점을 갖고 많은 시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내 인생에 가장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무엇이 그렇게 감동적이었나?
"역사적으로 우리 나라는 혁명의 나라다. 누구 누구의 난으로 낮추어 부르고 있으나, 결코 난리로만 보면 안 된다. 더 나은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정의를 위해 부패한 권력에 대항해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았던 혁명이다. 현대사만 봐도 3.1, 4.19, 5.18, 모두가 시민혁명이다. 이번 촛불은 3.1혁명 정신의 대를 이은 21세기의 새로운 무혈혁명이며 의열단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 약산과 의열단 정신으로 본 현 기득권자들에 대한 저항은 어떤 것인가?
"우선 지난 천 여년의 한국 역사를 되돌아보면 거의 대부분이 착취의 역사이다. 외부적으로는 중국, 일본의 침략과 그들에 의한 착취, 내부적으로는 권력자들에 의한 착취를 당했다. 해방 후, 나라를 팔아먹고 민족을 죽음으로 내몰고 어린 여아들을 성노예로 보낸 친일 배신자들을 우리는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다.

친일 부역자들은 부와 권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의 후손들을 유학을 시켜 지식 사회까지 점유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권력, 지식을 가지면 외적인 것은 다 소유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나? 문제는 그들의 돈, 권력, 지식이 민족의 피를 짜내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박정희, 박근혜도 그 핵심층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그들에 빌붙어 자신의 영달을 위해 동조한 자들도 친일파와 진배없다. 그들은 주변을 사랑할 수 없으며 다수의 시민을 자신들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들의 뿌리는 아주 깊다. 그들을 몰락시키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그들을 몰락시키는 것이 바로 약산과 의열단의 저항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 약산이 원했던 미래의 대한민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아주 간단하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의열단 선언서와 임정 건국 강령에 보면 잘 나와있다. 의열단 선언서에는 다섯 가지를 파괴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족통치 (일제), 특권계급, 경제약탈제도, 사회적 불평균, 그리고 노예적 문화사상이 그것이다. 임시정부 강령에서도기회의 균등과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은 신귀족들만을 위한 나라이다. 이런 체제를 타파해야만 한다."

-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떤 결과가 나오기를 원하는가?
"개인적으로는 약산과 의열단 정신에 부합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한국 사회의 적폐를 해소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기를 바란다. 역사 인식이 중요한만큼, 친일 청산을 이뤄내야만 진정한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김원봉#약산#김태영#의열단#장미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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