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참여정부 말기와 이명박 정부 초기, 언론과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FTA 등의 정책에 대해 진보적인 논조로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글뿐 아니라 개인에 대한 조롱 섞인 글도 올라왔다.

"지금이야말로 그의 예전 장기였던 '사즉생 생즉사'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나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깨끗이 목을 베라'고 일갈했던 옛 장수들의 기개를 한번 발휘해볼 일이다"는 내용의 한겨레 <[아침햇발] 비굴이냐, 고통이냐> 칼럼, 검찰 수사 문제를 주제로 한 경향신문 <아내 핑계 대는 남편들> 칼럼 등에 대해 친노 성향의 지지자들이 비판하기도 했다. 보수 언론뿐 아니라 진보언론에 대해서도 서운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기도 했다.

 <왕따의 정치학>
<왕따의 정치학> ⓒ 위즈덤하우스
최근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전에도 진보언론과 친문 성향의 지지자들의 사이가 악화되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 SNS상에서 진보언론에 대한 비판이 폭증했다.

선거 기간의 뉴스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간 것이다. 이에 진보언론들은 친노·친문에 우호적이지 않으며, 친문은 항상 왕따 신세라는 의견이 등장했다.

즉, 보수언론은 보수 후보와 정당에 우호적이지만, 진보언론들은 전혀 친노·친문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지지했던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낸 적 있는 만큼 시민들은 진보 언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 기능은 당연한 것이라는 의견부터, 진보 언론이 그동안 너무했다는 비판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왜 진보언론조차 노무현·문재인을 공격하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왕따의 정치학>은 참여정부 홍보수석(05~06)을 맡았던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가 친노·친문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정리해 적은 책이다.

조 교수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지금까지 비교적 친노에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 등장하는 저자의 주장은 (참여정부에서 공직을 맡은 인사이기에) 어느 정도 비판적인 자세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조 교수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친노·친문 왕따 현상이다. 보수언론뿐 아니라 진보언론도 친노·친문을 왕따시킨다는 것이다. 성향상 많은 차이를 보이는 보수언론뿐 아니라 진보언론도 그런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가 언급하는 보수언론은 <조선>, <동아>, <문화일보>이고, 진보언론은 <한겨레>와 <경향신문>이다. <오마이뉴스>의 경우 저자는 애당초 시민기자가 글을 쓰고 게시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나마 친노에 우호적이라고 본다.

'우리사회에서 보수언론으로 여겨지는 매체는 차치하고, 소위 진보언론이라 불리는 한겨레나 경향에서도 기사만 썼다 하면 문재인을 때린다. 정말로 잘못한 걸 가지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팬다. 나는 정말 궁금했다. 언론은 왜 유독 문재인에게만 가혹한 걸까? 또, 그렇게 두드려 맞는데도 왜 그의 지지도는 계속 올라가는 걸까?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38P

저자는 처음에는 호남이 정치적인 왕따 상태였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기에 반기를 들어 왕따의 방어자로 나섰다. 하지만 이후에는 친노가, 나중에는 친문이 왕따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태의 배경으로 저자는 노 전 대통령과 진보언론의 갈등을 꼽았다.

저자가 말하는 노 전 대통령과 진보언론의 불화 원인은 8가지다. 진보언론의 양심 결벽증, 시간과 재정이 부족한 열악한 진보언론의 업무환경, 폐쇄적인 엘리티즘, 비판의 효능감, 킹 메이커 바람, 언론권력의 사유화, 이념적 갈등, 문화적 갈등이다. 저자는 각각의 주장에 대해 예를 들어 설명하고 광고료의 문제까지 언급한다.

'진보진영 내 다수파는 사실 친노·친문이다. 그들이 진보언론을 구독해주면 독자 수가 몇 배가 될 텐데 그들은 왜 친노·친문의 눈치를 보지 않을까? 어차피 요즈음 신문은 구독료만으로는 생존이 어렵다. 그래서 기업의 광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광고주 눈치를 보느라 친노·친문에게 가혹하게 구는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래서 진보언론은 독자들의 절독운동 같은 걸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대기업의 광고가 끊기는 게 더 두려울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진보언론은 그냥 강자에게 약한 건 아닐까.' -133P

조 교수는 특히 '문화적 갈등'에 대해 자신만의 독특한 구도를 제시한다.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물질적인 세계관을 중시하고 경제적인 재분배를 위주로 정치 운동을 전개하는 기존의 세력들은 '구좌파'다.

이와 달리 문화적, 탈물질적인 이념에 근거한 입장을 보이는 이들은 프랑스의 68혁명 세대와 같은 '신좌파'다. 조 교수는 한국의 친노 계열 지지자들을 신좌파로 구분하고, 구좌파와 신좌파간의 문화적인 차이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런 문화적 차이도 불화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제1세대 시민권은 참정권이었고, 제2세대 시민권은 복지권, 제3시대 시민권은 자치권이었으며, 한국의 6월 항쟁이 제1세대 시민권운동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압축적인 민주화 과정에서 제2세대를 건너뛰고 지식정보화 사회의 시민들이 제3세대 시민권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이 시초가 노사모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조 교수의 구분에 따르면, 한국의 신좌파 지지자들은 바로 제3시대의 21세기형 지지자들로 등장했다. 이들은 문화적인 요소를 중시하고, 탈물질적인 이념을 가지며,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성격을 가진다.

'나는 노사모가 우리나라 최초의 68혁명 세대라고 생각한다. 19세기 말의 자유주의는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한 참정권운동이었다. 즉 제1세대 시민권을 목표로 했었다. 그러나 노사모에서 시작된 친노 세력은 참여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제3세대 시민권자였다.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모든 인사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노무현을 지지하고 지금 문재인을 지지하는 친노 시민들은 신좌파라고 할 수 있다.' -173P

호남 홀대론에 대한 언급도 있는데, 조 교수는 참여정부가 호남을 홀대했다는 이론은 근거가 부족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호남이 3당합당 이후 정치적으로 고립된 이념 지형에서, 영남의 민주화 세력이 호남과 연대해왔기에 민주정부의 집권과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참여정부 시절 호남 인사를 덜 쓰지도 않았고, 호남에 대한 투자 역시 이루어져 지역 균형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실제 호남 홀대론 논란은 어느 정도 사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호남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에 호된 회초리를 들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에 60% 이상의 높은 지지를 보이며 안철수 후보를 호남 지역 2위로 밀어냈다.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까지 1년이 남았지만 이낙연 전남지사의 총리 지명으로 적어도 당분간은 호남 홀대론에 대한 언급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 책의 주된 쟁점인 신좌파 문제는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책은 서구의 68혁명과 신좌파에 대해 설명한 뒤 구좌파와 신좌파 구도를 한국에 도입하고 있다. 그런데 제3세대 시민권운동을 주장하는 신좌파가 한국에 일정 숫자 이상이 될 정도로 자리잡을 시간이 있었는지에 대한 논증은 부족하다고 본다.

또한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조 교수의 지적처럼 신좌파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2000년대 중반과 달리 복지와 일자리 문제를 강조하는 문재인 캠프의 경제 공약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상당수일 것인데, 문재인 후보의 지지자 중 경제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인 사람들을 간과한 느낌이다.

조 교수는 피해자의 호소가 이 왕따 문제의 해결법이라고 말한다. 피해자의 호소로 가해자를 설득하진 못해도 방어자가 늘어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책에서 말하는 불화 상태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이후에도 쉽게 바뀌지 않을 듯하다. 경향신문에서 '진보 어용 언론은 없다'는 글이 올라왔지만 비판 댓글이 가득하다. 봄이 떠나가고 있다.


왕따의 정치학 - 왜 진보 언론조차 노무현·문재인을 공격하는가?

조기숙 지음, 위즈덤하우스(2017)


#조기숙#친노#친문#왕따#정치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화해주실 일 있으신경우에 쪽지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